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청중과의 아름다운 소통, 지휘자 박상현

난짬뽕 2020. 12. 2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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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예술의전당에서 박상현 지휘자를 뵙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몇 번의 터닝포인트가 다가왔습니다. 촉망받는 테너의 마음을 사로잡은 런던에서의 뮤지컬 관람과 우리나라에서의 <오페라의 유령> 공연 소식 등 너무나 소설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그의 역할은 주인공이었습니다. '듣는 사람이 없는 음악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그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친근하게 만날 수 있도록 작은 다리를 놓고 있습니다.   

 

청중과 행복한 교감을 나누는 아름다운 소통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박상현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음색의 테너였던 한 성악가에게 지휘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오페라 가수가 꿈이었던 그가 노래 대신 지휘봉을 잡고 무대에 올라 가장 먼저 한 일은 청중들과의 교감이었다. 때와 장소에 따라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연주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풍부한 음악적 지식과 온화한 리더십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 오케스트라인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Mostly Philharmonic Orchestra)를 탄생시킨 지휘자 박상현.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도전정신을 만나본다. 

글 엄익순 사진 이준용

 

 

노래하는 지휘자의 길을 가다

지휘자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꿈은 오직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오페라가수였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성악가 선생님에게 전문적으로 수업을 받게 하셨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할 무렵, 그는 악기가 아닌 노래를 통해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음악원 오페라 및 교향곡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에게 노래는 인생의 전부였다. 

2001년 예술의전당에서 주최한 오페라 <마술피리>에 캐스팅되어, 그해에만 30여 차례나 무대에 오를 만큼 음악계의 각광을 받는 유망한 테너였다. 공연이 막을 내리고, 우연한 기회로 영국에 가게 되었을 때 런던에서 뮤지컬을 관람하게 되었다. 바로 <오페라의 유령>과 <레미제라블>. 그 두 편의 작품이 성악가 박성현을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어버렸다. 

2015년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10월호 클래식 명사 초대석 중에서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이 넓어졌죠. 클래식 이외의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두 작품을 감상한 후 기존에 제가 갖고 있던 편견들이 많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클래식이라는 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인간의 심성을 울릴 수 있는 그런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이라면 어떤 장르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음악, 긍정적으로 사람을 순화시키는 도구로 음악이 사용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음악의 소중한 가치가 될 거라고 깨닫게 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앞으로는 뮤지컬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장르가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상현이 자신의 음악 세계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을 무렵, 2002년 공교롭게 우리나라에 <오페라의 유령> 공연 소식이 전해졌다.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심하게 감기에 걸려 그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실망에 젖어 있을 즈음, 그 공연의 지휘자 공개 오디션 공고가 떴다. 원래 지휘자가 내정되어 있었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새로운 지휘자를 영입한다고 했다. 오디션까지는 단 10일.

 

성악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 장르를 다 좋아하는 음악적 소양을 청소년기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는 학부시절 작곡가와 지휘과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 그 경험만으로 오디션에 참가하는 것이 조금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지휘과 교수를 비롯하여 시립교향악단의 지휘자들과 이름이 알려진 음악감독에 이르기까지 경쟁자들의 경력은 화려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뿐. 오디션 전날까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 이외에는 오직 공부만 했다. 2시간 30분가량의 <오페라의 유령> 전곡을 발췌해서 완벽하게 암보했다. 공정한 다섯 명의 외국인 심사위원들이 악보의 어느 부분을 지정해도, 감고 있는 그의 눈에는 음악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그는 지휘자로 선임되었다.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MPO) 창단

지휘자로서의 첫 무대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되는 10개월 동안 매일매일 지휘봉을 잡았다. 즐겁게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기쁨과 더불어 경제적인 수입으로 인해, 곧 공연이 끝나면 유학을 떠나 성악에만 집중할 수 있겠다는 설렘이 있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도 그는 유학길에 오르지 못하는 상황에 부딪혔다. 여러 오케스트라들이 그에게 객원지휘를 청했고, 예정된 연주가 끝나고 나면 다시 많은 곳에서 지휘를 부탁해왔다. 지휘 전공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그 어느 지휘자보다도 연주자들은 물론 관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어떤 무대에 오르든 진심으로 철저한 준비를 하는 박상현의 노력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공연이든지, 함께 하는 사람의 음악을 여러 번 들어보죠. 그들의 음악적 성격이 어떠한지, 무대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니까 저와 함께 연주를 하는 것이 편한가 봐요. 어찌 보면 지휘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필요한 일인데 말이죠."

