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구별과 차별을 이기는 희망의 연주,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 강미사

난짬뽕 2021. 1. 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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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 대표인 강미사 첼리스트를 만난 것은 지난 2016년 6월이었습니다.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지 않은 서초동의 작은 카페에서 우리들은 정말로 편한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기억에 남지만, 우리는 특히 교육관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테크닉뿐만 아니라 그 바탕이 되는 자양분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비단 한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거든요.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구별과 차별을 이기는 희망의 연주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 대표 강미사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는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진 통합 오케스트라이다. 장애인 단원 15명과 비장애인 전문 연주자 11명이 향기로운 호흡을 맞추고 있다. <꺼내먹는 클래식><그림에 빠진 클래식> 등 신선한 기획과 다양한 레퍼토리의 공연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첼리스트이자,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를 지휘하고 있는 강미사 대표를 만나 음악 안에서 꿈을 키우고 희망을 그려나가는 그들의 아름다운 속삭임에 귀 기울여본다. 

글 엄익순 사진제공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

 

 

음악 안에서 이루어진 소통과 통합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가 소망하는 것은 단순히 장애 연주자들의 음악적인 교육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아트빌리티란 예술을 뜻하는 'Art'와 능력을 의미하는 'Ability'의 합성어. 오케스트라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수많은 장애 연주자들의 예술적인 재능을 키워 그들 스스로가 음악을 통해 자립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장애'라는 편견에 갇혀 무한한 예술적 가능성을 피워보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는 우리 사회의 편협한 시선에 일침을 가하는 것만 같다.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짓지 않고, 음악 안에서 함께 소통하기 위함. 이것이 바로 장애 단원들과 비장애 전문 연주자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통합 오케스트라가 창단된 배경이다. 장애인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아지고, 이를 통해 경제적인 자립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 강미사 대표의 궁극적인 바람이다.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는 그 희망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사진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

 

"실력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이 우리 아트빌리티의 연주를 들을 때, '장애·비장애'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공연을 보여드려도 장애인 연주자들이 갖고 있는 음악성보다는 그들의 장애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거든요. 감정적인 안타까움이나 동정심으로 인해 정말로 중요한 그들의 음악성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인 연주자들을 향한 괜한 시선보다는 그들의 의지와 재능, 음악성을 정면으로 바라봐주시면 좋겠어요."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 단원들은 장애, 비장애 연주자들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에게 음악적인 가르침을 주고받으며, '함께 연주하는 법'을 배워 나간다. 고난도의 연주기법은 비장애 전문 연주자들이 한 수 위에 있을지 몰라도, 오롯이 무대 자체를 즐기는 집중력은 장애 단원들을 따라갈 수 없다. 그들은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 안에서 서로 음악적인 소통을 하며 더불어 성장해 나가고 있다. 

 

장애인 연주자들의 자립을 키워 나가다

"처음에는 장애인 연주자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할지 아무런 지식이 없어서, 그냥 아이를 대하듯 했던 것 같아요. 특히 지적장애 단원들이 '안 돼', '하지 마' 등의 부정적인 말들을 싫어하는 것도 잘 몰랐어요. 연습하다가 팀원들 앞에서 무심코 던진 '너, 틀렸어'라는 얘기에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똑같이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러워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미처 배려하지 못했던 거예요. 지금은 장애, 비장애 구분 없이 모두들 동료로서 서로 존중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독일에서 첼로를 공부한 후,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던 첼리스트 강미사에게 2012년 장애 연주자와 비장애 전문 연주자의 통합 연주단체인 에이블 뮤직그룹에서 음악감독을 제의한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열정을 갖추었어도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 연주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채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연주자가 경험이 많은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장애 연주자들을 어떻게 지도할 수 있을지 의아해했고, 결국 많은 장애인 단원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그룹을 떠났다. 남은 장애인 연주자는 3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힘을 모아준 전문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를 계속 이어갔다. 

