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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내 인생의 나침반을 들여다본다

난짬뽕 2024. 2. 2.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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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 지은이: 가즈오 이시구로
  • 옮긴이: 송은경
  • 부커 상 수상작
  • 전 세계 20여 개국 출간
  • 영화 <남아 있는 나날>의 원작
  • 1판 1쇄 펴냄: 2009년 7월 13일
  • 펴낸곳: (주)민음사

 

<남아 있는 나날>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가 198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배우 앤서니 홉킨스의 주연으로 1993년 영화로 나오기도 했다. 나는 앤서니 홉킨스(제임스 스티븐슨 역)와 엠마 톰슨(샐리 켄튼 역)의 연기가 돋보였던 이 영화도 좋아하지만, <남아 있는 나날>은 책으로 만나는 것이 훨씬 깊이가 있다. 

영화에서는 책과 비교할 때 굵은 나무줄기만으로 전개되다 보니, 그곳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온 수많은 잔가지들의 의미까지 유추하기에는 좀 무리가 될 수도 싶다. 잔가지에 핀 꽃과 열매, 잎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여러 가지 색깔로 펼쳐지고 있어, 책이 꽤 두꺼운데도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남아 있는 나날>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직전부터 그 이후를 배경으로 영국 귀족 저택의 집사인 스티븐슨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당대 영국의 시대상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사실 영화에서는 원작과는 몇 가지 다르게 표현되는 부분들도 있으니, 책과 영화를 모두 감상하면서 함께 비교해 보면 좋을 듯싶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문체는 그만의 특유한 매력이 있다. 품위 있는 집사였던 스티븐슨의 회고와 생각을 책을 통해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것은 나의 고민과 사고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보다 삶을 잘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필요한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남아 있는 나날>은 그러한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스티븐슨이 그랬던 것처럼, 아직 우리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도 아직 '남아 있는 나날'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나날>, 줄거리

영국 귀족의 저택 달링턴 홀의 집사로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슨은 그곳을 인수한 새 주인의 호의로 6일간의 생애 첫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는 35년간 집사의 직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왔다. 위대한 집사로서 복무하기 위해 친부의 임종을 지키는 것을 포기했고, 동료인 켄턴 양에 대한 감정도 표현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만 했다. 

집사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늘 자신을 희생했던 스티븐슨은 그가 평생 자랑스럽게 모셨던 달링턴 홀의 주인인 달링턴 경이 히틀러에게 이용당하고, 비난받을 만한 달링턴 홀에서의 비밀모임을 집사로서의 헌신으로 자신이 수행해 왔음을 알게 된다. 

집사로서의 역할과 책임에만 충실했던 스티븐슨은 집사의 품위에 앞서 존중되어야 했던 인간으로서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것. 젊은 날 좋아하는 감정을 느꼈던 켄턴 양을 만나러 가는 도중 부딪히게 되는 사람들을 통해 그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 스티븐슨은 그 짧은 여행을 통해 인생의 황혼기에 맞이하는 남아 있는 날들에 대한 희망을 찾게 된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이 되던 1960년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다. 켄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 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일본을 배경으로 전후의 상처와 현재를 절묘하게 엮어 낸 첫 장편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을 발표해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받았다. 

1986년 일본인 화가의 회고담을 그린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로 휘트브레드 상과 이탈리아 스칸노 상을 받고, 부커 상 후보에 올랐다. 1989년 <남아 있는 나날>을 발표해 부커 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이 작품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어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다. 

1995년 현대인의 심리를 몽환적으로 그린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로 첼튼햄 상을 받았다. 2000년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우리가 고아였을 때>를 발표해 맨 부커 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5년 복제인간을 주제로 인간의 존엄성에 의문을 제기한 <나를 보내지 마>를 발표해 《타임》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었고, 전미 도서협회 알렉스 상, 독일 코리네 상 등을 받았다.

그 외에도 황혼에 대한 다섯 단편을 모은 <녹턴(2009)>까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잘 녹여낸 작품들로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거장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대영제국 훈장을, 1998년 프랑스 문예훈장을 받았으며, 2010년 《타임스》가 선정한 '1945년 이후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50인'에 선정되었다. 

2017년 "소설의 위대한 정서적 힘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고, 그 환상적 감각 아래 묻힌 심연을 발굴해 온 작가"라는 평과 함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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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문장들과 머릿속을 맴돌았던 생각들

☞  '품위'란 무엇일까? 주인공 스티븐스는 아버지에 대한 몇 가지 일화들을 소개하면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품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비단 집사로서의 품위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듯싶다. 우리들 개개인이 서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의 품위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학생으로서,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어른으로서, 정치인으로서의 품위.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품위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모든 면에서 품위를 갖추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모자라는 집사들은 약간만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포기하게 마련이다. (~) 위대한 집사들의 위대함은 자신의 전문 역할 속에서 살되 최선을 다해 사는 능력 때문이다. 그들은 제아무리 놀랍고 무섭고 성가신 외부 사건들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점잖은 신사가 정장을 갖춰 입듯 자신의 프로 정신을 입고 다니며, 악한들이나 환경이 대중의 시선 앞에서 그 옷을 찢어발기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p 57~58

그 당시 우리에게 세상은 이 저명한 저택들을 중심축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바퀴였으며, 거기에서 내려진 막강한 결정들이 부자이든 가난뱅이든 바깥 주위를 돌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로 퍼져 나간다고 생각했다. 우리 중 직업적 야망을 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각자 힘닿는 대로 이 중심축에 다가가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좀 전에도 말했듯, 단순히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잘 발휘하느냐의 문제뿐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 그렇게 하느냐의 문제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상주의적 세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슴에 품고 있었으며, 직업인으로서 그 소망을 실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문명을 떠맡고 있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신사를 섬기는 것이라고 보았다. p 148

'진정으로' 저명한 가문과의 연계야말로 '위대함'의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이 생각하면 할수록 명백해지는 것 같다. 자신이 봉사해 온 세월을 돌아보며, 나는 위대한 신사에게 내 재능을 바쳤노라고, 그래서 그 신사를 통해 인류에 봉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다. p 149

"사람은 때가 되면 쉬어야 하는 법이오. 나를 봐요. 퇴직한 그날부터 종달새처럼 즐겁게 지낸답니다. 그래요. 우리 둘 다 피 끓는 청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앞을 보고 전진해야 하는 거요." (~)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p 300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진실되고 가치 있는 일에 작으나마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 그 야망을 추구하는 데 인생의 많은 부분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만으로도 긍지와 만족을 느낄 만하다. 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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