 

지휘자로서의 영역은 점점 넓어져 갔고,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 역시 그의 무대를 찾기 시작했다. 성악가로서, 지휘자로서 그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우리 일상의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음악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2003년 11월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 오케스트라의 탄생은 바로 이러한 박상현의 작은 소망에서 싹트게 되었다. 

 

그가 창단한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금까지 남다른 행보를 그려왔다.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며 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12년 창단 10주년을 맞이하여 베토벤 교향곡 전곡 시리즈에 이어 2013년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곡, 2014년에 모차르트 연주 시리즈를 선보였으며, 실로 대중과 소통하는 클래식 공연을 만들어가기 위해 다양한 창작활동과 공연 콘텐츠 개발을 통해 새로운 공연문화를 열어가고 있다. 오페라와 교향곡, 미사곡, 왈츠를 기본으로 뮤지컬과 영화음악(왕의 남자 OST 지휘, 녹음), 드라마(주몽) OST, 게임음악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한 해에 100회 가까운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Mostly는 '대부분'이라는 뜻이잖아요. 클래식을 기본으로 다양한 장르를 모두 소화해내겠다는 의지를 담아 이름을 지었죠. 그러다 보니 다양한 장르에 있어 최초로 시도한 것들이 많아요. 국내 최초로 게임음악 연주회도 열었고,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들이 영화음악이나 드라마 배경음악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시절에 우리는 이미 OST 녹음을 했으니까요. 또 화면에 영상을 틀어놓고 연주했던 '영화음악 콘서트'도 지금까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했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모스틀리는 어떤 장르의 음악도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오케스트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어느 협연자가 오든 완벽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단 후 지금까지 약 1,500회가 넘는 연주를 해온 만큼, 방대한 레퍼토리를 자랑한다. 보통의 오케스트라들이 한 해에 평균 50회 정도의 연주를 하는 것에 비하면, 모스틀리의 행보는 괄목할 만하다. 

 

듣는 사람이 없는 음악은 필요 없다

민간 교향악단이 후원도 받지 않은 채, 12년 동안 자생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항상 어느 무대에 서든 관객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 상황과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작품을 선곡했다. 

"연주회가 끝난 후 관객들이 최대한 행복한 마음으로 귀가하실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그것은 저희 오케스트라가 존재하는 의미인 동시에 책임이라고 여겼습니다. 관객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 오케스트라가 존속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니까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지루한 클래식이 아닐 것입니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고 행복을 나누는 오케스트라가 되고 싶었죠. 그래서 때로는 교향곡 전곡을 들려드리는 대신 나누어서 연주할 때도 있었고, 친절한 해설을 곁들여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도 했습니다. 관객들과의 이러한 교감을 나누기 위해서는 지휘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 자신의 음악적인 가치관을 더욱 견고히 쌓아가고,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시야를 넓혀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 자신이 갖고 있는 성악적인 재능이나 지휘, 편곡 등의 지식도 한자리에 갇혀 있지 않도록 늘 노력해요. 나만의 음악이 아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음악이 될 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클래식 대중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휘자 박상현이 이끌고 있는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색채는 한마디로 멀티플레이어이다. 소화해내지 못하는 장르가 없고, 그들의 무대는 언제나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성악을 했던 지휘자이기 때문에 성악의 발성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 많은 성악가들이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르기를 원한다. 조수미는 7년 넘게 그와 함께 투어를 진행해왔고, 신영옥 역시 오래된 파트너로 호흡을 같이 한다.

 

지휘자로서 우리들에게 많은 감동을 전해주는 박상현에게, 많은 사람들은 성악가로서의 모습도 함께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지휘봉을 든 그의 무대에서의 마지막 커튼콜은 '축배의 노래'나 '향수'를 부르는 박상현의 목소리로 장식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클래식의 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저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한층 친근하게 클래식 음악과 만날 수 있도록 작은 다리를 놓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양질의 음악을 대접하는 요리사가 되어 관객 여러분을 대접하겠습니다."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그려갈 내일의 음악 스케치가 기대되는 것은 다름 아닌 지휘자 박상현의 손끝에서 채색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서로 기쁨을 함께하고, 때로는 아픔을 위로하며 마음을 나누는 음악을 그는 오늘도 완성해가고 있다. 그 아름다운 소통에 귀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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