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부터 2010년까지 정명훈 음악감독이 이끄는 서울시향에서 호른 부수석으로 활동하던 김홍박 호르니스트가 스스로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많은 음악인들이 활동하고 싶은 그곳을 뒤로하고 그는 보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도전을 합니다. 그리고 결국 국제무대에서 인정받는 세계적인 호른 연주가가 되었습니다. 축구와 농구 등 공과 관련된 모든 운동과 겨울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김홍박 호르니스트를 만난 것은 2014년 7월 말이었습니다. 관이 길고 말려있어 그만큼 호흡이 많이 필요한 악기인 호른의 매력은 '얼어붙은 가슴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음색'이라고 말하던 그의 말이 떠오릅니다. 사람을 감싸안는 것 같다는 김홍박 호르니스트의 말이 궁금하다면 그가 추천한 차이코프스키 4번 심포니 2악장과 브람스 교향곡, 슈트라우스 곡들을 한번 들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조금 더 많은 곳에 자신의 소리를 전달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가 그려놓는 도전의 그림이 기대됩니다.
희망을 꿈꾸기에, 도전을 멈출 수 없다
호르니스트 김홍박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낯설음은 결코 두렵지 않았다. 다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 망설임에 대해서 경계할 뿐. 그래서 오늘도 호르니스트 김홍박의 음악적인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금관악기 연주자로서 그가 가슴에 품고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함께한다.
글 엄익순
세계무대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다
2012년 가을, 스웨덴 왕립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에 호른 제2수석으로 영입되었을 때 많은 음악인들의 관심이 김홍박을 향해 쏟아졌다. 뮌헨 필하모닉 등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 오디션에 도전한 지 다섯 번째로 맞이하는 기회였다. 악기를 챙겨 들고 스톡홀름에 도착하자마자 왠지 모를 벅찬 기분이 들었다. 서울시향에서 부수석으로 활동하던 2009년, 앙상블 연주로 스웨덴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거의 모든 공연에서 빈자리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연주회 자체를 즐기던 스웨덴 문화계에 언젠가 다시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1차 예선을 거치고 결선까지 올랐을 때 다시 한번 그때의 그 기분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최종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그를 포함하여 스웨덴과 영국의 연주자가 함께 우승자로 선정되었다. 왕립오페라극장에서는 우승자 세 명과 함께 각각 3개월씩 연주활동을 해본 후에 그중 한 명을 뽑겠다고 말하며, 제일 먼저 김홍박을 시험무대에 올렸다. 그렇게 김홍박이 스웨덴에서 며칠을 보낼 즈음, 오페라극장에서는 다른 두 명의 우승자에게 자신들은 이미 김홍박을 최종 선택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시험무대는 없을 거라며 일방적인 통보를 해버렸다고 한다. 그는 현재 스웨덴 왕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에서 평생 연주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잠시 2~3년 동안 자리를 비워도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 연주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이 주어진 것이다.
오디션 당시 오페라극장 측에서는 김홍박의 연주 실력에 매료되었지만, 과연 그가 유럽무대에서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직접 보고 싶었다고 전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아시아의 금관악기 연주자가 해외의 유명 오케스트라로 진출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그 과정이 녹록지 않은 것이 사실이며, 유럽에서 활동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잘 알고 있다. 김홍박은 그러한 벽을 음악적 실력으로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10월에 그는 3주간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과 함께할 예정이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이 시대 최고의 지휘자인 마리스 얀손스가 20년간 키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 오디션에 당당히 합격했기 때문이다. 우승 소식을 들은 스웨덴 왕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고 한다.
"김홍박은 우리가 아는 최고의 호르니스트인데, 그곳에서 뽑지 않는다면 그들은 바보가 아닐까? 연주여행에 잘 다녀와라. 그러나 너는 곧 다시 이곳 스웨덴으로 돌아올 거야. 왜냐하면 우리만큼 좋은 파트너는 없으니까 말이야."
스웨덴 오케스트라 동료들이 건넨 말 한마디에서도 김홍박의 음악적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세계무대에서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최고의 호르니스트였다.
