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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음악의 깊이와 감동,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김진

난짬뽕 2021. 3. 9.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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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12년 7월 22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바로크 음악회에서였습니다. 연주회 시간이 길어 중간에 주최 측에서 마련한 샌드위치와 음료 등의 간식까지 먹고 난 후, 다시 연주회가 시작되었지요. 아마 여러분들 중에서도 고음악에 관해서는 조금 생소한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고음악은 '클래식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바로크와 르네상스 음악을 작곡 당대의 옛 악기와 연주법의 음악을 말합니다.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김진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고음악을 전파한 연주가입니다. 고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신비스러움이었습니다. 마치 내가 그 시대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요. 김진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와의 만남은 정말로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古音樂의 깊이와 감동을 전파하다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김진

 

 

연주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악기의 복원을 통해 고음악(古音樂)은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고음악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바로크 음악의 가치를 느끼게 해 준 선구자. 그가 바로 한국 최초의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인 김진이다.

글 엄익순

 

 

고음악에 매료되어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다

사전적 의미로는 '그리스 시대부터 고전주의 이전 바로크 시대까지의 음악'으로 정의할 수 있는 고음악은 18세기 이전, 특히 바로크 이전의 서양음악을 말한다. 다시 말해 바흐와 헨델, 그 이전의 바로크와 르네상스 음악을 작곡 당대의 옛 악기와 연주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고음악인 것이다. 이는 곧 클래식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다.

 

사진 이준용

 

그동안 이 시대의 음악은 고전이나 낭만주의 연주 방식 또는 20세기의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당대의 연주 양식과는 거리가 먼 해석으로 연주되어 왔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지난 20세기 중반 이후 고음악 연주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악기의 부활운동을 통해 원전연주가 자리를 잡았고, 가까운 일본 또한 1960년대부터 여러 원전연주 전문단체가 활동할 만큼 관심이 높았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고음악에 대한 어떠한 정보는 물론 전문 연주자조차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낯설고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우리나라에 고음악의 가치와 그 감동을 전해준 선구자가 바로 김진이다. 

 

서울대 음대를 수석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많은 사람들에게 촉망받던 모던 바이올리니스트가 어느 날 갑자기 바로크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어 한국 클래식계를 놀라게 했다. 그동안 국내 음악계에서는 접해보지 못했던 고음악의 신비스러움이 그로 인해 전파된 것이다. 김진과 고음악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그때가 1987년이었죠. 미시간 음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동안에도 저는 모던 바이올린이 제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원전연주 LP를 두 장 구입하게 됐어요. 하나는 괴벨이 연주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쿠이켄의 연주였는데 그것이 제가 처음으로 듣게 된 바로크 바이올린 선율이었죠. 섬세하면서도 마음을 잘 표현한 듯한, 지금까지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소리의 세상을 만난 것 같았어요. 한마디로 충격에 빠져들었죠. 마치 가슴에서 실을 꼬아 뽑아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꼭 고음악을 해야겠다는 결심밖에 없었죠."

 

지기스발트 쿠이켄의 원전연주에서 느껴지는 바로크 바이올린의 울림은 가장 인간적인 소리 같았다. 그 순수한 음색에 사로잡혀 그녀는 바로크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밤 기차를 타고 12시간씩 달려가 레슨을 받은 적도 빈번했으며, 유럽과 미국의 쟁쟁한 바로크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새로운 연주법을 익히기도 했다. 또한 쿠이켄이 여는 세미나와 음악 페스티벌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그 후 몇 년 뒤에는 모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고악기 연주법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던 악기를 포기한 채 원전 악기에만 몰입하게 된다. 그러한 그녀의 배움에 대한 열정에 세계적인 바로크 바이올린 연주자인 쿠이켄이 김진을 제자로 받아들여 직접 주법을 가르쳐주었고, 그녀는 국내에 처음으로 고음악을 전파하게 된다.

 

음악적 상상력에 날개를 달다

당시의 음악을 백 퍼센트 당대의 연주 방식으로 연주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원전 악보를 두고 활을 통해 이 선율이 무엇을 말하려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악기와 소리와 음색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했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보통 단순 멜로디로만 되어 있기 때문에 연주자는 그날 청중들의 반응과 반주자의 스타일에 따라 얼마든지 재창조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초기 바로크 시대에는 악상기호조차 전혀 기보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때로는 연주자가 즉흥연주를 하며 개성을 살려야 했다. 그러므로 연주자가 제2의 작곡가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사진 이준용

 

"음악을 연주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인가를 파악한 다음, 그것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 것이지요. 원전연주는 음악의 혼과 중심을 찾기 위한 실험과 도전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원전연주는 그 당시의 고악기로 연주해야 한다는 것이죠. 바로크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마치 말하는 것처럼 표현되어야 하는 것인데, 만약 고음악을 현대 악기로 표현했을 경우에는 필요 이상으로 무겁고 심각하게 들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에요. 쉽게 설명하자면, 바흐가 곡을 만들 때 당시 자신이 갖고 있던 악기를 통해 연주법을 생각했던 것이지, 미래의 악기를 예상하고 작품을 쓰지는 않았을 거라는 말이죠. 그러므로 고음악을 고악기로 연주하지 않았을 때에는 듣는 사람들이 매우 불편함을 느끼게 되죠."

