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책

<고통 구경하는 사회>, 진실을 보고자 하는 윤리적 저널리즘과 그 책임

난짬뽕 2024. 1. 31. 08:59
728x90
반응형
고통 구경하는 사회
  • 지은이: 김인정
  • 펴낸곳: (주)웨일북
  • 초판 1쇄 발행: 2023년 10월 15일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읽고 난 후, 나의 생각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반쯤 읽다가는 도서관에 반납을 했었다. 도서관 새책코너에서 발견하여 처음 빌려온 것이 지난해 연말이었는데, 한 달 쯤의 시간이 흐른 지난 주말에 다시 대출하여 읽지 못한 나머지 부분들을 읽게 되었다. 여전히 이 책은 나와 친해지지 않았다. 

요즘 우리들은 '기레기'나 '언론쓰레기'라는 말에 익숙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분들도 있겠지만, 이제 이러한 어휘들에 대해 무덤덤해지기까지 했다. 실제로 뉴스 채널을 보고 있으면, 하나의 사건에 대한 보도에 있어 어미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내용이 흘러나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날카로운 질문을 해야 할 기자들은 한결같이 받아쓰기를 하며 침묵하고 있기도 하다. 

언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사고에 대해서도 되돌아봐야 할 측면들이 없지는 않다. 그보다 앞서 나는 취재를 하는 기자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기자로서 갖추어야 할 태도와 마음가짐까지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실을 보지 못하고, 권력에 기생하는 그들을 진정한 기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아래의 세 문단으로 정리해 본다. 

보도란 '누군가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말하는 일이고, 그 하나하나의 고통 역시 누군가에게 속한 것이기에, 취재를 통해 고통에 침범하는 일은 결국 누군가의 삶에 침입하는 일이었다. 어떤 고통이 문제라고 말하는 건, 고통이지만 끝내 당신의 것인 무언가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이걸 취재하는지 잘 이야기하고 동의를 받는 것만으로는 다 무를 수 없는, 취지가 좋은 것만으로는 다 메울 수 없는, 취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남기는 상처가 있었다.  p 120~121

알고리즘과 구독에 갇힌 나의 타임라인 밖으로 빠져나와 다른 삶의 존재를 알아채는 것. 모든 연민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을 매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대로를 아는 것. '나'를 중심으로 뉴스를 떠먹이려는 뉴스의 매개자들이 의도치 않게 왜곡하고 있을지도 모를, 나와 연관되지 않은 일 역시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p 154

뉴스라는 텍스트는 무엇을 유도해야 할까. 기자는 사진과 영상, 글을 통해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나란하게 독해해 주어야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누가 이런 일을 일어나게 했고,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인지 말이다. 감춤이 없어야 하고, 맥락을 읽어야 하고, 불편부당한 정보를 줘야 한다.  p 224

 

내 말 좀 들어 달라고 울부짓는 곳에서,
우리는 이들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함께 읽고 서로 나누며,
그 말이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오드리 로드(시인이자 활동가)

 

<고통 구경하는 사회>, 책 속의 생각할 만한 문장들

뭐든지 최대한 많이 보고 싶었다. 잘 본 뒤에, 잘 보여주면 된다는 원론만 알았다. 고통을 보는 일,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일에 따라 붙는 여러 복잡한 감정이나 윤리적 고민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지 못했다.  p 10

우리는 알고리즘이 잘 걸러낸 필터 버블에 올라타 / 양극단으로 부지런히, / 광대역 인터넷의 속도로 이동하는 중이다.  p 51

신자유주의에 깊이 영향을 받은 현대인의 자기개발적 태도, 무언가를 배우거나 교훈 삼고, 변화를 만들어 자기효능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욕구 정도가 우리의 믿는 구석이 될 수 있을까. 극단과 극단을 부추기는 가짜뉴스가 그들만의 진실을 만들어가고 있는 가운데, 어떤 말들은 패셔너블하게만 쓰일 뿐 진정한 의미에선 불리지 않는 처지가 되어 우리를 기다린다. 진실과 사실, 연민과 공감, 이해와 대화, 정의와 윤리, 자유와 평등, 다양성과 협력, 저항과 투쟁, 고통과 연대가 그저 매력적인 상품이나 공허한 수식어로 전략하지 않도록, 우리가 막아설 수 있을까?  p 54

언론이 여론과 관계를 맺는 방향은 상호적이고 분리하기 어렵다. 언론은 여론을 읽는다. 언론은 여론에 등떠밀리거나, 이미 존재하는 여론을 반영한다. 거꾸로 언론 스스로 여론을 형성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언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대중의 반응이 움직이기도 하고, 움직여 주기를 언론이 희망하거나, 종용하기도 한다. 나쁜 예를 들자면, 언론이 먼저 군불을 지피고 그에 걸맞은 인터뷰나 누리꾼 반응 몇 개를 덧붙이기도 한다. 소셜미디어 타임라인 위로 드러난 몇몇 의견을 편의에 따라 여론으로 통칭하는 게으른 경우도 있다. '신상 공개 여부에는 여론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개입한다'는 말을 해부할 때, 여론과 언론 중 무엇이 주어인지를 정확하게 절제하기 어려운 이유다. p 59

