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읽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며칠 전 도서관에서 집으로 데려왔다.
사실 이 책을 한 번 읽고 난 이후에 다시 들춰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당시 내가 처음 <인간 실격>을 읽었을 때에 느꼈던 다자이 오사무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묘한 불안함은 내게 썩 개운한 잔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죽기로 결심했습니다"라는 책 속의 문장 하나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압도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대출해 왔다. 사서 선생님께서 마침 새책이 들어왔다면서 정리를 하고 계셨는데, 책들 사이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인간 실격'이라는 글씨를 미처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인간 실격
- 지은이: 다자이 오사무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 1판 1쇄 펴냄: 2004년 5월 15일
<인간 실격> 줄거리
1948년 발표된 <인간 실격>은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책은 '나'라는 화자가 서술하는 서문과 후기 사이에 주인공 요조가 쓴 세 개의 수기로 구성되어 있다.
어려서부터 타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요조는 사람들과 동화되기 위해 익살꾼을 자처하며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속이는 방식으로 세상과 타협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 역시 인간에 대한 불신만 키우게 되며 좌절하게 된다. 결국 술과 담배를 거쳐 마약에 중독되며 피폐한 생활을 하다가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동반자살 기도에서 여자만 죽고 혼자 살아남게 되고, 본가로부터도 외면당한 채 정신병원에도 입원하게 되며 결국에는 외딴 시골집에서 쓸쓸히 죽음만을 기다리는 인간 실격자가 되고 만다.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 오사무의 본명은 쓰시마 슈지이다. 1909년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에서 부유한 집안의 11남매 중 열째로 태어났다. 자신의 집안이 고리대금업으로 부자가 된 신흥 졸부라는 사실에 평생 동안 부끄러움을 느꼈던 그는 도쿄 제국 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후 한동안 좌익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1930년 연인 다나베 아쓰미와 투신자살을 기도했으나 홀로 살아남아 자살 방조죄 혐의를 받고 기소 유예 처분되었다. 1935년 맹장 수술을 받은 후 복막염에 걸린 그는 진통제로 사용하던 파비날에 중독된다. 같은 해에 소설 <역행>을 아쿠타가와 상에 응모하나 차석에 그친다.
그는 이 심사 결과에 불만을 품고 당시 심사 위원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항의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한다. 이듬해 파비날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는데, 자신의 예상과 달리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크나큰 심적 충격을 받는다. 1945년 일본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후, 그의 작품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다.
사카구치 안고,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데카당스 문학', '무뢰파 문학'의 대표 작가로 불린다. <인간 실격>은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으로, '퇴폐의 미' 내지 '파멸의 미'를 기조로 하는 다자이 문학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다마 강 수원지에 투신해, 생애 다섯 번째 자살 기도에서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하는 일본 작가라고도 알려져 있다. 또한 <인간 실격>은 청춘의 한 시기에 통과 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작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를 담고 있으며,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 실격>을 통해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들을 드러내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가 작품 속 요조가 되어 인간 실격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삶에는 서로 속이면서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도 입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p 26
부유했지만, 정당하지 못한 부의 축적에 부끄러워했던 다자이 오사무. 끝없이 외로웠고, 그 고독 속에서의 두려움에 불안해했던 그는 결국 침묵을 선택했다. 다섯 번의 자살 시도를 했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누구보다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했다는 생각이 든다. 옳지 않은 것에 분노하지 않고, 상식을 뒤엎는 불합리 앞에서 당당해하는 사람들에게 다자이 오사무는 말한다. "인간 실력"이라고.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자상하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처럼 좋은 사람이었어요." p 136
<인간 실격>의 마지막 문장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작품 속 주인공인 요조였다. 책의 마무리는 적어도 다자이 오사무가 자신에게 건네는 마지막 위로는 아니었을까. 서른아홉 살의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려 본다.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 교향곡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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