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높고 쓸쓸한
- 지은이: 안도현
- 펴낸곳: (주)문학동네
- 1판1쇄: 1994년 2월 21일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 한 장
또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시인:1961년 경북 예천 출생. 원광대 국문과 졸업.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가는전봉준'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서울로가는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발표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관계> <짜장면> <사진첩> <증기기관차 미카> <민들레처럼> <나비>가 있고, 산문집으로는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 <사람> 등이 있다.
신현림 /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 인생 편
'그 모든 아름다움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멜라 소설 <제 꿈 꾸세요>,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사랑의 의미들 (112) | 2023.10.01 |
---|---|
안리타 단상집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꽃과 자연에 기댄 삶의 시간들 (129) | 2023.09.26 |
김연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 기억과 시간에 대한 회상 (112) | 2023.09.20 |
사랑을 담아(IN LOVE), 알츠하이머병 남편이 선택한 이별을 향한 여정 (86) | 2023.09.16 |
<한성이 서울에게>, 비룡소 역사동화상 대상 수상작 (106) | 2023.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