노을 속으로 뿌려놓은
스물세 살의 飛翔
초경량 항공기 예비 여성 교관
김은주
어렸을 적 뭉게구름이 떠있는 어느 오후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금만 더 가까이 그곳으로 다가가기 위해 저 구름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그러한 작은 상상을 하는 동안, 이미 나의 어린 시절은 온데간데없이 어느새 이만큼이나 커져 있었다.
지금 나의 시야를 독차지하고 있는 그것들만이 전부, 라는 나의 짧은 생각이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은 바로 하늘에서 이곳의 지상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항상 고개를 들어 우러러만 보았던 구름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장난을 치고 있을 즈음, 그 너머에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던 한낮의 태양은 어느덧 붉은 기운으로 출렁거리는 노을에게 그 자리를 비워주고 있었다.
마치 나 자신이 그 소용돌이 안으로 한없이 빠져들고 있는 것만 같은 황홀함에 취해 있을 즈음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바로 그 노을 속에 그려져 있는 어느 스물세 살 젊음의 아름다운 비상 때문이었던 것 같다. 1998년인가, 아니면 1999년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를 만난 날을 정확히 기억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난 그날, 나는 처음으로 초경량 항공기를 탔었고 그때 하늘을 날며 맛보았던 바람의 맛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바람과 겨루는
내 젊음의 고독한 도전
"글쎄요. 광활한 대지를 바라보는 느낌요? 구름 속의 한 점이 되어 있는 듯한,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서 홀로 표류하고 있는 듯한, 마치 아무도 없는 세상에 나만이 던져져 있는 듯한 그러한 기분이라고 할까요."
프로펠러에 의해 추진력을 얻는 것으로 착륙 장치가 장착된 고정익 비행장치인 초경량 항공기. 1980년대 초 현 서울에어로클럽 회장인 박홍수 씨가 자신의 행글라이더에 소형 엔진을 달고 지상 이륙을 시도한 이래, 그 후 잘 설계된 기체들을 외국으로부터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초경량 항공기를 레저 스포츠로 즐기는 동호인 모임이 활성화되었다.
"아뇨, 오히려 지금 같은 겨울이 비행하기에는 더 좋은 걸요. 가을도 괜찮지만, 봄과 여름에는 좀 곤란할 때가 적지 않아요. 비행은 바람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바람이 고르며 기복이 심하지 않을 때가 가장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게 본다면, 계절적으로는 봄이 가장 힘들어요. 그때의 바람은 위, 아래로 툭툭 쳐주고 갑자기 푹 꺼지는 그런 풍이거든요.
비요? 아뇨, 물론 비가 내릴 때에는 이륙할 수 없지만 일단 그치고 나면 오히려 하늘이 한층 쾌청해져 기분마저 신선해지죠. 또한 하루를 기준으로 볼 때에는 오후보다는 아침이 더 유리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바람이 강하면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게 되는 위험이 있으니까요."
초경량 항공기는 자중이 225kg 이하, 1인승과 2인승의 자체 중량은 각각 150kg, 225kg 이하여야만 하는데 그 종류는 조종 방식, 외양 등에 따라 고정익 타입의 글라이더에 엔진과 바퀴를 부착한 타면조종형과 행글라이더에 엔진과 바퀴를 장착한 체중이동형, 그리고 패러글라이더에 엔진과 바퀴가 있는 파라플레인과 회전익비행장치의 자이로플레인 등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대학시절 행글라이더 동아리에서 활동하게 되었는데, 초경량비행기 교관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한 선배님께서 저희들을 그곳 비행장으로 초대하셨었어요. 이것저것 비행에 관한 항공지식들을 설명해 주시고는 한 번씩 태워주셨는데, 대부도가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즈음에서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때 마침 저희 옆으로 무리를 지어 날아가고 있는 새들의 행진을 너무나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는데, 뭐라고 할까, 왜 그 영화 있잖아요. <아름다운 비행>이라는 그 영화의 포스터처럼 제가 바로 그 장면의 주인공이 된 듯한 설렘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오는데, 선배님께서 저희들을 향해 이렇게 한마디를 건네셨어요. '날고 싶으면 와라'"
대한항공 예약팀에 근무하고 있던 김은주(23) 씨는 선배로부터 그 한마디를 들은 그다음 날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다시 그곳을 찾았다.
"철저한 1:1 교육이었어요. 요즈음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연습하고 있지만, 초기에만 해도 꼬박 7일 내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비행장을 찾을 정도로 '하늘을 난다'는 그 매력에 깊이 빠져 있었죠.
이유요? 음~~ 그냥 비행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리고 땅으로 다시 내려왔을 때에는 하늘에 떠있을 때의 풍만함 못지않은 성취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아뇨, 처음부터 이것을 배워 꼭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단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호기심만이 컸을 뿐이죠."
그 당시 약 700여 명에 이르는 초경량 비행기 동호인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약 0.2%. 그중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교관으로 인정받은 여성은 그때까지만 해도 단 2명에 불과했다. 그들이 자격을 획득한 1997년 이후 당시 교관이 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는 여성은 모두 8명. 그중의 한 명이 바로 그녀였다.
