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에 대중화를 꿈꾸며 음악의 레퍼토리를 넓히다, 오보이스트 이윤정

구슬프면서도 맑은 음색이 매력적인 오보에는 오케스트라가 연주 전 튜닝을 위해 기준으로 삼는 음을 잡아주는 악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보이스트 이윤정 교수님과의 인터뷰는 2013년 9월 말 경희대에서 진행되었는데요. 소리를 내는 진동판인 얇은 리드를 직접 깎는 수고스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보에에 대한 사랑이 많아졌으면 하는 교수님의 바람처럼, 서정적인 오보에의 선율이 우리들의 생활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보에 대중화를 꿈꾸며 음악의 레퍼토리를 넓히다

오보이스트 이윤정

 

오보이스트 이윤정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한국 오보이스트로는 처음으로 윤이상의 '오보에 협주곡'을 초연하였으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오보에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양한 음악 활동을 통해 오보에 선율의 매력을 전파하고 있는 이윤정의 음악 세계를 들여다본다.

글 엄익순 

 

한국 오보에 음악 발전에 앞장서다

2005년 광복 60주년을 기념하여 문화관광부가 주최한 경축 음악회 무대에 오른 이윤정의 연주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국내 오보이스트 가운데 최초로 윤이상의 1991년 후기작인 '오보에 협주곡'을 협연하였기 때문이었다. 현대음악 속에 감춰진 윤이상 음악의 동양적인 멋을 한껏 살렸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런 큰 행사에 연주자로 지정된 것이 영광이었고, 그로 인해 솔리스트로서 좀 더 주목받게 되었지요. 우리나라 연주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당연히 윤이상 선생님의 곡이 더 많이 연주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난이도가 너무 높고, 특히 곡 중에 오보에의 가족 악기인 '오보에 다모레'를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이러한 연주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국내에는 다모레가 몇 대 없기도 하고, 악기를 중간에 바꾸어 연주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거든요. 그 무대를 위해 저는 몇 달 동안 오케스트라 총보를 놓고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연습이 마무리되어 갈 즈음, 비로소 한국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나 해낸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 연주를 계기로 현대음악과 윤이상 선생님의 다른 작품들도 즐겨 연주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사진 이준용 / Vol. 74 OCTOBER 2013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클래식명사 초대석

 

구슬프면서도 맑은 음색이 매력적인, 사람의 육성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목관악기인 오보에. 오케스트라에서 연주 전 오보이스트의 첫 음에 모든 악기들이 튜닝을 하는 중요한 악기로,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화음은 바로 오보에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악기들에 비해 또렷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목가적인 매력이 있어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에서도 유난히 귀에 들어온다. 

 

"어릴 적 어머니 친구분의 따님 연주를 구경 갔다가, 오보에의 매력적인 소리에 빠져 버렸어요. 게다가 그 후 오케스트라 공연장에서 연주 직전에 전체 악기를 조율하는데, 그 기준 음이 되는 오보에를 보고 무척이나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오보에를 배우게 되었는데, 정작 전공을 하고 보니 그것이 오보이스트로서 갖는 가장 큰 스트레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언제 어디서도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항상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이윤정은 연주 시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 포장된 소리가 아닌 진정으로 제대로 된 소리가 진심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음악에 있어서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중요한데, 그래야만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연주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습

오보이스트 이윤정은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음대 재학 시 동아콩쿠르 1위, 서울대 수석졸업 후 줄리어드음대 대학원 입학, 한국인 최초로 목관악기 석사 학위 취득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연주에서도 항상 최고의 모습으로 감동을 주고 있다. 슬럼프는 따로 없었다고 한다. 단지 소화해야 할 일정이 너무 바빠서 연습할 시간이 부족할 때가 슬럼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당연히 극복 방법은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일 뿐. 성격상 연습이 완벽하게 되지 않은 상태로 연주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벼락치기를 해서라도 언제나 준비는 철저히 하는 편이다. 현재 경희대학교 음대에서 후학을 양성중인 그녀는 제자들에게 조언을 덧붙인다. 

"건강한 신체가 건강한 음악을 만듭니다. 우리는 몸을 이용해서 연주를 하는 것이잖아요. 몸이 허약하거나 아픈 상태로는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결국 좋은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게 되죠. 스스로 체력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요즈음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조차 음악회를 잘 가지 않는 것 같아요. 지인들의 음악회나 인사치레로 다니는 정도일 뿐, 진정으로 음악이 좋아 듣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가는 경우는 참 드문 것 같아요. 물론 학업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직접 가서 들어보는 것이 실제로 살아있는 교육이 될 것입니다. 음악회장에서의 감동과 충격들이 말로 배우는 것, 머리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을 것입니다."

