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꿈과 사랑을 선물하는 음악산타, 플루티스트 배재영

난짬뽕 2020. 12. 1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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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티스트 배재영 교수님을 뵌 것은 2012년 겨울의 길목에서였습니다. 유중아트센터에서 인터뷰와 촬영이 있은 이후에도 인연이 되어 사적으로 몇 번을 더 뵙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연주회장에서도, 제자들 앞에서도 언제나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기운을 전해주십니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 앞에서도 특유의 밝은 미소로 주위를 독려하시죠. 힘든 사항에 직면한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서든지 도움이 되고자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실제로 뵈면 더 아름답고, 유쾌하고, 시원한 성격의 교수님은 매년 뜻깊은 공연을 준비하십니다. 몸이 불편하여 공연장에 오기 힘든 장애우 분들을 초대하여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신답니다. 저희 가족도 그 음악회에 가곤 하는데요. 그 어떤 음악회보다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랍니다. 

 

꿈과 사랑을 선물하는 음악 산타

플루티스트 배재영

 

해마다 연말이 되면, 플루트의 음률을 타고 떠나는 동화 속 마을로의 여행이 기다려진다.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사랑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그 누군가에게는 상상만으로 접어야 했던 꿈들이 새록새록 채색되어 간다. 플루티스트 배재영은 이곳에 꿈과 사랑을 선물하는 음악 산타이다. 

글 엄익순 사진 이준용

 

2012년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12월호 인터뷰로 만난 배재영 교수님

 

재능 나눔, '사랑의 플룻콰이어'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감동은 비단 동화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문화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역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이 넘도록 한 해도 빠짐없이 무대 위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음악가가 있다. 숭실대학교 콘서바토리 관현악과 배재영 전임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992년부터 '사랑의 플룻콰이어'라는 연주그룹을 통해 음악을 매개체로 나눔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사랑의 플룻콘서트'라는 이름으로도 낯익은 그들의 자선음악회는 특히 문화생활을 하기 힘든 장애인들과 소외계층을 직접 연주회장으로 초청하여 즐거운 시간을 함께한다. 지금까지 초청된 인원만 3천여 명. 또한 연주회 수익금 전액을 남양주에 위치한 중증 장애인 시설인 신망애 복지타운에 기부하고 있다.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클래식 초대석 중에서

 

"처음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자리 잡힌 연주회가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누군가를 돕는다는 거창한 의미였다기보다는 그저 제자들과 함께 이웃들과 음악을 통해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처음 연주회를 시작했던 1992년에는 프로그램도 직접 손으로 써서 복사했고, 공연 포스터도 제가 디자인을 했어요.

그때 십 대였던 제자들이 대학을 가고, 유학을 다녀와서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당시 열 명으로 무대에 올랐던 '사랑의 플룻콰이어'가 지금은 중견 연주자 및 유수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유망 신예 플루티스트 100여 명이 함께 연주를 할 만큼 전문 플루트 오케스트라가 된 것이죠."

 

오랜 시간의 흐름만큼 단원들 사이의 유대감도 남다르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21년째 배재영 교수와 함께하는 제자들이 대부분이다.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는 오케스트라 단원들, 또는 결혼하여 출산을 앞둔 제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특별히 약속을 하지 않아도 매년 연말에 펼쳐지는 '사랑의 플룻 콘서트'를 위해 자신들의 시간을 조정한다. 

 

12월 22일 오후 7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사랑의 플룻콰이어'의 제21회 성탄절 자선음악회의 주제는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이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모차르트의 '바이올린을 위한 아다지오', 구노의 <파우스트> 발레음악 등 주옥과 같은 클래식 레퍼토리와 세계의 캐럴 모음곡, 그리고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우리나라 동요 모음곡 등을 연주할 계획이다.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클래식 초대석 중에서

 

발달장애 청소년들을 위한 전문적인 음악교육

올해 '사랑의 플룻콰이어' 음악회에서는 특별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에이블아트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전공 발달장애청소년들이 무대를 함께 한다. 지적장애청소년으로 구성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와 장애 아동들에게 맞춤 음악교육을 하고 있는 뷰티플마인드 뮤직 아카데미 플루트 연주자들과의 공연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5월부터 에이블아트 단원들을 한 명 한 명씩 직접 만나 그 아이들 수준에 맞춰 곡을 편곡하여 같이 연습을 했어요. 음악활동을 통해 장애인들이 조금이나마 내면적, 정서적인 성장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아이들의 연주는 청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데, 정작 그들에게는 저희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늘 고민에  빠져들곤 해요. 물론 연주에 있어 자신들의 멜로디에 충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 안에서 행복하고 서로 어우러지는 즐거운 앙상블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무대를 향한 청중들의 따스한 감동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2년 자선음악회 포스터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재학 중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초청으로 제네바 국립음악원으로 유학길에 오른 배재영은 한국인 최초로 플루트의 거장인 막상스 라뤼를 사사했다. 유학 중 'Bach & Song' 타이틀로 바흐 패밀리의 실내악 시리즈 기획 및 연주를 필두로 국제 아동 기구 특별음악회, 제네바 현대 음악제 등 다수의 초청 연주를 가졌다. 귀국 후에는 KBS 교향악단 부수석을 역임했고,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와 '교향악 축제', 'KBS FM 실황 콘서트' 등 국내의 대표적인 클래식 무대에서 솔리스트로서 최고의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음악의 리듬, 화음, 멜로디의 조화가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아주 큰 요소들이기 때문에 힐링의 효과가 큰 것 같아요. 장애, 비장애를 떠나 감성을 긍정적으로 건드리게 되면 삶의 의욕도 자연스럽게 커지고요.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는 치유 효과와 그 안에서 자신만의 재능을 찾아 자립할 수 있는 기반도 더불어 생길 수 있으니까, 음악이 장애인들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플룻콰이어'의 자선음악회나 경험들을 통해서 미약하나마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거죠."