 

그러나 얼마 후 소속기관이 발달청소년오케스트라를 창단하게 되면서 그녀와 전문 연주자들, 그리고 장애 단원까지 새로 만든 오케스트라로 초대받는다. 문제는 에이블뮤직그룹에 남아 있는 장애 단원들이 모두 성인이었기 때문에 청소년오케스트라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 그녀는 끝까지 자신을 믿어준 장애 단원들과 헤어질 수 없었고, 그것은 그동안 함께했던 전문 연주자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1월 결국 센터에서 분리 독립하여,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가 탄생하게 되었다. 소속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지원과 후원도 끊어지고 연주회를 열 상황도 아니었지만, 장애 단원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나 전문 연주자들 그 누구 한 명도 떠나지 않았다. 당시 남아 있던 3명의 장애 단원들은 아직까지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창단 당시 3명이었던 장애인 연주자가 지금은 15명으로 늘었어요. 처음에는 성인 단원만으로 구성하고자 했는데, 어린 친구들이 저희 무대를 보고 오디션을 보러 찾아오는 거예요. 사실 연주 실력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우리와 함께하고픈 마음이 정말 간절하게 전달되다 보니 거절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청소년 단원들도 4명이나 있답니다. 연주를 아주 잘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연주는 좀 세심하지 않지만 워낙 사회성이 좋아서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는 단원도 있지요."

 

장애 연주자들이 안정적인 음악적 일자리를 통해 독립된 연주자로 자립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어느 단체에 소속되더라도, 그 안에서 잘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배려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리허설을 진행하거나 공연 당일에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힐 때가 많다. 실제로 대기실에서 남의 악기를 만지거나 솔로 연주가 예정된 단원이 규칙적인 시간에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저녁 공연에 오지 않았던 적도 있다. 처음에는 이러한 일들이 모두 당황스러웠지만, 몇 번의 경험으로 제법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지혜도 생겼다. 자신이 정해놓은 틀 속에서 철저히 규칙을 지키기 위해 저녁 공연에 나타나지 않았던 친구는 지금 오히려 "내일 연습 몇 시예요?"라는 문자를 보내며 다른 비장애인 단원들을 배려한다. 

 

"앞으로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와 같은 통합 오케스트라가 전국 곳곳에 생겨 장애와 비장애 연주자들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장애 연주자들이 좋은 무대에서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음악적 기교에 앞서 예술적 자양분을 키워라

어린 시절, 강미사 대표는 말을 하기 전부터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노래를 흥얼거릴 만큼 음악적인 감수성이 풍부했다. 4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는 첼로를 만났다. 묵직한 저음의 매력에 빠져 첼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그녀의 가늘고 작은 손가락은 첼로의 지판을 자유롭게 짚을 수 없다는 이유로 전문 음악인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손도 작고 재능도 부족해서 음악인의 길을 갈 수 없다는 선생님들의 말씀. 그러나 음악이 좋았고, 첼로를 계속 연주하고 싶었던 그녀는 결국 13세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다. 오디션에서 만난 제르노바 선생님은 그녀의 연주를 듣고, "너의 재능과 가능성을 믿는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칭찬에,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쳐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모든 예술은 하나로 통하므로 폭넓게 경험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틈나는 대로 오페라와 연극, 발레와 전시회 등을 보러 다니고 책도 많이 읽었다. 

한국에서는 재능이 없다는 말에 좌절했던 강미사는 유학을 떠난 지 2년 만에 제르노바 선생님의 권유로 국제 콩쿠르에 나가게 된다. 1998년 드레스덴 국제 영 첼로 콩쿠르 3위 입상. 이를 계기로 러시아 명문 상트페테르부르크 영재음악학교를 졸업(2001년)한 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Diplom 최우수 졸업(2008년), Master 최우수 졸업(2011년) 등 16년간 러시아와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한다. 

 

"제르노바 선생님과의 만남은 제게 큰 영향을 줬습니다. 원래는 1년을 목표로 러시아로 떠났는데, 공부를 할수록 첼로를 연주하는 것이 더 좋아지고, 음악을 깊이 있게 즐길 수 있었거든요. 한국에 귀국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부모님들께서 아이를 무섭게 가르쳐달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야 정신을 바짝 차려 연습을 한다고요. 어릴 때 빨리 두각을 나타내야 그 후의 생활이 편해진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조금 길게 앞을 내다봤으면 좋겠어요. 어린 나이의 음악적 기교만을 통해 재능 여부를 한정 짓지 말고, 발전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켜봐 줬으면 해요. 대신 자신의 음악적 자양분을 키우기 위해 악기뿐만 아니라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가고, 친구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음악 이외의 많은 장르들을 접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는 그동안 장애 연주자들에게 연주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사회 소외계층의 문화 향유를 확대하기 위해 찾아가는 콘서트도 진행 중이다. '장애'라는 사회적인 편견에 대해,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가 하고 싶은 말은 '함께'가 아닐까 싶다. 장애 학생들에게 음악이 평생 직업이 될 수 있도록 전문 연주자들과 희망을 연주한다. 그 꿈의 속삭임이 훨훨 날아올라 활짝 핀 결실을 맺도록 함께 응원한다. 

Vol. 107 JULY 2016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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