사진 이준용 / 뮤직프렌즈

 

예전에만 해도 초등학교 때 음악을 시작하면 꽤 빠른 것이었는데, 요즘은 조기교육 때문에 악기를 시작하는 연령이 점점 더 낮아지는 추세이다. 그러나 오보에는 체력을 필요로 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체격이 갖추어지면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이윤정은 말한다. 꼭 조기교육을 하고 싶고, 해야 한다면 피아노로 먼저 시작을 하든지, 아니면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 오보에 조기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오보에는 플루트나 클라리넷만큼 대중적이지 않고, 많이 보급되지도 못했다. 얼마 전까지 기네스북에 연주하기 힘든 악기로 올라있을 만큼, 소리를 내는 자체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또한 보급형 악기를 구하기도 어려운데, 현악기들이나 플루트 및 클라리넷 같은 경우는 저가형 악기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어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오보에는 취미용 저가 악기가 드물어 초보자들도 전공자들이 쓰는 악기를 구입해야 한다. 그래서 비용 면에서도 선뜻 배우기가 망설여지는 이유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오보이스트 이윤정은 오보에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주력하고 싶다. 오보에를 더 쉽게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좋아할 수 있도록 오보에 대중화를 위해 어디든지 찾아가서 연주로서 거리감을 좁히고자 노력한다. 또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통해 우리나라 오보에 음악의 전반적인 수준을 향상하고 싶은 소망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으로는 슈트라우스 '오보에 콘체르토', 특히 2악장은 오보에로 사람의 마음을 진하게 감동시키는 데 가장 좋은 곡이라고 추천하다. 그밖에 슈만 '로망스', 풀랑크 '소나타' 등 솔로 곡들도 좋은 작품이 많지만, 비제의 심포니 C Major 2악장, 브람스 바이올린 콘체르토의 2악장 등 오케스트라 곡에서의 서정적인 오보에 솔로는 오보에라는 악기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깊어가는 가을날에 잘 어울리는 서정적인 오보에의 선율이 마음으로 촉촉이 스며드는 것 같다. 

 

오보에 전공자들을 위한 안내자가 되다

목관악기 오보에는 제대로 된 연주음을 내기까지 무척이나 까다롭다. 특히 얇은 리드(소리를 내는 진동판)는 1㎜에 소리가 달라지곤 한다. 오보이스트 사이에선 리드를 깎는 연습을 매일 하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오보에 음색을 결정하는 열쇠는 리드에 있다고 한다. 

"리드는 당연히 제가 직접 깎아요. 리드는 연주력과 직결되죠. 좋은 리드는 좋은 연주를 만듭니다. 현악기나 리드가 없는 악기는 좋은 악기가 마련되면 그 다음에는 연습만 하면 되지만, 오보에는 좋은 악기를 가지고 많은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리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 연주는 망칠 수밖에 없죠. 연주 성패의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봐도 돼요. 그래서 무대에 오를 때에는 연주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리드 준비에 부담이 더 커요. 지금까지 20년 넘게 만들고 있지만, 절대 마스터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며칠 전에도 리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연주 내내 매우 불편하고 힘들었거든요. 손재주가 워낙 없어 만들기를 잘하지 못해서, 저만의 비법이라면 엄청난 양의 리드를 깎는다는 거예요. 잘 깎지 못하니, 많이 깎아서 좋은 것을 하나 골라내야 하죠."

이윤정 오보이스트 데뷔앨범 <0boe FRENCH SONATAS>

 

그래서 연주 전에 리드를 만드느라 연습할 시간이 없을 정도라며 웃음을 짓는다. 이윤정은 현재 금호 체임버뮤직 소사이어티와 세종 목관 챔버 앙상블 멤버이며, 다른 여러 앙상블 단체에서 객원으로 연주하고 있다. 관악 주자로서 사실 오보에는 솔로 연주의 기회가 현악기나 피아노만큼 많이 않다고 한다. 하지만 관악 주자들이 실내악을 통해 그 합해진 소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이윤정은 2005년 데뷔앨범 <Oboe FRENCH SONATAS>를 발표한 바 있고, 자신이 멤버로 있는 금호 체임버뮤직 소사이어티 피아니스트들과 관악기 주자들이 모여 풀랑크의 관악기를 위한 음악을 모두 모아 녹음한 바 있는데, 녹음 장소가 너무 추웠지만 소음 때문에 히터를 틀지 못한 채 그냥 얼어버린 악기들로 연주했다고 한다.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매우 만족스러운 음반 <Francis Poulenc: Chamber Music With Piano And Winds>로 완성되어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고 한다. 

 

조만간에는 오보에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한 음반과 대표적인 콘체르토만으로 구성된 음반도 계획 중이다. 우리나라의 오보에 대중화를 위해 음악적 레퍼토리를 넓히고자 최선을 다하는 오보이스트 이윤정의 열정이 부드러움과 중력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오보에와 많이 닮아 있는 듯하다. 한국 오보에 음악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이윤정의 또 다른 음악적 도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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