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영국 런던

생상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난짬뽕 2022. 7. 2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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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도착한 후 두 번째로 맞이하는 일요일, 나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로 향했다. 오페라 <SAMSON ET DALILA>를 보기 위해서 공연 시각보다 여유 있게 길을 나섰다. 

출장길에 오를 때만 해도 휴일에 이런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지는 미리 짐작하지 못했다. 2년 전에 온 출장 기간에는 주말에도 내내 밀린 업무를 처리했었는데, 이번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업무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평일 휴가도 생겨 베네치아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고, 주말에는 업무 부담 없이 개인적인 시간도 즐길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페라 공연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일찍 예매했더라면 더 좋은 자리에서,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티켓을 예매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어있는 자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내 자리는 관객석의 맨 높은 곳, 바로 가장 끝 자리이다. 그래도 사진 속에 보이는 여성 분처럼 서서 보는 자리가 아니라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몇 시간이나 되는 공연 내내 저렇게 서서 볼 정도의 열정이 있다니, 그분들이 대단했다. 

어느덧 공연장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금새 관객들로 꽉 찼다. 전방의 입석 자리는 물론 내 뒤에도 서서 보시는 관객들로 한 줄이 채워졌다. 

프랑스의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1835~1921)의 음악성이 빛나는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는 구약성서 사사기 제13장~제16장을 원작으로, 구성은 전 3막으로 되어 있다.

 

괴력의 힘을 가진 영웅 삼손과 그를 유혹하고 힘을 빼앗는 여인 데릴라의 이야기이다. 1877년 바이마르 대공 오페라하우스에서 독일어로 번안하여 초연되었고, 프랑스어로 무대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15년 후인 1892년 프랑스 파리에서 이뤄졌다.

 

극 중 삼손을 유혹하는 데릴라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는 넓은 음역의 서정적인 아리아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 3막에 등장하는 웅장한 '바카날' 음악에 맞춘 발레 장면은 강렬한 색채의 선율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우리들에게 '동물의 사육제'로 익숙한 생상스는 평생 13편의 오페라를 썼는데, 그 가운데 <삼손과 데릴라>는 오늘날까지 그의 가장 대표적인 오페라로 손꼽힌다. 

 

생상스가 프랑스어 오페라를 선보인 그 당시는 이탈리아어 오페라가 인기를 모으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삼손과 데릴라를 소재로 한 프랑스어 오페라를 발표한 것도 뜻밖의 일이었지만, 더욱 놀랐던 것은 여주인공 데릴라 역에 소프라노가 아닌 메조소프라노를 선택한 것이었다.

 

나 역시 그 이유를 듣고는 생상스가 감정이 참 세심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삼손을 배신하는 데릴라의 목소리가 창공을 찌르는 듯한 고음이 아닌 무대 위에 넓게 퍼지는 중간 음역대가 더 잘 어울린다는 것.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생상스의 그 깊은 의미가 전달되는 듯했다.

프로그램북에 소개된 삼손의 모습


무대에 등장한 삼손을 보고는 너무나 깜짝 놀랐다. 오늘의 주인공 삼손이 한국 사람이었다니. 감정에 젖은 그의 음성은 관객들을 숨죽이게 만들었다.

 

인터미션에 공연 팸플릿을 찾아보니, 테너 백석종 씨였다. 뉴욕 맨해튼 음대에서 공부한 그는 2021년 제49회 Loren L Zachary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촉망받는 음악가였다.

 

더욱 놀랐던 것은 바리톤으로 음악을 시작하여 테너 음역에 도전했고, 당당히 우승하면서 테너로서의 변신을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프로그램북에 소개된 무대의 모습. 화려하지는 않지만 강렬하다
프로그램북에 소개된 한 장면
프로그램북에 소개된 삼손과 데릴라의 모습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새벽의 키스에 꽃송이가 열리듯
당신의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는군요
그러나 오 사랑하는 이여. 내 눈물 그치게 하려거든
한번 더 말해 보세요!


이젠 영원히 데릴라에게 돌아왔다고 말해 주세요
다시 말해 줘요. 그때의 맹세들을
아! 나의 애정에 응답해 주세요
날 환희에 넘치게 해줘요


미풍에 일렁대는 필 이삭들의 살랑댐처럼
정다운 당신 음성에 품어질 듯 일렁이는 내 마음!
죽음을 이끌고 가는 화살조차도 당신의 품으로 날아드는
당신의 연인만큼 빠르지는 못해요
아! 나의 애정에 응답해 줘요!

<삼손과 데릴라>는 작곡 초기에는 오페라가 아닌 오라토리오로 구상하였으나, 2년에 걸쳐 오페라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지인들 앞에서 시연한 결과가 좋지 않아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 작품은 리스트의 격려 속에 결국 생상스의 최고 역작으로 재탄생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삼손을 유혹하는 데릴라의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는 메조소프라노들이 애창하는 대표적인 레퍼토리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물론 나 역시 서정적인 아리아인 그 곡을 좋아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3막에 등장하는 화려한 발레 장면과 함께 들려오는 '바카날(Bacchanale)'이다. 

 

유튜브에도 많은 연주 장면들이 소개되고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음악으로 꼭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생상스는 두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세 살 때에 피아노 소품을 작곡했으며, 다섯 살 때 피아노 반주가 있는 가곡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모차르트 이후의 신동으로 불리기도 한 생상스의 음악을 이 여름날의 밤에 한번 만나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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