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中
'편지의 이중창'
쇼생크 탈출
쇼생크 탈출은 내가 본 감옥을 소재로 다룬 영화 중에서 가장 잔잔한 반전을 안겨준 영화이다. 그래서 몇 번이고 다시 볼 때마다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이 유지되는 원동력은 바로 범죄 서스펜스와 휴먼 드라마의 어법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데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모차르트의 음악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 개봉 : 1995년
- 감독 : 프랭크 다라본트
- 원작 : 스티븐 킹
- 출연 :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밥 건튼
- 음악 : 토머스 뉴먼
- 제작 : 미국(1994)
이 영화의 원작은 스티븐 킹의 인기 소설인 <사계>에 수록된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로, 이 중편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소설의 제목에 나오는 리타 헤이워드는 주인공 앤디가 파놓은 탈출구를 감추기 위해 붙여둔 포스터 속의 배우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은 작가의 허락하에서만 상업적 활용이 가능하다는 조건으로 젊은 영화학도들에게 단돈 1달러에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전해진다. 프랭크 다라본트는 1983년 스티븐 킹의 '방 안의 여인'을 단편 영화로 제작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는데, 이를 계기로 쇼생크 탈출에 이어 1999년에는 그린 마일을, 그리고 2007년에는 미스트로 작가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 그리고 치유
영화 쇼생크 탈출은 촉망받던 은행 간부인 앤디가 살해 혐의로 종신형을 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 후 탈출까지의 과정을 동료 죄수인 레딩의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탄탄한 스토리 전개 속에서 쉴 틈 없이 긴장할 만큼의 무게감이 있지만, 결코 암울하거나 좌절감에 빠져들게 만들지는 않는다. 또한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반전은 이 영화의 묘미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너를 죄수로 가두고,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앤디가 탈옥에 성공한 후 두 팔을 벌려 하늘을 보면서 비를 맞는 장면. 이 영화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그 포스터가 화제를 모은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두 줄의 카피는 강렬했다. 더러운 통로를 지나면서 묻은 오물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그 장면은 보는 나에게도 시원함을 안겨줬다. 마치 감옥 안에서의 억압된 인권과 더럽혀졌던 정신들이 깨끗하게 정화되고 자유를 찾아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쇼생크 탈출의 명장면들은 사실 몇몇으로만 한정 짓기에는 왠지 아쉬움이 클 것 같다. 여러 장면들이 인상 깊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가운데 '편지의 이중창'이 흘러나오는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교도소장의 신임을 얻게 된 앤디가 교도소 도서관의 소장 도서를 확충하며 수감자들에게 상실된 인간성을 되찾아주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기증된 도서 더미에 들어있는 레코드판을 발견하고는 곧 교도소 내 스피커에 연결하여 모든 사람들이 음악을 듣게 한다. 화가 치민 교도소장이 "경고한다. 그걸 꺼!"라며 외치지만, 앤디는 오히려 싱긋 웃으며 레코드의 음량을 높인다.
이때 흘러나오는 음악이 바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가장 유명한 '편지의 이중창 - 포근한 산들바람이'이다. 이 아리아가 퍼지자, 모든 수감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아름다운 선율에 귀 기울인다. 그 장면은 어쩌면 음악이 선사하는 치유와 회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지금도
이 이탈리아 여인들이 뭐라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실은 알고 싶지도 않다.
모르는 채로 있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난 그것이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워서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든 이야기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 목소리는
이 회색 공간의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가 갇힌 새장에 날아 들어와
벽을 무너뜨린 것과 같았다.
아주 짧은 한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이 음악을 들은 레딩은 이렇게 회상한다. 원작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이 부분을 영화에서는 왜 새롭게 등장시킨 것일까? 그리고 그 음악이 모차르트의 오페라인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프랑스의 극작가 보마르셰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로시니의 오페라로 널리 알려진 <세빌리아의 이발사> 속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등장인물 또한 동일하다. 바람둥이인 알마비바 백작이 자신의 하인 피가로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하녀 수잔나를 유혹하려 하지만, 이발사 피가로가 백작을 물리치고 약혼녀 수잔나와 결혼에 성공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당시 프랑스 특권층의 부패와 타락을 풍자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편지의 이중창 - 포근한 산들바람이'는 3막에서 수잔나와 백작부인이 함께 부르는 노래인데, 백작의 야욕을 꺾기 위해 약자인 부인과 하녀가 함께 꾀를 짜내는 내용이다. 즉, 어쩌면 이 노래를 통해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속에는 똑똑한 서민이나 하녀, 하인들이 귀족을 골탕 먹이는 줄거리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만큼 시대를 꼬집거나 해학이 들어있는 작품들이었다. 모차르트는 늘 서민과 귀족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가 오기를 꿈꾸었는데, 그래서 쇼생크 탈출이 은유적인 사회적 비판과 자유로의 갈망을 모차르트와 연결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저 벽을 원망하지.
하지만 시간이 가면 저 벽에 기대게 되고
나중에는 의지하게 되지.
그러다가 결국엔 삶의 일부가 돼 버리는 거야.
길들여진다는 것은 때로는 무서운 자기 억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석방되지만 결국 스스로를 가누지 못해 자살하고 마는 브룩스를 통해서도, 또 정해진 틀을 벗어나 자유를 되찾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던 레딩을 통해 누구나 자유를 원하지만, 주어진 자유에 적응할 수 없는 비극이 존재함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단지 그것은 영화 속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우리 주변에서 자신의 생각조차 누군가의 힘을 빌려 의존하거나, 혹은 간단한 무엇 하나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는 결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리 적지 않은 것 같다. 레딩의 말처럼 처음에는 그 벽에 기대게 되지만, 나중에는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음을 언제나 기억했으면 한다. 그 벽이 어떤 종류의 벽이건 간에,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는 바로 개개인 나 자신이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희망은 좋은 거예요.
가장 소중한 것인지도 몰라요.
그리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자유로운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의 긴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사람.
태평양이 내 꿈에서처럼 푸르기를 희망한다.
화장실에 갈 때조차도 허락을 받고 다녀오는 세월을 산 레딩이 앤디를 만나면서 꿈을 꾸게 되고, 희망을 갖게 된다. 쇼생크 탈출은 단순히 감옥을 탈주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자유가 상실되었을 때, 그로 인해 자아의 가치도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우게 됨을 말해준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 속에서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더불어 어떻게 문제에 대처하고 자신을 지켜갈 수 있을 지에 대한 질문까지 던져주고 있다. 역시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야 될 것 같다. 참, 이 영화를 볼 때는 꼭 입안이 얼얼해질 정도의 시원한 맥주를 준비해두면 어떨까. 아마 이 마지막 문장에 웃음을 띄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 이유를 알고 계시다는 뜻. 분명 그 장면을 떠올리실 것이다. 그분들과 함께 Cheers!!!
세상을 향한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 색소포니스트 김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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