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작은 이야기

피천득/ 이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

난짬뽕 2022. 5. 2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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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피천득

 

사진_ hu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 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 9 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가 손이 썩어가는 그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어찌 하지 못할 사실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의미를 지닌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어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30여 년 전에 펴낸 에세이집인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 처음 등장했는데요. 그는 이 책에서 소확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갓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먹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기분,
겨울 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온 고양이의 감촉,



토요일이었던 어제도, 그리고 일요일인 오늘도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다음 달에 장기출장이 잡혀, 그에 따른 준비를 해야 되어서요. 점심을 먹고 잠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창 밖을 바라보는데, 피천득 시인의 <이 순간>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오늘 저는 주말인데도 회사에 나와 업무를 봐야 한다는 짜증보다는, 어제보다 더 일찍 일어나 아침상을 차리고 집안 청소까지 마치고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저도 모르게 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생겨나다 보니, 어젯밤 늦게 퇴근을 했는데도 오늘의 피곤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몸과 마음이 훨씬 가벼워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친구 때문입니다. ㅎㅎ

 

사진_ hu

 

어제 늦은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다시 들어가는 길에 만난 이 캐릭터를 보는 순간, 그냥 웃음이 픽 나오면서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어느 카페 앞 출입문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요. 이름도 모르는 이 친구를 마주한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천근만근 느껴졌던 피로함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저는 이 친구 덕분에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느꼈던 그 소확행을 잠시나마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소소한 행복들은 어쩌며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방금 창밖을 내려다보면서 바쁘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에 시선이 갔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도 지금 이 순간, 자신들만의 특별한 행복을 이미 만났거나 혹은 만나러 가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들이 느끼는 순간순간의 행복감은 개개인들마다 모두 다를 것입니다. 그 소확행의 모양과 빛깔은 사람들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그 가운데 어느 것들만이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때로는 누가 보기에는 정말 어이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마치 제가 이 노란 캐릭터로부터 위안을 받은 것처럼요. 

 

우리들 삶에 있어서의 행복은 아주 거창한 큰 의미가 담겨 있는 화려한 것들만 주목받을 수도 있겠지만요.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그만큼의 시간이 걸어온 즈음에 잠시 멈춰 서서 드는 저의 생각은요. 아주 작고 가벼운 솜털 같은 것에도 웃을 수 있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한 작은 행복의 조각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만들어가는 사람일 테고요. 바로 오늘, 이 순간의 행복들을 놓치지 않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오늘은 아마도 특별한 행복의 순간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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