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나침반/그 곳

열림은 있되 닫힘은 없다 / 서울역

난짬뽕 2021. 3. 1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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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은 있되 닫힘은 없다

서울역

 

 

1999년 2월의 서울역은 침묵하고 있다. 어깨에 짓눌린 그만큼의 무게를 감당치 못해, 자꾸만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치장된 겹겹의 옷을 걸치고 있건만, 그것은 최소한의 바람막이 역할마저 상실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좌절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혹한이 지나고 나면 봄이 찾아오듯이, 다시 당당해질 내일을 위해 지금 잠시 몸을 움츠렸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그저 담담하기만 하다. 떠날 사람 떠나게 하고, 그리고 남아 있는 자에게는 굳이 조급해하지 않는, 서울역은 닫히지 않는 마음의 안식처인 것이다. 

글 엄익순

 

 

서울의 하루는 사망 103명의 혼을 받아 385명의 출생이 이루어지고 혼인 209쌍이 46쌍의 이혼을 대신해 생활해 가는 이중 구조로 순환된다. 때로는 7,788명의 이동된 인구가 266,781 배럴의 유류를 필요로 하며, 양곡 39.075 가마를 소비하기도 한다(제38회 1998 서울통계연보 참조). 서울이라는 공간적 개념 안에서 또다시 그 거주 환경에 따라 분류되는 각종 파생적 요인을 집약해 본다면, 서울은 역시 다중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 수 없다. 

 

사진 정진성

 

서울의 종갓집이라 대변되는 종로구를 비롯하여, 한국의 화려한 땅 중구와 더는 남쪽에 있는 산이 아닌 남산과 군사 시설의 용산구, 그리고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치 않는 풍경의 마포구와 한국의 비단길이라 불리는 서대문구, 기자촌과 구파발동의 은평구와 예술인 마을이라 전해 내려오는 성북구, 푸르른 도봉구와 노원구 및 현대판 민족 대이동을 가능케 한 강남구와 서초동, 그리고 젊은 근로자들의 땅인 구로구 등의 하위 개념들이 모아져 비로소 서울이라는 고유명사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서울의 또 다른 종속 개념인 서울역은 그 성격이 단지 위에 열거한 협의적인 개념의 소규모적 특성에 비해, 전국의 팔도를 그 거래 상대로 삼고 있다.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와 경상도, 제주도 등 가히 그 원소들이 서울의 그것들에 비해 한층 광의적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역은 서울의 부분집합인 동시에 그것과 등식을 성립하기도, 때로는 전체집합으로 대변될 수 있다. 

 

성공을 꿈꾸는 희망의 문

'서울이 만원이다'라는 말은 이미 옛날에도 상용되었으며, 물론 현대인 오늘날에도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만큼은 진부한 속담이라 간주되기보다는 불변의 고집일지도 모르겠다. 촉망받는 시골 학생일수록 형편에 아랑곳하지 않고 떠올리는 것이 서울행 대학 진학일 것이며, 지방의 부자들 역시 재산을 더 많이 불리고자 하는 욕심에 땅을 팔아 올라오는 종착점 역시 바로 이곳이다. 물론 오직 가진 것이라곤 맨몸뿐인 이들마저, 같은 값이면 서울에서 고생을 하겠다고 하며 모이는 곳 역시 바로 여기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서울은 그들을 아무런 거부 없이 받아주는 희망의 도시인 동시에 때로는 실패까지 안겨주는 이중성을 내포한 잔인한 얼굴이기도 하다. 그 서울의 문, 각기 다른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열려있는 그 길이 바로 서울역을 경계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역사의 굴곡과 함께 교통의 발달은 더 이상 서울역을 '서울의 관문'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게 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변화로 다가왔다. 서울역은 더 이상 서울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건너야 할 통과의례가 아닌 것이다. 고속도로가 열리고 지하 철도가 깔리면서, 점차 다양한 교통수단과 더불어 교통 인구가 분산됨에 따라 서울역은 그저 서울의 한 기차 정거장으로 내려앉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더욱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완행 기차나 열차 화물과는 이미 인연을 끊었거나 점차로 그 줄을 풀으려고 하는, 단지 서울의 특급 열차 정거장일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무작정 상경하는 일부 사람들의 활동 무대 역시 용산역이나 청량리역 주변으로 이동되었다.