후배들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
서울대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서 공부하던 중 2007년 스물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정명훈 음악감독이 이끄는 서울시향에 호른 부수석으로 발탁된 김홍박. 그는 2010년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년 반 동안의 서울시향에서의 연주를 뒤로하고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석사와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친다. 많은 연주자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서울시향을 오히려 스스로 과감히 나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콩쿠르에 입상한 후 어떤 호르니스트가 되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한국 금관악기계를 변화시키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셔서 실력 있는 학생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잖아요. 연주를 잘하는 한국 학생들이 외국에 나가서도 한번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해외의 유명 무대에 나가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이 저로 인해 희망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소망입니다. 호르니스트로서의 김홍박을 만나본 사람들에게, 저로 하여금 한국 금관악기 연주자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저 다음에 또 다른 후배들도 세계의 유명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그리게 된 것이죠. 그것이 바로 제가 시향을 그만두고 다시 유럽으로 떠난 단 한 가지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후배들에게 더 큰 꿈을 갖게 해주고 싶은 생각에 무엇인가를 빨리 보여줘야 한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나 그러한 조급함 때문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왠지 김홍박은 자신이 정체되는 것만 같아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후 일 년 동안은 콩쿠르나 오디션 같은 기회가 있을 때에도 연습에 집중했다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서울시향을 스스로 그만둔 유일한 연주자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지켜보는 시선들이 적잖이 부담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당시 학교에서 만난 바순과 클라리넷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호른을 연주하는 선배 형은 그에게 음악적인 터닝포인트를 안겨주었다. 함께 연주하는 것이 좋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여서는 밤늦게까지 함께 연습에 몰두했다. 김홍박은 그들과 함께 하며 다시 음악적인 열정에 설렘을 느꼈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도전에 대한 미련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 생각했다. 결국 그는 도전했고, 자신이 서고 싶었던 세계적인 무대에서 인정받게 된다. 스웨덴 왕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는 단지 그의 도전에 있어 1막에 불과하다. 노르웨이 오슬로 오케스트라 역시 김홍박이 꿈꾸는 도전의 완성이 아니다.
"앞으로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싶죠. 나의 음악적 도전의 끝은 어디일까. 그곳이 보고 싶습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곳에 제 소리를 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요즘 점점 관악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빠져들었던 소리의 매력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저도 최선을 다해 진솔한 음악을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음악적 열정으로 다시 도전하다
연주 시 김홍박은 소리의 전달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 음 한 음을 전달하는 것. 그러한 소리와 소리가 모여 하나의 음악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는 연주할 때 종종 홀 전체를 둘러보곤 한다. 언제나 자신의 소리가 그 공간을 꽉 차게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소리를 사람들에게 한층 더 잘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연주한다.
"호른의 매력은 바로 소리입니다. 얼어붙은 가슴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소리. 물론 남성적인 소리도 있지만, 사람을 감싸는 부드러운 소리는 어떤 악기도 따라올 수 없어요. 오케스트라나 혹은 실내악에서 모든 팀을 포근하게 보듬어주거나 때로는 그 안을 뚫고 나오는 음색들이 정말로 매력적이죠."
어린 시절 부끄럼이 많아 늘 사람들 앞에서 수줍어했지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 무대에 오르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장래희망을 적을 때마다 늘 '성악가'라고 쓰곤 했다. 그 당시 성악을 전공하는 큰누나의 모습이 좋아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우연히 누나 친구가 연주하는 호른의 소리를 듣는 순간, 호른이라는 악기가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악기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학교 1학년 말에 호른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찍이 국내 최고 권위의 동아음악콩쿠르를 비롯하여 국제호른협회에서 주최하는 필립 파카스 어워드에서 2위,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 호른콩쿠르에서 3위, 또한 2012년 도쿄에서 열린 일본 관악·타악 콩쿠르에서 호른 부문 1등과 전 부문 대상과 함께 도쿄도지사상과 내각총리대신상, 문부과학대신상 등을 수상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2013년부터는 요미우리 니폰 심포니오케스트라에 특별객원수석을 수행하고 있고, 금호아트홀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와 아시아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스웨덴 왕립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에서 바쁜 일정을 보내는 동안에도 이틀 이상 쉬는 날이 생기면 곧바로 베를린으로 건너가 레슨을 받고 연주에 몰두했다. 지난 6월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칠 때까지 그는 단 하루도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한국을 떠난 지 4년 만인 지금에서야 잠시 숨을 돌리게 된 것이다. 휴가를 맞아 한국을 방문한 그는 학생들을 위해 여러 캠프에서 연주 및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할 예정이며, 8월 27일에는 경남 함안문예회관 리사이틀을 비롯하여 9월 3일에는 수원시향과 함께 슈트라우스 호른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한국에서 여름을 보내고 나면, 김홍박은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곧이어 노르웨이 오슬로 오케스트라에서 자신의 연주 실력을 뿜어낼 것이다. 세계를 무대로 끝없이 도전해 나가는 한국의 호르니스트 김홍박. 그의 뜨거운 음악적 열정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우리들을 찾아오게 될지 사뭇 기대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기에, 그의 도전이 그려내는 발자국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소중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김홍박 호르니스트는 현재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수석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젊은 연주자들의 거침없는 질주
'그 모든 아름다움 >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백 영혼의 울림,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22) | 2021.01.02 |
---|---|
오보에 대중화를 꿈꾸며 음악의 레퍼토리를 넓히다, 오보이스트 이윤정 (10) | 2020.12.31 |
삶을 풍성하게 하는 편안한 아름다움, 비올리스트 김상진 (21) | 2020.12.29 |
풍경 안으로 호흡하는 햇살 같은 노래,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24) | 2020.12.28 |
클래식 애호가들의 멘토, 안동림 (10) | 2020.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