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삶을 풍성하게 하는 편안한 아름다움, 비올리스트 김상진

난짬뽕 2020. 12. 29.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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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리스트 김상진 교수님을 뵌 것은 2013년 11월 말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에서였습니다. 한국 실내악계를 이끌고 있는 김상진 교수님은 방송 진행자와 해설자, 음반 프로듀싱, 편곡과 작곡, 지휘까지 폭넓은 음악적 행보를 걷고 계십니다. 무대 위에서는 늘 진중하면서도 섬세한 감동을 안겨주셔서 인기가 많으신데요. 직접 뵈니 매우 진솔하시고, 함께 있는 상대방을 아주 편안하게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교수님과 대화를 나눈 내용이 A4 6장 정도로 메모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솔직하게 말씀해 주신 내용들이 많아 차마 글로 다 옮기지는 못하고 저 혼자만 간직하게 되었네요. 교수님은 행복바이러스를 건네주는 유쾌한 비올리스트이십니다.

 

삶을 풍성하게 하는 편안한 아름다움

비올리스트 김상진

 

순수예술의 매력은 그것 자체가 지닌 절대적인 아름다움에서 비롯된다. 굳이 시간의 흐름에 타협하지 않아도 되며, 때로는 강렬한 수식어로 애써 치장할 필요도 없다. 비올리스트 김상진. 그는 자신의 악기인 비올라와 아주 많이 닮아 있다.

글 엄익순 사진 이준용

 

비올라는 완벽한 앙상블을 위한 중재자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에 살포시 고개를 돌려본다. 제일 먼저 멜로디가 귓가를 맴돌고, 어느새 중후하고 웅장한 베이스가 들려온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는 느끼지 못할 중음역이 마지막 여운을 던져준다. 클래식 무대에서 조금의 치우침도 없이 위와 아래를 보듬어야 하는 비올라는 음악에 대한 수준이 높아야 인식할 수 있다는 바로 중음역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높은음을 뽐내며 그 모습을 드러내는 바이올린이나 혹은 큰 울림을 자랑하는 첼로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존재만으로도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마치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점잖은 신사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앙상블의 호흡이 얼마나 잘 어우러질 수 있느냐는 바로 비올라의 역할에 따라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음량이나 음색은 바이올린이나 첼로에 비하면 다소 수수한 편이지만, 다른 악기와 화음을 맞추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중간 역할을 잘 해내야 하는 것이 바로 비올라이기 때문이죠. 제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은, 실내악 연주를 할 때 저의 역할이 잘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을 때 매우 기분이 좋아요. 그것은 결국 실내악에서 가장 빛나는 것이 바로 '비올라'라는 말이기도 하죠. 저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방에서는 코러스를 아주 잘한답니다. 그것이 재미도 있고요. 아마도 비올라와 제 성격이 아주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만약 자신의 성향이 유독 돋보이고 싶거나, 앞에 나서서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경우라면 비올라와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Vol. 76 DECEMBER 2013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클래식명사 초대석 

 

비올라는 바이올린보다는 크기가 약간 크고 음역도 다소 낮다. 때로는 바이올린과 첼로에 묻혀 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경우도 있고, 가끔씩 바이올린의 저음이나 첼로의 고음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클래식계에서는 비올라 소리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음악의 고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현악에서 중음의 역할을 하는 비올라가 빠지면 왠지 무엇인가가 비어있는 듯한 허전함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비올라는 독선적인 악기가 아닌, 악장 전체를 지원하는 매우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 

 

Why? 라는 논리적 사고가 필요하다

"연주가에게 있어 자신의 악기와 관련한 테크닉적인 부분은 아무리 늦어도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완성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몸이 굳기 시작하니까요. 음악적인 부분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깊이 있게 성숙해질 수 있지만, 기술적인 부분이 밑바탕 되어 있지 못하면 완성도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자기가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한 시간을 모두 합산했을 때, 적어도 5년만이라도 정말 후회 없이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문제는 그 5년이라는 시점이 언제가 되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25세 이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이십 대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고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연주 준비를 하고, 즐겁게 저의 일을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동아 콩쿠르 역사상 최초의 비올라 우승자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던 김상진은 독일 쾰른 국립음대와 미국의 줄리어드 음대에서 수학하였다. 전 세계 40여 개국 80여 개의 주요 도시와 페스티벌에서 연주하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비올리스트로서 '문화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한 공로로 2001년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고, 2002년에는 '대한민국 문화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등 음악을 통한 민간 외교관 역할을 수행해왔다. 또한 교육방송 라디오 FM의 첫 클래식 프로그램인 <클래식 드라이브>와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 고양 아람누리 '렉처 콘서트 시리즈' 등을 통해 진행자와 해설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항상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대부분 수동적인 경우가 많아요. 만약 레슨을 할 때 제가 '이 부분에서는 활을 많이 써야 돼'라든가, '여기는 집게손가락이 올라가야 해'라고 말하는 경우, 모두들 아무런 의문도 없이 한결같이 '네'라는 대답만 하죠.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물론 한 곡 정도만 익힐 경우,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따라하면 빨리 완성될 수도 있죠. 그러나 그러한 사람에게는 나중에 자기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될 수 없어요."

