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작은 이야기

'할 말 있어요' 칠판의 할 말들

난짬뽕 2024. 11. 1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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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나쁜 마음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른다.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착한 마음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그림자가 그 주인을 따르듯이.

<법구경> 중에서 

 

얼마 전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나오려는데, 출입구 벽면에 못 보던 칠판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그 위에는 '할 말 있어요'라는 문장이 이름표처럼, 이 칠판의 용도를 알려주는 듯했다. 

그날 이후로 이 칠판 안에는 여러 가지 '할 말'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천국의 계단을 독차지하고 있다거나, 러닝머신에 땀이 떨어진 흔적 때문에 기분이 언짢아졌다고도 하고, 흘러나오는 음악이 일 년째 똑같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리고 그 '할 말'들은 점점 수위를 높여가는 양상이었다. 어떤 이의 실내용 운동화가 너무 지저분하다고도, 무게 운동만 하는 누구의 기압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는, 몸매를 과시하는 듯한 복장이 민망하다는 이야기까지 눈에 띄었다. 

어느 순간, 그 칠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다. 분명 좋은 취지로 만들어 놓았을 그 칠판 안에서 많은 사람들은 짜증을 냈고, 무엇인가를 적어야만 할 것 같아 눈을 부릅뜨고 잘못된 것이라고 느껴질 만한 것들을 세세하게 찾아내는 의무감을 발휘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한 어두운 기운이 나에게까지 다가와, 앙증맞고 예쁜 칠판을 볼 때마다 나를 휘감는 생각들은 맑고 따뜻하지 않았다.

그 며칠 뒤 남편과 함께 헬스장 오픈 시간에 맞춰 새벽운동을 갔던 나는 아무 이야기도 쓰여 있지 않은 채 또 다른 '할 말'들을 기다리고 있는 칠판을 보게 되었다. 

누군가 내가 하는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칠판 상단에 빠르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기분 좋은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그리고는 재빨리 운동기구 앞으로 도망치듯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그다음 날 새벽 헬스장을 찾았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출입문을 열었는데 칠판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할 말'이 보였다. 

"매일 깔끔하게 청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레이너 선생님 늘 고맙습니다." "저희 모두 열심히 건강해져요." 그리고 그 맨 위에는 전날 내가 쓴 "기분 좋은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는 인사가 지워지지 않은 채 아직도 남아 있었다. 

우리 아파트 헬스장에는 지금도 '할 말 있어요' 칠판이 걸려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칠판을 볼 때마다 웃음을 짓게 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 날에는 그림 솜씨가 있는 누군가가 위트 있는 캐리커처로 열심히 운동을 독려하고, 또 어느 날에는 사이즈가 작아져서 신을 수 없다면서 마음에 드는 동생들이 있다면 연락을 바란다며 세부사항과 함께 테니스화 사진을 붙여놓은 대학생 형의 '할 말'도 만날 수 있었다. 

나쁜 말은 나쁜 기운을 만들고, 좋은 기운은 좋은 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말은 좋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해도 하루가 가고, 저렇게 해도 하루가 24시간이다. 우리들의 하루가 천당이 되고 지옥이 되는 것은 모두 마음에 달려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내 마음의 방향이 어느 곳으로 향하는지를 잘 살펴보는 것이 정말로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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