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추천
월드 온 파이어
WORLD ON FIRE
<월드 온 파이어>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지난 2019년 BBC에서 제작된 영국 드라마입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에피소드 7편으로 된 시즌1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말 내내 남편과 함께 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전개 속도도 빠르고, 장면들에 대한 구성 역시 군더더기가 없어 에피소드가 넘어갈 때마다 긴장감이 동반되는 작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휩쓸리게 된 영국과 파리, 폴란드, 벨기에, 독일 등의 나라에서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의 인생이 전쟁으로 인해 어떻게 변모되는지에 대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공포와 위기 속에서 사람들의 운명은 뜻하지 않게 어긋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과 사랑은 뿌연 안갯속의 가느다란 빛줄기처럼 아슬아슬하게 이어져만 갑니다.
전쟁은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폴란드에서 통역관으로 일하던 젊은 영국인은 그곳에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 무렵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게 되자, 사랑하는 여자를 폴란드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급하게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동생을 전쟁터에 보내고 홀로 남게 된 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남겨둔 채 떠날 수 없었던 그녀는 연인과 이별하는 아픔을 안은 채 폴란드에 남아 저항군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국에는 그 남자를 사랑했던 또 한 명의 여인이 결혼한 전 애인의 아이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남자가 자기 사랑이 아닌 걸 깨닫게 된 그녀는 재능 있는 가수로서 전쟁에 기여하기로 결심하고 군대를 위한 공연팀에 합류합니다.
이 작품의 뼈대는 이렇게 두 축으로 나뉘지만, 결코 그들만의 이야기로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매일 거리에서 벌어지는 총살과 그것을 사진으로 담아두는 독일군, 총살로 폴란드인을 죽일 때마다 그 명수대로 독일군을 죽일 각오를 하는 평범했던 웨이트리스, 독일인 이웃과 친구가 되고 전쟁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미국인 특파원 등의 모습과 갈등이 함께 펼쳐집니다.
또한 파리의 병원에서 일하는 한 젊은 미국인 외과의사와 흑인 재즈 음악가 간의 동성애와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모든 행동을 회피하려 하는 한 청년의 심리, 훌륭한 간호사이지만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는 마음속의 두려움 등도 이 드라마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요소들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월드 온 파이어는 전쟁에 참여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전쟁에 대한 실상과 무서움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와 더불어 전쟁에 아들을 보낸 아버지로서의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고통받고 있는 부모의 심리를 통해 다시 한번 전쟁의 잔혹한 결과들을 대변해 줍니다.
에피소드 3화에서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졌거나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죽이고자 하는 정책을 펼치는 나치의 안락사 프로그램이 나오는데요. 이는 열성 인자들을 없애 강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이웃이 이웃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가운데, 병을 앓고 있는 딸을 지키기 위해 나치 당원이 된 독일인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부끄러움은 사치다!"라고요. 나치 당원이 된 부끄러움보다 사랑하는 어린 딸을 지키고 싶었던 아버지로서의 사랑.
에피소드 5화에서는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의 모습들 중에서 특히 포탄 쇼크에 시달리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만날 수 있는데요. 저는 그냥 전쟁 공포증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포탄 쇼크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차라리 미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라고 말하는 군인들. 그들은 자신들이 전쟁이라는 틀 속에서 소모품처럼 여겨졌다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전쟁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그들 모두는 전쟁 앞에서 스스로 어떠한 선택을 하기에는 너무나 약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에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크나큰 상처의 대가가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해 충분히 소화해내며 보는 이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남편을 떠나보낸 후 홀로 아들을 키운 로비나 체이스의 역할이 참 감초 역할로 다가왔습니다.
아들을 훌륭한 사회적 지위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었지만, 그녀의 눈에 자신의 아들은 늘 나약했고 실망스러웠습니다. 전쟁의 공포가 휩쓰는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늘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관조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이 드라마의 모든 인물들이 위태롭게 등장하지만, 그녀의 담담한 표정과 태연한 태도를 통해 그러한 위기와 무서움에 대한 긴장이 한 템포씩 쉬었다 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누군가는 세상 물정 모른다고 그녀를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녀 역시 남편을 전쟁으로 잃었고 자신의 아들 역시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데 어찌 마음이 마냥 평온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밖으로 드러내 표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월드 온 파이어는 전쟁이라는 큰 틀에서 사랑과 인생과 가족과 사회에 대한 모든 소재들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는 물론 여러 가지 사랑의 색깔과 아픔,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동성애와 양심적 병역 거부, 유색인종이나 장애나 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드러내며 사회적 고민들에 관해서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전개 속도가 빨라 몰입감이 높았는데요. 이 작품이 마냥 사랑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야를 넓혀 영국, 프랑스, 폴란드, 벨기에, 독일을 배경으로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전쟁이라는 공포 안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생활이 바뀔 수 있느냐를 보여줘 현실감이 높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전쟁의 기류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지난주에 보게 된 월드 온 파이어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명목으로도 전쟁에 대한 합리화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어느 부분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전쟁은 참~~~~~" 열린 결말로 끝을 맺었던 월드 온 파이어의 시즌 2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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