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오후에는 쇼팽을 만납니다
예프게니 키신
폴란드 태생의 쇼팽에게 있어 프랑스는 그의 삶의 전반을 차지합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바르샤바를 떠나 1849년 39세의 나이로 파리의 펠라세즈 묘지에 묻히던 그날까지, 그가 프랑스에서 보낸 시기는 낭만파 피아노 예술의 절정을 이루는 많은 걸작 소품들이 탄생했습니다.
파리 시절의 작품 가운데서 그 내용이나 규모에 있어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역시 '발라드'입니다. 쇼팽이 시인 아담 미키에비치의 설화시를 읽고 난 후 받은 감동을 그대로 피아노 선율에 옮겨 만들었다는 <발라드, No. 1~4>.
이 음반은 젊은 시절의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이 쇼팽의 발라드 전곡을 자신만의 색채로 독특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1984년 모스크바 공연 실황으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 2번>과 카네기 홀 리사이틀 시리즈로 발표된 두 장의 쇼팽 음반, 그리고 이 앨범까지 한 작곡가의 작품을 시리즈로 녹음하지 않는 그의 연주 스타일을 떠올려 본다면, 키신은 쇼팽에게만은 꽤 호의적인 것 같습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대를 잇는 피아니스트로 기대를 모은 예프게니 키신은 1971년 10월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두 살 때부터 연주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1984년 3월 12세의 어린 나이로 모스크바 음악원 그랜드 홀에서 드미트리 키타엔코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필하모닉과 쇼팽의 <두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여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 곡으로 1990년 주빈 메타가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과 카네기 홀에서 첫 리사이틀을 가졌는데, 이 녹음 음반은 그해 그래미 상의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일부 음악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키신의 감정 표현과 테크닉에 대한 강렬함이 너무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잔잔한 감성 속에서 내뿜어지는 뜨거운 열정이야말로 키신만이 자아내는 특유의 색채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흐른 오후에는 잠시 예프게니 키신과 함께 쇼팽을 만나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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