 

배재영은 겨를이 있을 때마다 제자들과 장애 단체를 방문하여 설거지나 배식 봉사도 하고, 일일이 방에 들어가 연주를 할 때도 있다. 물론 '사랑의 플룻콰이어' 음악회 때 많은 장애인들을 공연장으로 초대하지만, 장애가 심해 외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연주를 하기도 한다. 음악을 통한 장애인들과의 만남이 지속되면서, 그녀는 보다 전문적인 시각에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했다. 단순히 공연의 나눔을 넘어, 보다 직접적으로 맞춤 음악교육을 통해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2013년 사랑의 플룻콰이어 음악회 포스터

 

연주자들이 멘토의 입장에서 발달장애 음악 전공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재능 나눔의 프로젝트 그룹인 '서울뮤직그룹챔버'가 만들어진 것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각 분야의 중견 연주자들과 주목받는 신예 연주자들이 함께 연주하며 재능 나눔의 진정한 모습을 지향하는 실내악단이다. 현악기와 관악기, 타악기 등을 어우르는 편성으로 다양한 형태의 실내악 연주가 가능한데, 이들은 매 연주회마다 프로그램의 일부분을 발달장애 청소년들과 연계하여 함께 연주한다. 그 과정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화된 양질의 음악교육과 지도법을 개발해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매해 공연의 수익금은 전액 장애단체에 기부하여, 재능 나눔의 의미를 더한다. 

 

음악 안에서 함께 행복을 나누다

플루티스트 배재영은 솔리스트로서의 활동 외에도 '플루트로 노래하는 사계', 'Love in Music', 'Around Fifties' 등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음악들을 재해석해 연주하며 플루트 레퍼토리를 보다 폭넓게 보여주었으며, 꾸준히 테마를 가진 독주회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시각장애를 극복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과 피아니스트 유지수와 함께 '미라클아이즈 트리오'를 창단했는데, 이는 클래식계의 또 하나의 감동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 시각장애를 가진 훌륭한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무대는 물론 점자악보 보급,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악 교본 제작 등 시각장애인의 음악활동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는 연주그룹이다. 배재영은 숭실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며, 사랑의 플룻콰이어, 미라클아이즈 트리오, 서울뮤직그룹챔버를 통해 재능 나눔의 참다운 모습을 전하는 문화 메신저이다. 

"지금은 연주그룹의 규모도 커져서 일도 많고, 부족한 것들도 많지만 하나도 어렵게 생각되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마땅한 연습실도 구하지 못해 추위에 떨며 연습을 했는데, 올해에는 유중아트센터 정승우 이사장께서 홀을 연습실로 내어 주셔서 너무 편하게 모일 수 있게 됐어요. 또 어떤 분은 프로그램 책자를 만들어주시고, 훌륭한 연주가들이 개런티 없이 저희 공연에 참석해 주시니 너무 감사하죠. 그분들 모두가 재능 나눔을 실천하시는 분들이에요." 

미라클아이즈 트리오의 주인공인 배재영 교수와 김종훈 바이올리니스트, 유지수 피아니스트

 

플루트는 자신의 호흡을 가장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악기라서 연주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매력적이라고 한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늘 연주 실력뿐만 아니라 동시에 음악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가르친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할 때는 그 당시 시대 배경이나 문화적 배경은 물론 그 음악가와 친분이 있었던 사람, 동시대의 문학과 미술 등도 함께 공부를 해야 자신의 음악적 시야도 넓어진다고 강조한다.

 

"요즘에는 대부분 어린 나이에 클래식 음악을 접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연주 실력과 함께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부분을 부모님들께서 잘 도와주셔야 돼요. '네가 음악을 하는 데에 이만큼의 비용이 들고 희생도 따랐으니 콩쿠르에 나가야 되고, 이만큼 잘해서 평생 해야 돼!'라는 과도한 부담을 주면 행복하게 연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보다는 음악을 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하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 대화를 통해 자녀 스스로가 인식할 수 있도록 자부심을 심어 주세요. 자신이 행복해야만 열심히 할 수 있고, 힘든 상황도 참을 수 있게 되죠."

 

무슨 일이든지 행복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재영 교수는 말한다. 스스로가 잘 알지도 못하고, 원하지도 않는 최고를 위해서 무조건 노력만 하는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과도한 욕심이나 기대보다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좋은 가치를 심어주라고 조언한다. 음악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렇게 의미가 있는 음악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너무 훌륭하다고 격려해 주라고 한다. 음악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플루티스트 배재영은 1년 365일 내내 꿈과 사랑을 선물하는 음악 산타가 아닐까 싶다. 그 아름다운 행보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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