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최유진의 연주를 직접 듣게 된 것은 2012년 6월 20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한국과 룩셈부르크 수교 5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였습니다.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와 함께한 조인트 리사이틀에서 들려준 그녀의 연주는 한순간에 저의 온몸을 굳어버리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무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전율에 사로잡혀 연주회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이나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정말 운이 좋게도 직접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고, 인터뷰 후 저는 최유진 피아니스트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음악이라는 절대가치를 찾아가는
건반 위의 불꽃
피아니스트 최유진
독일에 거주하며 미국, 유럽, 한국 등 전 세계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최유진. 긴장되면서도 카타르시스가 전이되는, 고유하면서도 어느 순간 흥분된 열정을 선사하는 피아니스트 최유진의 무대는 마치 화려하게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를 연상시킨다. 자신만의 색채를 담은 그녀만의 음악은 깊은 이해를 거쳐 나온 유연한 음악성으로 전 세계 청중을 매료시키고 있다.
글 엄익순
베토벤에서부터 최유진까지 이어지는 음악적 계보
음악적 시야를 넓히고 싶었던 최유진은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도미, 미국의 명문 예술고등학교인 월넛힐 스쿨과 보스턴의 명문 음악학교인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예비학교를 수석 졸업하게 된다. 동시에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의 학사와 석사 과정 역시 수석으로 입학, 6년간 장학금을 받았다. 이후 프랑크푸르트 국립음대에서 레프 나토체니의 지도하에 최고 연주자 학위를 우등으로 취득하였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선화 선생님과 신수정 선생님, 미국에서는 변화경 선생님과 러셀 셔먼 선생님과 같은 훌륭한 스승님 밑에서 공부할 수 있어서 저는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때까지는 단지 '피아노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면, 나토체니 교수님을 만나면서 진정한 '음악가'이자 '예술가'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분을 통해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자유롭고 독창적이면서도 악보에 충실한 음악의 해석을 배울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두려움 없이 저만의 소리와 메시지를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용기와 음악이라는 평생의 구도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헌신과 깨달음을 얻게 된 것 같아요. 특히 Beethovrn - Czerny - Siloti - Igumnov - Oborin - Natochenny로 이어지는 계보에 관해서는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베토벤으로부터 시작되는 음악의 전통이 저의 가장 최근 스승이신 나토체니 교수님을 통해 저에게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죠. 저 또한 지금보다 한층 깊이 있고 성숙된 음악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물론 한국과 미국, 유럽 각지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유진은 한 해에 적어도 50회가 넘는 연주회를 준비하고자 한다. 물론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연습하는 과정이 결코 녹록하지 않지만, 하나의 공연마다 독창적인 주제로 색깔을 입혀 청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연주자에게 있어 가장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동안 그녀는 유럽 각지의 권위 있는 무대에서 관중들의 거듭되는 기립 박수와 평단의 찬사를 받으면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음악에 대한 명민하고 깊은 이해, 견고한 음악적 구성과 파워풀한 테크닉, 더불어 섬세하고 감각적인 터치, 감성적 유연함과 우아하고 세련된 음악성의 조화로움을 발산하고 있는 그녀의 무대는 마치 화려하게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일까. 최유진의 피아노 선율을 듣고 있노라면, 모두들 어떠한 수식어로도 형언할 수 없는 감탄사를 자아내며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진정한 예술은 테크닉이 아니다
국내 재학 시 이화 경향, 조선일보, 한국일보, 삼익, 음악춘추, 서울시향 등의 모든 콩쿠르를 1위로 휩쓸며 예원학교를 수석 졸업한 최유진은 미국에서도 하버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코퍼스 크리스티, 텍사스 & 서미트 페스티벌 등에서도 우승을 하여 국내의 유명 지휘자 박은성, 임원식, 금난새를 비롯 스타니슬라브 스크로바 체프스키, 키스 로크하트, 벤자민 젠더와 같은 세계 유수의 지휘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국내 유수의 콩쿠르를 휩쓸며 두각을 나타냈던 그녀는 미국 유학 생활을 하던 10년 동안 끊임없이 러브콜을 하는 한국에서 연주회를 갖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렸을 때에는 정말 음악을 사랑해서라기보다는 등수에 매달려서 항상 1등이 아니면 안 된다는 치기 어린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조금씩 커가면서 등수가 얼마나 의미 없고 허망한 숫자에 불과한지 깨닫게 되었죠. 진정한 예술은 남과의 경쟁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 아니 싸움이라기보다는 음악이라는 절대가치를 찾아가는 구도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콩쿠르라는 시스템에 회의도 느끼게 되었고, 이 길은 진정한 예술가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은 등수로 매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어요. 특히나 다수를 고르게 만족시켜야 하는 콩쿠르 시스템에서는 자기만의 소리와 개성이 강한 연주자는 상위 입상을 하기 어렵다는 데에서 제가 믿는 음악과 예술에 대한 가치관이 일치하지 않아요. 현재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연주자들, 예컨대 아르카디 볼로도스나 예핌 브론프만, 파질 세이, 예프게니 키신, 유자 왕, 랑랑 등은 콩쿠르라는 시스템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현재 독보적인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죠.