"만 14세 이상의 남녀라면 누구나 비행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요. '비행기는 어떻게 뜨나?'와 같은 기본적인 항공지식에 대해 15시간, 비행구조론에 관해 5시간 정도의 총 20시간의 이론 교육과 비행 실기 20시간의 교육을 함께 마치게 되면, 국제 공인 조종사 면장을 취득할 수 있게 되죠. 그 기간은 본인의 노력과 날씨 사정에 따라 빠르면 2달 내지 3달 정도가 걸린다고 보면 될 거예요. 약 15시간 정도 훈련을 받고 나면, 단독 비행도 가능해지고요."
교관이 될 수 있는 자격은 만 20세 이상으로 초경량비행장치를 조종한 비행시간이 100시간 이상인 조종자만이 응시할 수 있다고 한다. 은주 씨의 지금까지의 비행시간은 80시간가량이 조금 넘은 정도. 앞으로 모두 120시간 정도의 비행을 하게 되면 교관으로서의 자격을 심사받게 된다고 귀띔해준다.
"연료 용량은 1인 좌석의 경우 19리터, 2인 좌석은 최대 38리터 정도죠. 휘발유요. 그렇게 되면 최대 비행시간으로 약 4시간 정도가 가능해요. 처음부터요? 아뇨. 그때에는 약 30분 정도로 비행하다가 1시간 30분, 그리고 점차 그 이상으로 늘려 나갔죠.
무서운 것은 아니었는데, 처녀비행을 할 때에는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고도 1m(최저 비행 높이) 정도에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착륙을 하고 나서야 '아, 내가 하늘을 날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뿐이었어요. 지금요? 하하, 강바닥도 보이는 걸요."
하늘을 웨딩드레스로,
창공을 가르는 신부 입장
"처음 비행을 하게 되면 약 100~200m 정도의 활주거리에서부터 시작해요. 그 거리쯤 되면 적어도 이륙할 수 있는 속도는 되거든요. 고도요? 약 거리의 8배 정도죠. 예를 들어 100m의 활주거리를 갖는다면, 약 800m 정도로 상승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그럼요, 착륙이 더 힘든 걸요. 이륙은 한 5~6시간가량의 교육을 받으면 곧 할 수 있지만, 착륙을 할 때에는 그 보다 더 세심한 기술이 요구되거든요.
실은 '착륙하지 못하는 새'라는 별명이 있었어요. 예전에 행글라이더를 배울 때 잘못하여 풀숲으로 빠지게 됐는데, 장애물과 부딪히는 바람에 그만 헬멧이 깨지고 왼쪽 눈이 멍이 들었지 뭐예요. 그런데 초경량항공기를 비행하는 요즘에도 친구들이 가끔씩 놀려대곤 해요. 지금은 착륙도 잘하는데 말이죠."
개인이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교관이 되기 위한 시험 비행에는 그 대상자를 심사할 수 있는 현 교관이 함께 비행하게 된다고 한다. 얼마만큼 안정된 비행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실속(추락할 때)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얼마나 신속하게 빠져나올 수 있느냐, 또한 선회할 때의 각도와 갑자기 직면하게 된 위기 사항을 얼마나 노련하게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시험 항목에 포함된다고 한다.
"지금 당장 교관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은 나이가 된 다음에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어요. 아직은 제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여러 사람과의 이해관계, 유연한 사고방식 등 살아가는 자세가 지금은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져요. 왜냐하면 비행은 단지 기계를 조작하는 그러한 단순한 기술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비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교관이 되면 은주 씨는 많은 여성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단지 하늘을 난다는 것에 대해 느끼는 막연한 무서움을 해소시켜 주며, 자신감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신념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작은 희망.
"이다음에, 한 5년 후 즈음에는요. 비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그러한 공간을 갖고 싶어요. 그냥 항공인들의 장소 같은 거요. 아뇨, 스쿨의 개념은 싫어요. 그것은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는 의미가 큰데, 저는 그저 하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기는 편을 더 좋아하는 것 같거든요. 그들이 모두 같이 1년에 한 번 정도는 세계 곳곳의 하늘을 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실은 이것은 비밀인데요. 지금 제 곁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은 행글라이더를 타는 사람인데요. 나중에 결혼식은 하늘에서 각자 내려오는 것으로 약속했어요. 주위 분들이 축하 비행까지 해주신다고 하네요. 그런데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초경량 비행기로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아직까지 한쌍도 없다지 뭐예요. 아마도 저희가 최초의 기록을 세우지 않을까요."
그녀는 지금 당장 교관이 된다 하더라도, 직업적으로 비행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적어도 그가 말하는 그 5년 후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직 성숙된 어른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단지 그 어휘 그대로 하늘을 난다는 그 자체만을 중요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초경량항공기요? 바로 이 바람 때문일 거예요. 하늘을 아무 막힘 없이 그대로 내 몸에 밀착시킬 수 있는 이 바람의 안온함. 이 강한 유혹이 저를 좀처럼 놓아주지 않고 있지 뭐예요."
그렇게 그녀의 스물세 살의 젊음은 하늘의 바람을 아주 잔잔하게, 그러나 너무나 강한 열정으로 조심스럽게 가르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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