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키 색소포니스트의 인터뷰는 서울 북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2014년 5월 말, 유난히 더위에 약한 저는 북촌을 오후 내내 누비는 사진 촬영이 이뤄지는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너무나 힘들어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김오키 색소포니스트는 언덕길을 오르다가 어느 집 벽면에 서서 색소폰을 연주했습니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도, 지나가던 연인들도 그의 연주에 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 저의 마음은 무엇인지 모를 동요가 일어났고, 그의 원고를 쓸 때에는 정말 술술 막힘이 없이 편안하게 써 내려갔습니다. 약자가 누려야 할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를 이야기하는 그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그와의 만남은 잊을 수 없는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저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세상을 향한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
색소포니스트 김오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음악으로 말하고 있다. 그 목소리는 어쩌면 사람들이 잘 알고 있지 못하는 숨겨진 진실일 수도 있고, 때로는 굳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잊혀가는 상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오키는 오늘도 역시 그 메시지를 세상 속으로 던져버린다. 그의 음악 안에서 우리들의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다.
글 엄익순 사진 이준용
나의 음악을 하다
스물다섯 살 무렵, 그의 인생에 색소폰이 들어왔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그였지만 집에서는 음악과 관련이 없는,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기를 원하셨다. 음악의 길로 가기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너무나 완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떠날 수 없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펑키한 힙합 음악에 빠져들었다. 특히 그런 음악 속에서 배어 나오는 관악기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매료되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늘 그의 귓가에 관악기 소리가 맴돌았다. 그런 소리와 비트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학교와 집만 오가며 공부하던 그의 마음이 음악을 향해 정신없이 요동쳤다. 그러나 어떻게 음악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단지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고등학교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봐도 춤에는 걸출한 재능이 없었던 것 같다. 더 잘 추기 위해 이태원에서 고수들에게 한 수 배우기도 하고, 지하 연습실에서 밖에 나오지도 않고 미친 듯 연습하다 쓰러져 잠들었다 다시 눈을 뜨면 연습에 몰두했다.
유명 가수의 백댄서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고, 스트리트 댄서로도 그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음악과 늘 생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허전했다. 단 한 가지 이유, 나의 음악이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우연히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차별과 격리를 필름에 담아낸 프랑스 영화 <증오>를 보게 되었고, 어느 장면에서인가 흘러나오던 재즈 색소폰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존 콜트레인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조금은 재즈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결심했다. 늘 좋아하면서도 바라만 보았던 음악 속으로 이제는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때가 그의 나이 스물다섯 살이었다.
대중음악사에 기록될 이 시대의 이야기
바다 풍경이 그립고, 비가 내리는 아침에는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김오키. 그는 존 콜트레인의 연주를 듣고 재즈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고, 유독 자신의 마음에 남던 묵직한 울음의 금관악기 음색, 그 소리가 좋았기에 색소폰을 선택한다. 운지법이나 스케일, 소리 내는 법 등 기본적인 이론을 학원에서 배운 후에는 독학으로 실력을 쌓았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연습이 자정이 넘어서야 끝나는 날이 많았다. 잠에서 깨면 색소폰 연습을 하고, 다시 잠들었다. 그런 생활을 5년 넘게 보내게 되자, 나름대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재즈를 처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즈는 오히려 정형화된 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만의 음악을 그려내고 싶어 했던 김오키에게는 그 세계가 또 답답하게 다가왔다. 결국 그는 음악의 길로 가고자 했을 때의 마음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쏟아놓는다.
2002년부터 색소폰과 함께한 동행은 녹록지 않았다. 형식과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한 김오키의 음악은 또 다른 의미에서 도전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음악들을 엮어 2013년 첫 앨범인 <천사의 분노>를 발표하였다. 작곡한 곡들이 하나둘 쌓여가 그저 몇 장 소장하려는 의도로 녹음했기 때문에 발매할 생각도 없었던 이 앨범으로 그는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최우수 연주'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제 마음을 음악으로 담아내고 있었죠. 곡을 쓰면서 우연히 라디오를 들었는데, 조세희 작가의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거예요. 가슴이 너무 아파서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그 책을 사 읽었는데, 정말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우리는 모두 신 아래 평등한 인간이잖아요.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조금 넉넉하지 않더라도 차별받지 않고 밝게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한 우리의 모습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그동안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던 곡들을 모두 버리고 다시 만든 음악이 바로 이 앨범입니다."
