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타는 가을강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너보다도 나보다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겠네.
박재삼
1933년 도쿄에서 태어난 박재삼은 경남 삼천포에서 자랐다.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중퇴했고, 1953년 시 '강물에서'(모윤숙에 의해 <문예>에 추천), 1955년 시 '정적'(서정주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 같은 해 시조 '섭리'(유치환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로 등단했다.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내다본 한강은 슬퍼 보였다. 하늘도 지치고 힘든 표정.
요즈음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많이들 힘들어한다.
선배들도 후배도 동기도 모두 내색은 하지 않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고 있다.
오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즘 부쩍 프리다 칼로의 얼굴을 자꾸 들여다본다고 한다. 프리다 칼로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선배가 생각하는 가장 힘들어 보였던 인물이라고 했다. 프리다 칼로만큼 나는 힘들지 않다, 는 주문을 외곤 한다고 말했다.
남편과 아들이 바둑을 두고 나서는 늘 복기를 할 때마다, 나는 그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내가 옆에서 귀찮게 왜 복기를 하느냐고 물으면, 남편과 아들은 그저 웃기만 했다.
이제 그 이유를 잘 알게 된 나는 복기가 꼭 바둑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보지 못했고 어느 부분을 놓쳤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는 일이 어찌 바둑에만 국한될 일인가 싶다.
요즘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들이 다 중요하겠지만, 어쩐지 '경제'에 관한 높은 분들의 노력이나 관심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얼마나 더 견뎌내야 하는 것인가. 그러면 작은 불빛이라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길까. 먹고사는 문제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분들이기에 소시민들의 고통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듯싶다.
영화 <올빼미>, 무엇이 보이십니까?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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