 

김진의 악기는 1656년에 만들어진 야콥 슈타이너 바이올린이다. 이 악기는 바흐와 모차르트가 즐겨 연주했을 뿐만 아니라 코렐리와 타르티니 등도 사용했다고 한다. 현대 바이올린처럼 큰 울림과 긴장감은 없지만, 노래 부르듯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이 자랑거리다. 그 뛰어난 공명과 섬세한 반응으로 바로크 시대의 음악 표현에 가장 잘 어울린다. 

 

"바로크 바이올린은 턱받침 없이 연주하기 때문에 한층 더 깊이 있는 표현이 가능합니다. 악기가 몸과 분리되어 자유로운 자세로 연주되었는데, 간혹 손가락이 낮은 포지션으로 옮겨갈 때만 살짝 턱을 누르곤 했어요. 또 강철현을 사용하는 현대 악기와 달리 양의 내장으로 만든 커트 줄이 사용되어 긴장감 없이 공명이 잘 되는 소리를 낼 수 있죠. 아주 예민한 활의 사용에도 즉각 반응을 해서 지속적인 비브라토가 요구되지 않습니다."

 

바로크 음악은 그 시대의 악기와 주법으로 연주해야 더욱 매력적이다. 더불어 연주자가 그 시대의 음악적 특성을 이해한다면 한층 즐겁게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바로크 프로젝트 앙상블, 무지카글로리피카

바로크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해외에서 더 왕성한 활동을 하던 김진은 고국의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고음악의 깊이를 전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1992년 국내에서 처음 연주 활동을 시작했는데, 진지한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던 관객들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고음악 연주자 김진을 통해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접하게 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고음악을 즐기는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너무나 행복하고 기뻤다. 순수하게 고음악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 수가 많고 적음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 보답으로 매년 한국에서의 연주회를 준비했다.

 

 

"2000년 초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내신 이건영 교수님께서 고음악 연주그룹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연주 활동을 해보라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무지카글로리피카'입니다. '영광을 돌리는 음악'이라는 뜻을 지닌 바로크 프로젝트 앙상블이에요. 2002년 창단되어 지난 10여 년간 국내외 정상급 연주자들과 함께 바로크 시대의 레퍼토리들을 정통적인 연주로 재창조하여 소개해 왔습니다. 더불어 이를 계기로 한국고음악협회도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죠. 우리나라에서 고음악이 정착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물론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에 정말로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우리나라에 뿌린 고음악에 대한 작은 씨앗이기도 했던 '무지카글로리피카'가 어느덧 창단 10주년이 되었다. 김진은 국내 고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크 대표 작곡가인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폰 비버의 '미스터리 소나타'를 이달 22일 금호아트홀에서 국내 최초로 전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김윤경을 비롯하여 고음악계의 새로운 스타로 주목받고 있는 쳄발로 주자 벤자민 알라드와, 류트, 테오르보와 바로크 기타를 가장 역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연주하는 아티스트로 명성이 높은 헤지나 알바네즈가 함께 무대를 장식한다. 

 

묵주기도의 15개 주제를 따라 한 곡씩 작곡된 일종의 표제음악적 성격을 지닌 이번 연주회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바이올린 현의 조율을 변경하여 연주하는 스코르다투라 기법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크 음악의 특징이 그대로 묻어나면서, 기교적으로도 고난도의 연주 기법과 획기적인 시도들을 보여줄 이번 무대가 기대된다. 

 

"음악은 강한 힘을 가진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내세우기 위한 욕심에서 경쟁을 우선시하면 그 음악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음악은 연주자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하죠. 자신의 마음을 통해서 음악 그 자체에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재능 있는 연주자가 많은데, 너무 어린 나이부터 경쟁에 몰두하거나 콩쿠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쉽기도 해요. 앞만 바라보며 무조건 기계적으로 연습에만 매달리지 말고,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며 자신의 인생을 즐기길 바랍니다. 삶과 어우러져야만 진정한 의미의 음악인 것이에요."

 

한국 최초의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우리나라에 고음악의 가치를 느끼게 해 준 선구자로서의 김진의 음악은 그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강한 여운을 자아내지만 거칠지 않고, 부드럽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다. 김진의 바로크 바이올린 선율을 타고 수놓아진 한국 고음악의 역사가 이제는 세계 음악계에 새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Vol. 59 JULY 2012 Music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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