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작은 이야기

때로는 밥 한 끼가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올 때면

난짬뽕 2022. 11. 1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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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갑자기 예기치 못한 업무가 생겼고, 토요일 아침부터 회의를 시작으로 엊그제까지 일을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며칠 밤을 새기도 했다. 요즈음 뜻하지 않게 자꾸만 밤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재충전이 필요했다. 며칠 휴식시간을 갖게 되었고, 마침 남편도 휴가를 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아빠가 계신 시골로 향했다. 

 

항상 그랬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늘 부모님 곁으로 갔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무슨 힘을 얻는 것 같았다. 특별한 말씀을 듣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나면, 다 괜찮아졌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의 밥상이 늘 그립다. 

 

이제 엄마의 맛있는 음식들은 그리움 속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된 지금. 하늘에 계신 시부모님과 우리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나와 남편은 아빠에게 간다. 그리고 아빠와 함께 맛있게 밥을 먹는다. 때로는 밥 한 끼가 단순한 밥이 아닐 때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지금에서야 느끼게 된다. 매일 먹는 밥 한 끼가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올 때면, 나 또한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 순간이 되면, 생각이 깊어지는 동시에 마음은 조금 더 여리게 되는 것 같다. 

내당한우

아빠가 좋아하시는 곳 중 한 곳인 홍성 내당한우에 갔다. 지난 9월 말에도 아빠를 모시고 다녀왔는데, 그 사이 식당 입구를 새롭게 꾸며 놓았다. 원래 식당 내부에 있던 유명 인사들의 사인들이었는데, 온돌방을 제외하고는 좌식이었던 공간들을 입식으로 바꾸면서 저 사인들의 위치도 바뀌게 된 것 같다. 

내 기억으로, 아빠는 한 번도 엄마의 음식에 대해 불만을 내놓으신 적이 없었다. 워낙 음식 솜씨가 좋으셨던 엄마였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살다 보면 어찌 매끼 밥상이 모두 마음에 들 수 있을까. 하지만 아빠는 언제나 엄마 음식이 최고라고 말씀하셨고, 그 맛을 칭찬하시며 항상 고맙다는 말씀을 건네셨다. 

 

나는 엄마의 그 빼어난 음식 솜씨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남편 역시 늘 나의 밥상이 제일이라는 말을 한다.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반찬투정을 한 적이 없다. 일에 치여 제대로 된 밥상을 차리지 못한 날에도, 늘 남편은 내가 차린 음식들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우리 시아버님도 그러셨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하늘나라에 계셨던 시어머님의 음식 솜씨는 정말로 대단했다고 한다. 남편을 통해 듣게 되는 어머님의 음식들은 말로만 듣고 있어도 나도 모르게 꿀꺽 군침을 돌게 한다. 나도 사진으로만 뵌 어머님의 음식들이 정말로 그립다. 어머님으로부터 그 음식들을 배울 수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항상 맴돈다. 

육사시미
육회

구이와 육사시미, 육회까지 아빠가 모두 잘 잡수셨다. 요즈음에는 되도록이면 아빠께 고기를 사드리려고 한다. 엄마가 떠나신 지 올해로 5년이 되었다. 지금까지 하루하루 잘 견디셨다. 매일매일 자전거를 타시면서 운동도 하시고, 산에도 가시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시기도 한다. 

육회비빔밥

내당한우에 오게 된 것이 몇 년 전이었는데, 나는 왜 지금에서야 보게 된 것일까. 식당 지붕 위에 목련의 꽃눈이 보였다. 온통 건물에 둘러싸여 있는데, 저 나무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바로 이곳. 마루 사이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고스란히 나무 한 그루를 지키기 위해 집을 이렇게 지었나 보다. 아빠와 남편과 나는 모두 감탄사를 자아냈다. 이 집 주인장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모두 자신만이 지켜야 할 어떤 것들이 있다. 때로는 그것들로 인해 힘겨울 때도 적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오늘을 꿋꿋하게 보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될 때가 더 많기도 하다. 

점심을 먹고 집에 가서는 욕실 청소도 하고, 부엌살림도 정리했다. 남편은 분위기를 바꿔 보기 위해 가구 배치를 달리 하고  있었다. 냉장고에는 제자들이 보낸 반찬이며 김치까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오빠들에 비하면, 아빠게 잘해드리지 못한다. 늘 오빠들은 나에게 "너는 네 몸만 챙겨."라는 말을 한다. 

가구 배치를 바꾸고 나니, 아빠께서는 한결 기분이 좋아지셨다고 말씀하셨다. 남편은 아빠가 좋아하시는 어죽으로 저녁을 먹자고 했다. 가루실가든의 어죽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찬바람이 불어서인지 그 맛이 더했다. 민물새우가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남편은 특, 아빠와 나는 보통으로 주문했다.

 

예전에는 보통 가격이 8천 원이었는데, 천 원이 올라 있었다. 특을 시켜도 따로 비용이 없었는데, 가격이 만 원이 되었다. 물가도 오르니,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어죽 가격도 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서울에 도착한 것은 밤늦은 시각이었다. 몸은 많이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아무리 바빠도,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계속되어도 가끔씩은 잠시 멈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치게 되고, 몸과 마음이 아프게 된다. 여든을 훌쩍 넘기신 아빠에게 전화라도 걸 수 없는 날이 찾아오면, 그때는 또 한 번 심한 통증을 앓아야 할 것이다. 

 

아침 일찍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밤늦게 들어가서 피곤하지 않느냐고. 조금 뒤에 남편에게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거실에 있는 TV를 바꿔 드려야겠다고. 큰오빠가 사드렸던 TV였는데,  조금 더 큰 사이즈로 골라놓았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작은오빠가 냉장고를 바꿔 드렸다. 아빠의 모든 물건들이 새롭게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빠의 현관문 비밀번호. 그것은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숫자였다. 

 

아직도 기댈 수 있는 아빠가 곁에 계셔서 감사드린다. 다 큰 자식이 어리광을 피워도 다 받아주시는 우리 아빠. 또 하나의 계절이 가고, 겨울 너머 봄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철부지 막내딸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아빠가 내려주시는 커피를 오랫동안 계속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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