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소설, 간결한 문장 속의 깊은 함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 지은이: 클레어 키건
• 옮긴이: 홍한별
• 초판 1쇄 발행: 2023년 11월 27일
• 2022 오웰상 소설 부문 수상
• 2022 부커상 최종후보
• 펴낸곳: 다산북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맡겨진 소녀>의 작가인 클레어 키건의 작품이다.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에서 강한 인상을 주었던 배우 킬리언 머피가 직접 주연과 제작을 맡아 곧 영화로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빨리 읽고 싶었다. 물론 2009년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한 <맡겨진 소녀> 역시 <말없는 소녀>의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2관왕과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작이기도 한데,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이었던 이 책에 대해 그 당시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라는 평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작가 클레어 키건에 대해 "키건은 간결한 단어로 간결한 문장을 쓰고, 이를 조합해 간결한 장면을 만들어나간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110페이지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다. 18세기부터 20세기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카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 속 문장들은 간결하고 건조하다. 친절하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문장들 사이사이에는 많은 의미들이 숨어 있었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명료하게 내세울 수는 없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말하지 못했던 작은 이야기들이 이미 수면 위로 둥둥 떠다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제목처럼 우리 주변에서는 사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일지는 잘 모르겠다. 마음속에 꽁꽁 묻어둔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쏟아내기에는 너무나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의 목소리들을 깨우는 것이 지금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책임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나오는 막달레나 세탁소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말까지 카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같은 이름과 명분의 여러 시설 가운데 하나다.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설립했으나,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을 한 여성, 고아, 학대 피해자,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이 있는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서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까지 마구잡이로 이곳에 수용했고 교회의 묵인하에 착취했다. 동네 사람들은 세탁소의 실체에 대해 짐작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높은 담 안에서 저질러지는 학대에서 눈을 돌린다.  p 130~131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줄거리

아일랜드의 소도시 뉴로스에서 석탄을 팔며 살아가는 빌 펄롱은 나라 전체가 실업과 빈곤에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지만, 그나마 크게 부족함 없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일을 계속할 수 있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고, 딸들을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어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아침, 펄롱은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나간다. 그곳 창고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게 되고, 그동안 수녀원에서 불법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수녀원이 마을 전반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가운데 이웃 사람들과 아내는 펄롱에게 가정의 평온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알면서도 모른척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다섯 딸들의 미래를 위해서 침묵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진 펄롱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불운하게 태어났던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줬던 미시즈 윌슨을 떠올리게 된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창고에 있는 여자아이가 자신일 수도 있었을 것이며, 자신의 어머니가 수녀원에 끌려가 고통받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지금의 안락이 고통으로 바뀔 수 있는 가운데, 불안한 마음속에서도 펄롱은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낸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평생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는다면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없을 거라는 마음으로 두려움에 맞서고자 결심한다. 결국 펄롱은 여자아이를 구해 집으로 향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책 속의 문장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p 22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 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p 29

최근에 펄롱은 가끔 다른 삶, 다른 곳을 상상했고 혹시 그런 기질이 자기 핏속에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p 64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면 훨씬 좋아 보이는 게 참 많았다.  p 67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p 102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p 120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p 121

 

작가 클레어 키건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욜라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어서 웨일스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아 학부생을 가르쳤고, 더블린트리니티칼리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가디언》은 키건의 작품을 두고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는 그가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을 냈는데 그 모든 작품들이 얇고 예리하고 우수하기 때문이다. 

키건은 1999년 첫 단편집인 <남극>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07년 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를 출간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하는 에지 힐상을 수상했다. 2009년 쓰인 <맡겨진 소녀>는 같은 해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고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다.

2021년 출간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2년 오웰상(소설 부문)을 수상하고, 같은 해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라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라는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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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이야기

☞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표지는 피터르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 그림의 우측 상단 부분입니다. 작가인 클레어 키건이 직접 이 그림을 선택했다고 하는데요. 이 그림의 전체 구도가 궁금하시다면, 한번 작품을 찾아보셔도 좋으실 것 같습니다. 

☞  작품 속에 펄롱의 곁에서 오랜 세월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네드'라는 인물이 있는데요.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시면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나실 수도 있으실 거예요.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요. 두 번째 읽을 때에는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 여러분들은 금방 눈치채셨겠죠?!

☞ 원서로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클레어 키건의 문체를 번역을 거치지 않고 만나보면 어떨까요. 그 느낌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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