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다, 피아니스트 조재혁

난짬뽕 2021. 3. 3.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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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재혁은 젊은 시절, 음악적인 사춘기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일 년 동안 단 한 번도 피아노 건반을 누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음악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삶이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다시 피아노 앞에 앉게 되었다고 하네요. 오르간에도 관심이 있던 그는 오르간 공부를 하여 오르가니스트로도 무대에 서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오르간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7월에 만난 피아니스트 조재혁의 일상은 곧 음악이었고, 그 음악은 그의 인생이기도 했습니다. 

 

 

연주의 생활화,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피아니스트 조재혁

 

 

1993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데뷔한 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피아니스트 조재혁. 그가 2010년 성신여대 교수로 초빙되어 오자마자, 국내 클래식 음악계는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신선한 도전과 유쾌한 소통으로 활기가 넘친다.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 피아니스트 조재혁을 만난다.

글 엄익순

 

 

음악을 통해 행복한 세상을 그리다

TV에서 방송되고 있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숨겨진 일화들을 설명해 주거나 혹은 명연주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대신 풀어주고 있는, 또 클래식 FM 라디오 <장일범의 가정음악> 프로그램에서 '위드 피아노'라는 코너를 통해 청취자들에게 직접 피아노 연주와 작품에 관한 해설을 들려주고 있는 친절한 클래식계의 신사가 있다. 2010년 3월 성신여대 교수로 부임한 조재혁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스페인 마리아 카날스 콩쿠르 1위를 비롯하여 차이코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 이탈리아 레이크꼬모 국제 콩쿠르, 뉴올리언스 국제 콩쿠르, 니나 와이드만 피아노 콩쿠르, 텍사스 비아르도 국제 콩쿠르 등 굴지의 콩쿠르를 석권한 화려한 경력의 피아니스트. 1993년 뉴욕의 프로피아노 영 아티스트 오디션에서 우승, 카네기홀 와일 리사이틀홀에서 데뷔하여 북 · 남미와 유럽 등지에서 독보적인 활동으로 주목받아 왔다. 

 

사진 이준용

 

그러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조재혁이 국내 무대는 물론 연주회의 해설자로서, 그리고 방송 프로그램에서의 강의와 라이브 연주로 대중들과 폭넓게 소통하고 있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포함하면, 그의 일상은 온통 음악적인 색채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그 모든 일들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쁜 일정으로 인해 힘들다기보다는 오히려 행복합니다. 사실 제가 하고 있는 활동들이 각기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형태로 연결되어 있죠. 연주회나 학교에서의 강의, 또 방송에서의 음악적 해설 역시 모두 '음악 안에서 소통' 되고 있는 한 폭의 그림이라고나 할까요. 연주를 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연습해야 하는 음악에 대해 분석하고, 그래서 자신만의 목소리로 재조명해보는 과정이 바로 연주회나 강의, 방송 활동과 모두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한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것이죠."

 

재작년까지만 해도 연간 50회의 연주회를 열었던 그는 2011년에는 80회가 넘게 무대에 섰다. 강의를 마치고, 새벽 4시가 다 되도록 연습실의 불을 밝히다가 아침이면 대중들과 만날 방송 준비를 했고, 방송국을 나와서는 저녁에 열릴 음악회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음악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과 언제나 함께할 수 있어 그는 늘 행복하다고 미소를 짓는다. 

 

훌륭한 음악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피아노는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악기입니다. 건반만 누르면 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가면, 하면 할수록 어려운 악기가 바로 피아노입니다. 페달을 누르면 계속 넓은 영역의 코드를 지연시킬 수 있고, 음을 섞을 수도 있기 때문에 기준이 되는 음을 중심으로 선율의 수평 · 수직 멜로디의 조합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렇지만 그 화음의 조화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죠. 그러한 측면에서 피아노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조재혁 교수는 음표 하나하나의 조합을 통해 피아노를 매개체로 음악답게 불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컴퓨터 자판을 치듯 건반을 누르지 말고, 호흡을 가다듬고 피아노로 노래를 부르라고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멜로디와 화성의 변화를 느끼면서, 마치 피아노로 성악을 하는 것처럼 음을 풀어내야만 살아있는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음표나 악상기호 뒤에 숨어 있는 작곡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연주자만이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맨해튼 음대 교수였던 스승인 니나 스베들라노바의 가르침을 조재혁은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사진 이준용

 

"음악에 대해서, 혹은 연주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 연주를 들었을 때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눈물이 흐르거나 감정이 동요되는 음악을 해야 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였다면, 그가 바로 훌륭한 음악가인 것입니다."

