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사진_ Hyun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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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중학교 시절, 아니면 고등학교 때였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유치환의 '행복'을 처음 만났을 때, 교실 안에서 우리들은 서로 의견이 나뉘었다. 이 시의 표현처럼, 정말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가 맞을까? 아니면 그것은 단지 시적인 표현에 불과했던 것일까. 

친구들의 의견은 서로 분분했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인해 유치환의 '행복'은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래서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입에서 맴도는 시로 남게 되었다. 지금은 거리에서 우체통을 보는 것이 어려워졌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빨간색 우체통을 볼 때마다 이 시가 떠오르곤 했다. 

청마 유치환(1908~1967)은 편지 쓰기의 고수였다고 전해진다. 시조시인 이영도에게 오랜 세월 사랑의 편지를 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영도에게 보낸 오천여 통의 편지 중에서 200통이 유치환의 사후에 책으로 묶였는데,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가 바로 그 서간집이다. 

알려진 바로는 유치환의 짝사랑의 상대가 몇 번 바뀌었다고 하는데, 우리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편지의 상대는 시조시인 이호우의 동생인 이영도였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한 후 딸을 키우고 있었는데, 유치환은 30대 초반의 아름다운 이영도를 사모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영도는 당시 유부남이었던 유치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 시 '행복' 역시 이영도를 향한 유치환의 짝사랑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나중에는 유치환의 사랑을 받아들여 문학세계를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하는데, 정운 이영도가 유치환에게 편지를 받은 것이 20년 간이라고 하니 청마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환의 절절한 마음이 표현된 '그리움'이라는 시가 함께 생각난다. 

 

그리움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사랑을 속삭였던, 그 때의 그 편지들

사랑을 속삭였던, 그 때의 그 편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