 

그래서인지 김상진의 연습실에서는 비올라 선율과 함께 항상 제자들과 끊임없이 나누는 대화 소리가 흘러나온다. 악보에 나타나 있지 않은 테크닉에 대한 고민을 항상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외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학생들은 기술적인 부분은 나이에 비해 매우 뛰어난 데 비해 가장 부족한 점은 바로 자기 주도로 생각하고 그것을 토대로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논리적인 사고에 익숙하지 않으면, 아예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되어 간단한 내용의 질문에도 버거워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학생들은 선생님의 지시 없이는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많은 레퍼토리들을 한꺼번에 소화해내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재촉하고, 당장 그 결과를 얻지 못하면 매우 조급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러나 음악을 동반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우선 악기의 테크닉을 익히기 전에 논리적인 사고부터 실천하라고 김상진은 조언한다. 

 

테크닉적인 기본기, 훌륭한 음악가의 초석

음악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그의 주변에 있었고, 늘 편안하게 느껴졌다. 부모님께서는 '연습하라'는 말씀을 단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었다. 그에게 음악적 자극이 되었던 것은, 바로 좋은 연주가의 음악회였다. 훌륭한 연주가의 무대를 만나고 온 날에는 음악적 영감을 받아 항상 열심히 연습하곤 했다. 그러한 김상진에게 음악적 철학을 심어준 만남이 있었다. 바로 독일 유학에서의 스승이었던 Rainer Moog 교수를 만나고부터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교수님은 테크닉적인 기본기에 대한 것을 매우 중요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음악적인 부분은 나이가 들어서도 그 사람의 역량에 따라서 스스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만, 테크닉적인 기본기는 어렸을 때 익혀놓지 못하면 결코 고칠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죠.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은 음악영재들이 나타나지만, 결국 나중에까지 가서는 그 아이들 중 몇몇밖에 이름을 들을 수 없거든요. 그 이유가 바로 테크닉적인 기본기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정확한 연주 시스템을 숙련하지 못한 채 감각으로만 연주를 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죠."

 

비올라 연주에 있어서의 테크닉적인 기본기는 쉽게 설명하자면, 바로 4개의 손가락을 하나의 그룹으로 생각하여 독립적인 손가락들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즉 4개의 손가락으로 나올 수 있는 8가지 모양의 손가락 형태를 자신의 것으로 갖춰놓으면 안정적인 연주가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저는 항상 학생들에게 제가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의견을 나누죠. 내가 가르치는 방식은 최소한 2년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고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몸에 밴 습관들은 당분간 모두 포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좀 더 어린 나이에 기본기를 갖추지 못하면 결코 좋은 연주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죠. 연주가의 몸은 연습한 과정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래서 계속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저절로 자신이 터득하게 되는 것이죠. 수많은 신경 중에 어느 부분은 힘을 빼고, 어느 곳에 집중해야 할지 말입니다. 손가락도 마찬가지예요. 네 개의 손가락이 독립적이 되면, 서로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기본기의 시작이며, 그 단계가 이루어지면 그에 맞는 음정들을 집어넣는 것이죠. 기본기가 없는 연주가는 번잡하게 움직이지만, 기초가 튼튼한 사람은 움직임이 크지 않아요. 왜냐하면 쓸데없는 동작은 배제한 채, 필요한 동작에만 집중하니까요."

 

비올리스트 김상진의 연주에서는 우리들의 삶을 풍성하게 물들이는 편안한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왠지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비올라는 이음동의어가 아닐까 싶다. 

 

 

비올리스트 김상진 교수님은 김다미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지 첼리스트와 함께 현악 삼중주단 <트리오 킴>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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