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이 TV에서 방송되는 <싱어게인>에 나온 이승윤 30호 가수에게 푹 빠져 있답니다. 출퇴근길 차 안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유튜브를 통해 예전에 그가 불렀던 노래들을 자꾸만 저에게 들려줘요. 특히 '날아가자'라는 노래는 너무 많이 들어서 저도 가사를 외울 정도이고, 그 리듬에 맞춰 이승윤 특유의 제스처까지 저절로 나오게 되었답니다. 남편과 함께 그 프로그램의 다른 가수들을 찾아보던 중, 우연히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64호 최고은 싱어송라이터입니다. 2014년 4월에 선유도공원에서 인터뷰를 했었는데요. 큰 키에, 어려서부터 판소리를 하여 목소리가 트여 있던 개성 있는 싱어송라이터였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풍경 안으로 호흡하는 햇살 같은 노래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최고은의 음악은 이른 아침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처럼 맑은 색채를 지니고 있다. 그녀의 꿈은 좋은 음악과 벗이 되어 오래도록 함께하는 것이다. 5년이 흐른 뒤에도, 10년이 흘러간 후에도 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고 가슴으로 느껴지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한 음악을 하기 위한 최고은의 고민이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이 봄을 지나 여름으로 걸어가고 있다.
글 엄익순 사진 이준용
음악의 지도를 펼치다
오래도록 음악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최고은에게 있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언제 들어도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은 가지고 있다. 세상 사람들과 소통될 수 있는 자신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것. 단순히 잘하고 싶은 것이 있고, 매 순간 승부욕도 발휘된다. 그렇지만 꼭 어떤 목표를 설정하여 그것에 의해 좌지우지되지는 않는다. 또한 좀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다거나, 혹은 앨범 판매율이 얼마만큼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지도 않다. 가끔씩 근사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 또한 조금은 재미있게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할 때와 일상에서의 모든 말과 행동들이 서로 닮아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것이 바로 최고은을 떠올리는 한결같은 수식어들이다.
"사람들이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아~최고은이구나! 저런 이야기를 이렇게도 풀어냈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과정이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저만의 방식대로 조화롭게 구축해보고 싶거든요. 설령 그 결과가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괜찮아요. 저는 항상 과정을 더 중시하거든요. 작업 과정이 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죠. 다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잘되지 않은 시행착오를 기회로 삼아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봐요. 이러한 과정들을 잃지 않고, 계속 신중하게 하나하나 주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어요."
2010년 10월 첫 EP <36.5℃>로 데뷔한 최고은은 EBS <스페이스 공감> '2011 헬로루키'에 선정되며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어우러진 차분한 음색과 노래에 담긴 진심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으로 다가와 따뜻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동안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비롯하여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과 '서울 재즈 페스티벌' 등 국내 주요 음악 페스티벌 무대에서 개성 있고 힘 있는 목소리로 주목받았고, 특히 오는 6월에 열리는 세계 최대의 록 음악 페스티벌인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아 다시 한번 음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나만의 화법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노래하다
"2012년 KT&G 상상마당 '웬즈데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최고은이 직접 기획한 공연 <호흡의 원근법 Vol.1>이 7주 동안 공연된 적이 있었다. 매주 재즈와 국악, 일렉트로닉, 탱고, 클래식 등의 서로 다른 장르의 뮤지션들과 함께 '모놀로그', '합주의 교감', '합주의 증폭'이라는 세부 주제로 무대에 올라 탄탄한 음악적 실력과 신선한 가능성을 인정받게 된다. 최고은은 자신의 음악적 터닝 포인트가 바로 그때였다고 회상한다.
