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영국 런던

아이패드는 떠났지만, 동료애는 그 자리에

난짬뽕 2022. 7. 2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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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변화,
인생이 매력,
인생의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은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기 마련이야.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정말 그랬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에서 한 그 말처럼. 

아침 회의가 끝나자마자, 나의 아이패드도 갑자기 꺼져버렸다. 출근하기 전에 배터리도 가득 충전해왔는데, 화면은 검게 변해 있었다.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자료를 노트북에 따로 저장해놓기는 했지만, 업무를 볼 때 매번 사용하던 필수품이 탈이 나자 나의 마음도 싱숭생숭해졌다. 

 

옆에 앉아 있던 Zoe가 급하게 Harvey를 불렀다. Harvey는 모든 기기를 잘 다뤄서 평소에도 맥가이버라고 불린다. 이것저것 살펴보던 Harvey가 절망스러운 말을 했다.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다고. 

Harvey는 아이패드를 들고는 빨리 애플에 가서 AS를 받아보자며 나를 재촉했다. 직원들 모두 출장 온 내가 자료들을 통째로 날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어서 다녀오라며 Harvey까지 동행시켰다. 

 

"아니, 너무 걱정하지 마. 내 자료는 노트북에 따로 있어."라는 말을 했지만 동료들은 그래도 얼마나 속상하냐, 고칠 수 있을 거다, 잘 다녀오라, 별일 없을 거다, 라는 말을 건네며 나를 위로해줬다. 

 

그렇게 해서 Harvey와 함께 버스를 타고  Apple Regent Street에 도착했다. 

Apple Regent Street

1층에서 직원에게 아이패드와 관련된 나의 개인정보를 알려주자, 2층에서 잠깐 기다리면 담당자가 올 거라고 했다.

나는 담당자를 기다리며 충전기 앞에서 신기해하고 있었지만, Harvey는 계속 내 아이패드를 살펴보며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괜찮아, 라는 말을 했지만 Harvey는 오히려 자신의 일인 것처럼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드디어 담당자가 도착했고, 나의 아이패드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화면이 도통 켜지지 않았다. 

담당자는 여러 장비들을 갖고 와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내 아이패드의 소생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은 소생 불가 판정. 보드가 완전히 나갔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조금 착잡해졌다. 

2층에서 내려오며 Harvey에게 "난 괜찮아."라는 말을 했는데, Harvey가 더 속상해하며 나를 위로했다. 

Apple Regent Street를 나오면서 Harvey가 길 건너편에 잠깐 들렀다 가자고 했다. 그런데 그곳은 어느 식당 앞. 

Harvey가 말하길, "한국 사람들은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위로가 된다면서."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라는 표정으로 내가 쳐다보자, Harvey가 다시 말했다. "내가 가끔 한국 드라마를 보거든.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속상한 일을 겪은 사람에게 꼭 뜨거운 국을 사주더라고. 파도 넣어주고, 수저 위에 김치도 올려주고."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햄버거를 사줄까도 했는데, 갑자기 그 드라마 속 장면이 생각난 거야. 한국에서 먹는 뜨거운 국물은 아니더라도, 네가 이걸 먹고 힘을 냈으면 해."

정말 Harvey의 말처럼 뜨거운 국물을 먹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듯했다. 

중요한 자료들은 따로 저장해두었고, 물론 소소한 파일들을 날리긴 했지만. 그거야 뭐 할 수 없지. 시간을 들여 다시 일을 하면 되고.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회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코벤트 가든에서는 오늘도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Harvey가 이왕 지나가는 길이니, 한 번만 더 다른 매장에 들러보자고 했다. 그래서 Apple Covent Garden에 들렀다. 

2층에서 만난 담당자. 그의 말도 다르지는 않았다. 자료는 복구할 수 없지만, 만약 고친다면 4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 것 같다는 것. 너무 큰 비용이 드니, 그렇다면 오히려 새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나을 거라는 말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면서, 잠깐 고민이 되기도 했다. 지금 다시 새로운 제품으로 구입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한국에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는 용산이 있으니까. 

Apple Covent Garden

회사로 돌아가는 길, 나의 기분은 결코 나쁘지만은 않았다. 비록 갑자기 멈춘 아이패드로 인해 당황스러웠지만, 그 대신 내 동료들의 따뜻한 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찌그러진 여행 가방이
다시 인도 위에 쌓였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문제 되지 않았다. 
길은 삶이니까.

잭 케루악 <길 위에서> 중에서

 

Zoe와 Harvey를 비롯하여, 모두들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주고 배려해준 모든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인해, 이 정도의 일로는 나의 출장기간 동안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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