1번 트랙 '너와 나의 음모론'에서부터 7번 트랙 '독립하지 못한 해방에 의한 자유'까지 모든 곡들이 하나의 음악처럼 느껴지는 이 앨범은 마치 음악으로 듣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 소외된 약자, 평화, 해방, 그리고 사랑 등이 바로 김오키가 음악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다. 시대가 변해가면서 잃어버린 인간애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가 1집에서 특히 애착을 느끼는 곡은 '칼날'이다. 등장인물인 '신애'라는 여성이 불의와 약자를 위해 휘두르는 칼날이야말로, 지금의 우리들이 마음속에 가져야 할 진정한 외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하곤 한다.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고 말이다. 불어오는 바람에 휘청거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음악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한국대중음악사에 그의 존재가 기록되었다는 것은 매우 큰 기쁨이다. 김오키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회에서 음악가로서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민들과 함께 평화의 땅으로
마음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꿈틀거리고 있는데, 그러한 외침을 표출하지 못해 한때 괴로워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김오키가 하고 싶은 음악의 길이 아니었다. 연주를 하면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즈음 우연히 타악기 연주자 박재천이 이끄는 집단 즉흥연주 프로젝트 SMFM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때 무엇인가 에너지를 배운 거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좀 더 미친놈처럼 할 수 없냐고 하시더군요. 네 안에 갖고 있는 것들을 막 미친 듯이 그대로 풀어놓으라는 의미셨어요."
그날 이후 김오키는 음악적으로 자신을 다 쏟아부을 수 있었다.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해지고 기분도 좋았다. 그는 요즘 음악을 하면서 자유를 얻은 것 같아 행복하다.
"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죠. 당장 나아지는 것이 없고, 쉽게 바뀌지는 않더라도 제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한 번 더 생각하고 더 나아가 같이 그것에 대해 공감해준다면 감사한 일이고요."
바쁜 일상에 밀려 현실을 잊고 살아가는 요즘 김오키의 음악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금의 시대정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2014년 LIG문화재단의 협력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올 한 해 동안 '난민'이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김오키의 음악 대작전> 무대 역시 김오키답다. 첫 번째 공연이었던 '만우절 <우리 이제 그만 속읍시다>'에 이어 '제1차 중동전쟁 <우리 모두 난민이요>', '인권의 날 <우리 모두 같은 인간 아니었소?>를 통해 그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 평화를 이야기한다.
"2집 앨범의 전체적인 주제는 '난민'입니다. 정치적인 난민뿐 아니라 현시대에서 우리가 사는 모습을 정신적 난민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항상 어느 곳에서 어느 곳으로 바쁘게 움직이며 온전히 마음 둘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수영 시인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보트피플상륙작전'은 어쩔 수 없이 삶에서 떠밀려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이동하려 하지만 결국 그곳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현시대의 배경이라고 말하고요. 그래도 잠시나마 세상의 근심을 모두 잊고 평화로운 마음에 빠져들길 원하는 마음에서 쓴 곡이 '피스삼매경', 지하철 환승역에서 많은 이들이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무심한 표정 또는 아쉬운 표정으로 지나치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서 만든 곡인 '우리 만나고 헤어짐이 이미 정해져 있지 않기를' 등의 음악이 들어 있습니다."
그 밖에도 이상의 작품 <날개>를 읽고 만든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이리도 힘겹고 장엄할 줄이야'는 <날개> 속 주인공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5월의 형제'는 5.18 당시 죽음을 맞이한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음악이기도 하다.
김오키는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당연한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그는 오늘도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연주를 한다. 김오키를 굳이 재즈 연주가라는 틀에 묶어놓지 않았으면 한다. 그는 시대의 약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를 이야기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용기와 꿈을 선물하는 색소포니스트이다. 음악 하는 사람, 그가 바로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김오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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