"매주 그 장르를 표현하는 다른 뮤지션들과 저와의 호흡을 섞는 작업을 하다 보니, 이렇게만 평생 음악을 하면 무엇인가가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에는 단순히 가수의 태도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 시간들이 아티스트로 향하는 길목이었다고 여겨져요. 조금씩 저의 이야기를 표현하는데 더 많은 언어가 생긴 거잖아요. 이를 통해 저만의 호흡을 확장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나만의 목소리나 화법을 찾아봐야겠다는 고민도 하게 되었죠.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공연장 풍경에서도 가득 담아낼 수 있는 의미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들이 최고은의 공연에 대해 믿음을 갖고, 다음 공연이 기다려지는 그런 설렘을 느낄 수 있는 무대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같은 해 2월 세계의 뮤지션들에게 유럽 투어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독일의 음악기획사인 'Song&Whispers'에서 뽑은 숨은 아티스트로 선정된 최고은. 그들의 초청을 받아 2012년 12월부터 두 달간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 등지에서 펼쳐진 소중한 경험들은 최고은이 낯선 환경 속에서 더욱 단단하게 내면을 다진 시간이 되었다고 회상한다. 음향 장비를 차에 싣고, 직접 운전해 다니며 다양한 장소에서 문화가 다른 외국의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베를린 장벽에서, 건조하고 먼지 많은 보일러실에서, 영하 10도의 눈 내리는 야외에서, 예술가의 작업실, 그리고 차를 타고 지나가다 예쁘게 보이는 어느 집의 창고 등에서도 관객이 있다면 그녀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특히 저녁 무렵 빨래방에 혼자 앉아 계신 할머니께 노래 선물을 드렸는데, 며칠 후 최고은의 공연장에 그 할머니께서 직접 찾아오셔서는 그때 당신이 정말로 행복하셨다며 감사의 인사로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셨다고 한다. 두 달간의 유럽 투어 과정에서 최고은은 새로운 경험과 함께 음악적으로도 색다른 시도를 하게 된다. 녹음과 영상을 동시에 기록하는 '원 테이크' 방식으로 여정을 기록하여 앨범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2013년 6월에 발표한 세 번째 EP <Real>이다. 최고은은 지금까지 3장의 EP를 발표하였다. 친구들에게 선물했던 노래들로 2010년 10월에 엮은 첫 미니앨범 <36.5℃>, 2011년 11월에 선보인 두 번째 EP <Good Morning>에서는 자기 성찰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첫 번째 EP는 우연히 나온 결과물이기도 해요. 거의 모든 노래들이 대부분 친구들한테 선물하려고 만든 곡들이었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을 계속해야겠다는 결심을 갖지는 못했어요. 제가 음악 작곡법에 대해 배웠던 적도 없고, 단지 혼자 기타를 치면서 나온 노래들이었으니까요. 앨범을 내고 1년이 훨씬 지난 후에 단독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문득 이다음에도 내 노래가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들더라고요. 만약 내가 지금 음악의 중심으로 들어가려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새로 만들어지는 곡들 역시 예전에 만들어진 노래들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죠. 물론 가사는 달라지겠지만, 분위기 자체가 타성에 젖게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예요. 이렇게 해서는 내가 하는 음악이 취미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고 음악의 중심으로 한 번 들어가 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세상에 좋은 노래들이 정말 많지만, 나도 나만의 화법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나만의 언어로 만드는 것에 대해 조금은 집중해보자는 것이었죠.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에는 딱 5년만 한 번 해보자, 5년 동안 해보고 답이 없으면 음악은 취미로 하고, 다른 직업을 가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기간 자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더 잘하고 싶고, 주변에서 내 노래를 더 많이 듣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제 자신한테 하게 돼요."
다채로운 색채가 묻어나는 음악적 풍경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으로 처음 음악을 접한 최고은은 전국 국악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대학생활의 8할은 록 밴드 활동을 하며 음악에 집중했고, 기타를 배우고 나서는 보다 넓은 음악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그녀가 음악적으로 용기를 얻게 된 일이 있었다.
지난 2013년 일본 후지 TV가 아시아의 방송사들과 협력하여 새로운 음악과 신예 음악인을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시아 버서스>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 그때의 우승곡이 바로 자신의 EP 1집에 수록된 '에릭스 송'이었다. 기타와 보컬로만 이뤄진 이 곡은 방송을 접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최고은은 자신의 노래를 불러 우승을 하게 되어 한층 기뻤다고 한다. 그렇게 최고은의 음악은 조금씩 살이 붙어가고 있었다.
"2010년에 첫 미니앨범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좋은 '1집'을 낼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고민들을 토대로 실험적인 방식으로 음악적인 접근도 해보고, 유럽에서는 현장에 있는 소리들을 그대로 담아보기도 했죠. 고민과 노력들이 축적되어, 이제 지금쯤은 하나의 정규앨범을 선보여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발표한 음악의 결과와는 또 다른 결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3장의 EP와 달리 밴드 소리가 많이 구축되어 지루하지 않고 다채로운 색깔이 묻어날 거예요."
미니앨범으로 각각 주제가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온 최고은의 음악은 이제 10월에 발표될 정규앨범을 통해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지게 될 것이다. 정규앨범이 발표되면, 최고은은 관객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선보일 계획이다. 다양한 장르와 융합된 <호흡의 원근법>을 비롯하여, 세 번째 EP를 기념하는 쇼케이스인 <REAL>展에서는 유럽 투어 과정을 녹음과 영상으로 기록한 여정을 사진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까지 선보인 최고은의 음악은 모두 서른 곡이 넘는다. 모두가 그녀의 작사 작곡으로 만들어졌다. 정규앨범에는 그동안 발표했던 몇 곡의 음악과 미발표된 곡이 하나의 풍경으로 담아진다고 한다. 그녀의 햇살 같은 노래가 왠지 지친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줄 것만 같다. 올가을에는 최고은이 들려주는 음악적 풍경 안으로 나들이를 떠나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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