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립(Flipped)
풋풋한 첫사랑의 옷을 입은
따뜻한 가족 이야기
영화 <플립(Flipped)>을 한마디로 표현해야 한다면, 저는 아주 '예쁜'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봐도 재밌고, 이미 성장통을 다 겪은 어른들이 보면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지는 따뜻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물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본다면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곱 살 소년 소녀의 첫만남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그래서 귀엽기도 하고,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풀어주는 부드러운 온기도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앞집으로 이사 온 브라이스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한 줄리. 영화의 전개는 브라이스를 자신의 첫 키스의 상대라고 생각할 만큼 소년의 아름다운 눈과 미소에 마음을 빼앗긴 줄리와 자기를 자꾸만 쫓아다닌다고 느껴지는 줄리가 부담스러운 브라이스의 시각으로 영화는 펼쳐집니다.
하나의 똑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브라이스와 줄리는 자신의 입장에서 느끼고 해석하다 보니, 때로는 생각하지 못한 오해가 쌓이고 그로 인해 서운한 감정까지 폭발하기도 하고요. 이웃이 된 소년 소녀는 같은 반 친구로서 첫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맑고 유쾌한 에피소드들을 풀어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아름다운 것은, 아이들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 만난 일곱 살 무렵부터 1인칭 시점으로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두 아이의 솔직한 감정들이 귀엽기도 하고 예뻐서 웃음이 터져 나올 때가 있는데요. 브라이스와 줄리의 코미디 같은 밀당은 곧 자신들의 가족 이야기로 이어지며 시각의 폭을 넓힙니다.
가정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모와 자녀들간의 사랑과 신뢰가 묻어나는 줄리의 가족. 이 가족의 따뜻함은 어느 날 저녁식사 시간에 터진 부부의 말다툼 이후에, 잠자리에 드는 딸에게 아빠와 엄마가 각각 어떤 모습과 태도를 보여주는지의 장면에서도 바로 엿볼 수 있었습니다.
늘 빠듯한 살림살이에 대한 불만은 없었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아이들이 좀 더 번듯하게 생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이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었는데요. 근근이 살아가다 보니, 마당의 뜰을 가꾸지 못하고 지저분하게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속사정도 숨어 있답니다.
반면에 브라이스 가족은 좀 부유한 편인데요. 떠나간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늘 창밖만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조금은 삐딱한 시선을 갖고 있어 늘 불만스러운 말투를 쏟아내는 아빠와 그러한 아빠와의 사이가 좋지 않은 누나의 모습이 그려지는데요. 이런 가족의 분위기 속에서 어린 자녀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소통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가정 내에서 부모의 빗나간 시선으로 인해 자녀가 어떤 선입견을 갖게 되는지, 아니면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던 자녀에게 아빠 엄마의 어떤 모습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해 이 영화는 아주 조용히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지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가족과 이웃, 그리고 사회에서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관계와 관계맺음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곱 살 어린 소년과 소녀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 관계의 복잡함 속에서 잠시 길을 잃으며 내면적 갈등을 겪기도 하는데요. 줄리의 아빠가 자신이 딸에게 이런 말을 해줍니다.
풀밭은 그냥 풀과 꽃일 뿐이고,
나무 사이로 엿보는 햇살은
그냥 빛줄기일 뿐이지만
그 모두를 합치면
마법이 일어난다
이 말은 '항상 부분보다, 그 부분들이 만들어낸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데요. 어느 사람의 어떤 행동 뒤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그만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일방적인 감정의 선입견 때문에 모두 나쁘게만 평가하거나 반대로 한 부분만을 보고는 그 부분만을 부각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일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좋은 면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면도 모두 모여 하나하나의 퍼즐 조각들을 맞춰나갈 때 비로소 하나의 전체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또하나 느낀 것은 바로 할아버지의 '어른으로서의 역할'이었습니다. 손자와 산책을 하며 건넨 "일어나지 않은 일에 집착하면 안 돼. 지레짐작으로 원망하지 마렴."이라는 말도 좋았고, 줄리에게 무례했던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는 손자가 바른 생각을 할 수 있게 한 "사람의 성격은 어릴 때 형성되지. 너무 빗나가면 고치기 어려워. 정직한 관한 문제도 그래. 정직이란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나중에 생길 더 큰 문제를 막을 수 있지."라는 조언도 좋았습니다.
영화 <플립>은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7월에 개봉되었는데요. 7년 전인 2010년에 제작된 작품인데, 그 당시에는 국내에서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감독은 로브 라이너인데요. 아마 그의 많은 작품들을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스탠 바이 미>를 비롯하여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미저리>, <어 퓨 굿 맨>, <버킷 리스트> 등의 작품들을 연출했습니다.
<플립>은 웬들린 밴 드라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책으로도 만날 수 있으니, 영화 대신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로브 라이너 감독은 아들의 소개로 이 원작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평범한 사람도 있고,
반짝이는 사람도 있고,
빛나는 사람도 있지.
하지만 모든 사람은
일생에 한번쯤은
무지개 같은
오색찬란한 사람을 만난단다.
할아버지가 손자 브라이스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 또한 무지개빛이 나는 소중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지만,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에 얽매이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나 오해로 발생하는 이견의 과정들로 인해 우리의 인간관계는 참으로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는 이 영화를 한번 감상해보시면 어떠실까요.
일곱 살부터 열세 살때까지의 두 주인공의 성장기를 통해, 그리고 그 가족들의 사랑과 아픈 상처와 마음속에서 썩고 있는 젊은 날의 묻어버린 꿈에 대해서 직면하게 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여운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집 마당을 가꾸지 않는 줄리의 부모를 무책임한 사람으로 여기고, 음악의 길을 가고자 하는 줄리의 오빠들을 문제아로 규정짓는 브라이스의 아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갑자기 함께 살게 된 외할아버지의 무기력함에 거리감을 느끼는 브라이스, 장애를 안고 있는 삼촌을 돌보기 위해 희생하는 줄리의 가족.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이들의 모습 안에는 그들을 성장시키는 그 무엇인가가 함께 존재합니다.
풍경의 부분이 아닌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만 볼 수 있는 그 무엇을, 영화 <플립>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듯합니다. 포스터는 나무 위에 올라간 두 주인공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나무 위에 올라갔을 때의 바람이 어루만져주는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줄리를 위해 나무 한그루를 심어주는 브라이스와의 더 많은 이야기는 직접 영화를 통해서 만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 <플립>은 내 자신과 가족을 돌아볼 수 있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소소한 감정들을 모아 큰 인생의 밑그림을 그려나가게 하는 따스하고도 예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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