콩쿠르가 곧 연주무대의 등용문이라는 공식은 이미 깨어졌다고 생각해요. 벨라 바르톡이 했던 말씀 중 'Competitions Are For Horses, Not Artists'라는 구절이 떠오르는데, 자고로 예술이라는 것은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그래서인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보다는 제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 기울였던 것이죠."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큼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오히려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내면을 성숙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그 당시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은 바로 어머니의 격려가 아닐 수 없다.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녀의 팩스로 전해진 한국에서 건네 온 어머니의 편지. 그녀의 뜻대로 스스로가 음악적인 성숙함이 느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따뜻한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넘어 자신의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미국 유학 생활. 그리고 지금 최유진은 어떤 연주자들보다도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과 여운을 남기는 피아니스트로 기억되어가고 있다.
꿈을 꾸다, 그리고 실현하다
가장 이상적인 연주자는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라고 최유진은 말한다. 그녀는 명상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때로는 하루에 10시간이 넘도록 피아노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을 만큼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스스로의 음악적 목소리를 찾아 오랜 시간 자신을 가다듬으면서 이루고 싶었던 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희망들이 어느덧 하나하나 결실을 맺고 있다.
가는 곳마다 관객을 압도하는 연주로 세계 곳곳의 청중들에게 최고의 연주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녀는 한국에서 청중들을 만나게 되는 기회가 생긴다면, 초청 연주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현재 해외 무대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된 그녀를 국내에서는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초청한다. 6월 20일, 한국과 룩셈부르크 수교 5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도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여유롭게 쉴 틈이 없는 해외에서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한국에서의 초청이 있으면 가급적 흔쾌히 기쁜 마음으로 준비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청중들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팬들이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리스트의 곡을 많이 연주하면서, 만약 음반 작업을 하게 된다면 맨 먼저 리스트의 곡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피아니스트였으면서 작곡가로서는 저평가된 면이 없지 않았죠. 그러나 리스트는 동시대에 살았던 다른 작곡가의 곡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풀어냄으로써 더욱 돋보이게 했던 음악가입니다."
2011년 1월 리스트의 해를 기념하며 소니 클래시컬에서의 첫 번째 음반인 <Liszt Reflections>가 출반 되었다. 리스트를 그려내고 싶었던 그녀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그래미상 수상 경력에 빛나는 클래식 엔지니어 마이클 파인과의 작업으로 탄생한 이 음반은 독일 하노버의 베토벤 홀에서 녹음됐으며, 리스트가 작곡한 '페트라르카의 소네트'와 소나타풍 환상곡 '단테를 읽고'를 비롯해 그가 편곡한 바그너의 '사랑과 죽음'과 베르디의 '리골레토 패러프레이즈' 등 6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 음반은 미국의 권위 있는 음반 비평지인 <팡파레 매거진>에서 '자신만의 소리를 가진 진정한 예술가', '빌헬름 켐프 이후로 가장 유연성 있고 광채 나는 칸타빌레'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꿈이 있다면,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해 보세요. 언젠가는 그 꿈 앞에 다가서 있을 테니까요. 저는 언제나 꿈을 꾸었고, 그것을 실현했답니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꿈을 향해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갑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음악을 즐기는 청중을 만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최유진은 아무리 준비 과정이 힘들어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서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다고 한다. 오래지 않아 우리는 2012년 그래미상 클래식 부문 최고 기술상 수상자인 사운드 엔지니어 황병준 씨와의 작업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두 번째 앨범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건반 위에서 춤을 추는 그녀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들을 놀라게 할지 행복한 기대를 해본다.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각인시키는 우리나라의 대표 피아니스트로서의 최유진의 모습이 무척이나 당당하고 자랑스럽다.
Vol. 59 JULY 2012 Music Friends
그리고, 현재
소니 클래시컬 전속 피아니스트이자 스위스 칼라이도스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최유진을 국내에서 만날 기회는 좀처럼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주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요. 그녀가 국제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전 세계의 약 15개국에서 활동하는 140여 분의 최정상급 아티스트들을 교수진으로 모셔와 1:1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유진온뮤직'이라는 인터내셔널 온라인 뮤직 아카데미를 한국에 열어 클래식계를 깜짝 놀라게 했답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 명망 있는 교수로서, 유명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으로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최유진은 온 세상을 음악으로 연결하여 전 세계의 음악 전공생들의 심화 교육은 물론,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로벌 음악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 최유진이 유진온뮤직 아카데미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오랫동안의 유학생활과 해외 연주 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여러 가지 장애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의 음악 전공생들과 음악의 심화 교육을 위해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 음악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취지에서 설립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과 저명한 마에스트로들을 학생들이 만날 수 있는 가교 역할이 될 유진온뮤직에서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손꼽히는 영국 BBC의 악장과 모든 수석진, Muenchen Philharmoniker, Berlin Phil, NY Metropolitan orchestra 등과 같은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수석 단원, 국제 최고의 아카데미 대학교 음악원 등에서 지도해 온 연륜이 깊은 명 교수진과 상대적으로 젊은 국제무대에서의 프로페셔널 콘서트 아티스트들로부터 마스터 클래스 및 온라인 개인 레슨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음악에 관심이 있거나 혹은 평소에 좋아하는 연주가를 만나고 싶으신 분들께는 좋은 소식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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