사법부는 이 사건을 제대로 심판해 줄까. 피해자의 인권은 범죄가 발생한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렸는데 사법부가 최대한 지키려는 건 엉뚱하게도 피의자의 인권뿐인 것처럼 보인다. 아동 성착취물 22만 건을 유통한 손정우에게 한국법원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해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법원은 대낮에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 여성을 치여 사망하게 한 운전자에게 두 번의 음주운전 전과에도 3년형을 선고해 유족의 반발과 국민의 공분을 샀다. 그러니 대체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대중의 분노는 이 불균형에서 터져나온다.  p 68-69

극악무도한 일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을 손가락질 하고 욕하는 데는, 일견 속시원한 구석이 있다. 실제 양형과 국민의 법 감정이 크게 어긋나는 경우에는 범죄자의 명예와 평판을 실추시키는 것만이 현실적인 해결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개인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그 방향을 틀어야 한다. 범죄가 일어나도록 방조하는 사회 구조는 물론이거니와, 얼굴 공개라도 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하는 사법 시스템을 가리켜야 한다. 믿지 못하는 대중보다는 범죄의 무게에 걸맞지 않게 가벼운 처벌을 일삼는 사법부가 더 큰 문제여서다.  p 69

2022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죽음의 되풀이를 멈추자며 시행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산업재해로 인명 피해가 날 경우 사업주나 경영자가 책임지도록 하는 법이다. 커다란 걸음을 내디딘 셈이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시행 첫 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 200여 건 중 재판에 넘겨진 것은 11건에 불과했다. 중대재해법 위반 첫 판결에서 법원은 원청 대표에 징역형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판사는 "이 책임을 모두 피고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가혹하다"고 설명했다. p 100

약자들의 선행이 뉴스가 될 때는, 이들이 약자라는 부분에 뉴스 가치가 실린다. 약자라는 점이 필요 이상으로 강조될 때도 있다. (~)  할머니는 '더 가졌다면 더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기부의 본질 안에는 자신을 스쳐가는 돈을 쥐고 있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기본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어떤 계층에 속해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었을까? 그녀의 '형편'을 보여주는 대신 그녀가 가진 기부의 철학에 대해 더 많이 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p 133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많은 보도에 비유와 대조의 공식이 적용된다. 지난해, 지난달, 지난 분기와 비교하거나 다른 세대, 다른 성별, 다른 국가, 다른 지역, 다른 계급과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지 가늠한다. 패턴을 찾아 현상을 파악하려고 한다. 보도의 대상이 고통일 경우에는 특히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만들기 위해 거의 필수적이다 싶게 이러한 과정이 들어간다.  p 146~147

뉴스 시청률이라는 지표는 뉴스가 상품 자본으로써 회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도구다. 특수한 자본 구조를 가지지 않은 대다수의 언론사는 광고 수익을 기반으로 유지되며, 광고 시장에서의 단가는 이 숫자와 밀접하다.  p 234

언론이 하는 일은 겪은 이들과 겪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기억의 연결고리가 깜빡이다 꺼지지 않도록 기능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p 262

 

반응형

 

<고통 구경하는 사회> 지은이 김인정

광주MBC 보도국에서 주로 사회부 기자로 일하며 10년 동안 사건 사고, 범죄, 재해 등을 취재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고통의 규모와 수치뿐만 아니라, 사건의 감춰진 맥락을 복원하는 데 집중해 왔다. 법조 비리와 기업 부패를 고발한 기사 등으로 방송기자상을 네 차례 수상했다. 인권의 의미를 확산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왜곡된 역사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5.18 언론상을 받았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저널리즘을 꿈꾸며 UC버클리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UC버클리 탐사보도센터에서 사회 양극화와 인종 차별 문제를 취재하고, 소셜미디어와 마약 문제, 시민운동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The Nation, CNN 등 외신을 통해 한국의 참사와 학살을 보도하기도 했다. 언어와 인종, 계급을 넘어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아픔에 어떻게 가닿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탐사 보도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뉴스를 완성하는 기자이지만, 뉴스보다는 뉴스가 끝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 슬픔을 다루는 데 서툰 사회에서, 함께 뒷이야기를 써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공적 애도의 태도를 고민하고자 한다. 지금은 미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다양한 언론사와 협력하여 취재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예일대 심리학자 폴 블룸의 공감 반대 선언 <공감의 배신>, 공감하지 마라!

 

예일대 심리학자 폴 블룸의 공감 반대 선언 <공감의 배신>, 공감하지 마라!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분야에서 '공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인간이 지녀야 할 덕목 중에 공감능력은 곧 도덕심이나 이타심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고, 긍정적인 동기 유발이나 좀

breezehu.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