 

조재혁은 지금도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 그 음악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에 대해 늘 고민한다. 피아노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 색깔을 무엇으로 그려내야 할지, 더 나아가 작품을 만들 당시 작곡가의 심리상태까지 파고든다. 그러나 연주자로서의 깊이가 진해질수록 한층 더 부족함을 느낀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으면서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고 스스로에게 충고한다.

 

유치원에 있던 피아노를 보고 호기심에 눈을 떼지 못한 것이 피아니스트로서의 길을 가게 된 시작이었다. 5살 때부터 시작하여 중학생이 되어서도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지만, 그 당시까지도 전문 연주자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음악적 재능뿐만 아니라 과학과 의학, 미술, 심리학 등 많은 분야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주위에서 탁월한 그의 음악적 재능을 눈여겨보았다.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던 그가 15세에 전국 틴에이저 콩쿠르 골드상을 비롯해 한국일보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자, 심사위원을 비롯한 많은 음악인들의 관심이 조재혁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행복할지 고민한 끝에 음악을 선택한다. 서울예고를 수석 입학하여 1학년 재학 중 도미, 뉴욕 맨해튼 음대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어드에서 학사와 석사 그리고 전문연주자 과정을 하는 동안 솔로몬 미코프스키, 허버트 스테신, 제롬 로웬탈로부터 전체 장학생으로 사사하였고 이어 맨해튼 음대에서 스베들라노바에게 사사하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주와 솔로이스트, 그리고 실내악 주자로서 청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조재혁은 천여 명에 이르는 회원들이 음악적 교감을 나누는 팬카페도 운영되고 있을 만큼 대중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일상이 곧 음악이요, 음악이 곧 그의 인생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조재혁의 연주는 언제나 듣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연주의 생활화, 그것이 음악의 즐거움

그의 손가락 끝은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가늘다고 한다. 그래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반 위에서 늘 신중을 기울인다. 건반을 누르는 힘이 강하게 표현되면 자칫 날카로운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자신의 약점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화가가 붓 하나를 가지고도 힘의 강약에 따라, 때로는 붓끝만으로도 멋진 그림을 그려내듯, 오히려 그는 손 모양을 다양하게 바꾸며 원하는 소리를 찾아낸다. 좋은 연주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학생 스스로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조재혁은 말한다. 즐겁지 않은 마음으로 음악을 대하면, 괴로운 표정의 연주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연주자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청중들이 먼저 느끼게 된다. 

한때 조재혁 역시 음악적인 사춘기를 보낸 적이 있다.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 그는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이 과연 음악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일 년 동안 단 한 번도 피아노 건반을 누르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로스쿨 공부를 시작했다. 만약 그의 음악적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변호사가 되어 있는 조재혁과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는 자신이 음악을 계속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삶이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학교로 돌아와 피아노를 쳤고, 박사학위 공부를 시작했다.

 

 

"며칠 전 저의 연주를 들었다는 어느 중학생이 학교로 찾아온 일이 있어요. 피아노를 전공할 계획인데,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말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음악은 결코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게임이 아니에요. 최고라는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요? 자신의 재능 안에서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소중합니다. 만약 최고가 되기 위해서 음악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왜 음악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해 보세요. 음악을 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전문 연주자의 길을 갈 수도 있고, 음악을 통해 마음을 나누는 봉사도 할 수 있죠. 음악을 음악 안에만 가둬둘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피아니스트 조재혁은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바쁜 일정을 할애하여 TV나 라디오 매체를 통해 음악에 대해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해설을 하기도 한다. 그는 늘 즐거운 음악회를 꿈꾼다. 무대 위에서의 연주자와 관객들이 어우러져 함께 즐기는 연주회, 막이 내리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행복함이 묻어나는 그런 연주회를 직접 기획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음악을 들어줄 청중이 있고, 연주할 수 있는 무대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는 피아니스트 조재혁. 그의 피아노 선율에서 펼쳐지는 음악의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행복하게 그려가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더 많은 색채로 표현될 그의 음악 세계를 기대한다. 

Vol. 60 AUGUST 2012 Music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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