 

남대문역이라는 이름으로 1905년 오늘의 자리에 선 서울역은 1910년 나라를 빼앗기면서 그 이름까지 '서울역'이라 변화되었으며, 1922년 독일인의 설계로 지금의 서울역으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한때 서울역을 만남의 장소로 여겨왔던 많은 그런 목적의 한정된 발길은 이제 더 이상 서울역에 닿지 않는다. 그것은 서울역이 그들을 거부했기 때문이 아니라 특급 열차를 탈 일이 생기지 않는, 그래서인지 어느새 서울역을 까맣게 잊고 지내기 때문일 것이다. 

 

내일을 향한 조용한 겨울나기

서울역은 단지 두 벌뿐인 정장을 갖고 있다. 매년 따뜻한 봄이 되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인파로 유난히 설레 하며, 그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다양한 관광상품을 선보이며 그 고조된 기분에 악센트를 가한다. 그것의 색깔은 아마도 무척이나 산뜻하게 보이는 파스텔톤의 꽃무늬 원피스일 것이다. 그리고 장마가 몰려오는 7~8월, 서울역은 조금은 지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안주하지도 못한 채, 긴 한숨만을 내쉬고 있는 듯하다. 일 년을 주기로 걸치게 되는 그 옷들은 그래서인지 그 긴 터울만큼이나 조금은 부담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역시 서울역이 가장 좋아하는, 그래서 매일 일정한 시간을 간격으로 갈아입는 옷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사연으로 인해 서울이라는 공간에 몰려든 마지막 발걸음들이 새벽 3시 27분의 막차에 실려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즈음, 그 잠시 동안의 정적을 채우기라도 하듯 4시의 지방 첫차는 이미 플랫폼에 도착해 있다. 그들은 방금 전의 사람들과는 또 다른 표정들이다. 아직 졸음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그들의 아침을 역무원에게 건네는 차표 한 장으로 보상받고자 한다. 그것은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아침이 있다는 것은, 그래서 매일 새벽 서울역의 표정은 왠지 상쾌한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하다. 

 

그 분주한 일상에도 불구하고 서울역은 종종 윈도쇼핑을 즐기기도 한다. 자신의 신분증을 제시하기라도 하듯 역무원의 시선에 맞춰 전해지는 기차표가 있는가 하면, 빳빳한 표를 부드럽게 꾸겨 무엇에 쓰기라도 할 것처럼 작은 뭉치가 된 표를 민망하듯 쏟아놓고 종종걸음을 치는 승객들도 있다. 그들과 동화되는 느낌만으로도 윈도쇼핑은 즐겁다. 하루를 단위로 마주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인상이 어떻게 그렇게 일관적으로 차이를 나타낼 수 있는지, 마치 신비한 나라에서의 작은 마술 같기만 할 때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정기적인 서울역의 취침 시간은 고작 2시간 30분에 불과하다. 하루 종일 그려놓은 3만 5천여 명의 발자취가 희미해질 무렵, 그들은 잠옷을 꺼낸다. 그러나 이미 오래된 습관으로 굳어진 작은 방해가 여전히 그들의 숙면을 위한 하나의 동반자로 나서고 있다. 역사의 굴곡이 펴지지 않은 그때에는 그 시절 저항자들의 은신처로, 불합리한 구조로 차마 마음대로 토해낼 수 없었던 울분을 감당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작은 호소의 마당으로 언제나 열려있던 이곳 서울역은 지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약 300~400여 명, 잠시 폐쇄공간이 되고자 하는 밤 12시 30분부터 서울역은 이들과의 한바탕 전쟁을 치르곤 한다. 다시 하루를 설계하는 새벽 3시까지, 단지 2시간 30분간의 여유마저 서울역은 마음대로 그 자유를 만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 역시 그것은 하나의 삶의 방식인 듯하다. 서로 부딪치며 호흡하는 것. 풋사람들의 일반적인 어울림을 잠시 보류한 채, 그들은 서울역이라는 거대한 따뜻함을 선택했던 것이다. 서로 다른 사연으로 잠시 집을 떠나 있는 그들. 그들은 매일 어디론가 떠나고 다시 도착하는 수많은 행로의 사람들 속에 파묻혀, 오늘 하루도 꿈을 꾼다.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자신들의 마음의 기차를 찾을 때까지. 그러한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서울역은 그들을 향해 아무런 말이 없다. 조용히 그들의 힘겨운 겨울나기가 끝날 때까지, 다만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1999년의 서울역은 여전히 열림만이 있되, 닫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작은 고집을, 나는 무척이나 바람이 매서운 날 사진기자의 렌즈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Vol. 55 MARCH 1999 IN Seoul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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