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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7

거침없이 네가 왔다

주말에 시골에 내려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아빠와 함께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했다.  가을인데 한동안 너무 따뜻했던 날씨. 계절의 감각을 잠시 잃어버렸던 날씨가 불현듯 정신이 든 듯, 요 며칠 제법 쌀쌀했다가는 조금 더 차가워졌다. 활짝 핀 꽃은 봄날의 전유물만은 아닌 듯. 가을에도 이렇게 고운 예쁨을 뽐낼 수 있다는 듯이 화단 곳곳에 단아함이 묻어났다.  그런데 너는 누구니.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화단에는 자산홍이라는 이름표가 세워져 있는데, 당신은 꼭 철쭉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 대답이 없다. 언제 피었는지 모를 이 친구 앞에서 나는 혼잣말로 되물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반갑다."라고 인사도 건넨다. 누가 지금 부른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외롭게 혼자 피어 있느라고 고..

시골길 단상: 이미 만들어 놓은 틀 속에 갇혀 너무나 편협하게

토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다른 때보다 더 서둘러 출발했는데, 시골로 내려가는 길은 너무나 많이 막혔다.  서다 가다를 반복하며 느림보 정체에 지쳐, 우리는 화성휴게소에서 커피 수혈을 받았다.  이 많은 차량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서해대교에 이르러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평상시에 걸리는 시간보다 배가 넘어, 시골에 내려가는 시간이 네 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빠가 계신 내포 신도시는 소나무 가로수가 참 멋스럽다고 느껴졌었는데,가을이 되어서야 길가의 은행나무도 눈에 띄었다.  이곳의 은행나무들은 이미 예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는데, 그동안은 왜 보지 못한 것일까. 나는 은행나무의 존재들조차 알지 못했었다.  순간, 나는 너무 놀랐다. 보고자 했던 것만을 보고 지내온 것은 아니었을까. 시야도..

홍성 남당항에서의 한가로운 오후, 해변을 따라 아빠와 함께 거닐며

지난 주말 시골에 내려가서 아빠와 함께 남당항에 바람을 쐬러 갔다. 남당항은 이번달 말까지 대하축제가 열리고 있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남당항은 바다 매립지에 대규모의 광장도 조성되어 음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해양분수공원도 인기가 많다.  우리들은 횟집 뒤편의 방파제 쪽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분수공원 광장 쪽보다는 한산한 분위기여서, 천천히 여유롭게 걷기에 참 좋았다. 물결 너머 죽도도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안면도까지 보일 만큼 날씨가 쾌청한 오후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양도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아빠 손을 잡고 남편과 함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즈음, 갑자기 주위가 소란해졌다. 여러 분의 경찰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는 곧 안내방송..

스며들면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스며드는 것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꿈틀거리다가 더 낮게더 바닥 쪽으로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버둥거리다가어찌할 수 없어서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한때의 어스름을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불 끄고 잘 시간이야  주말에 시골에 다녀왔다. 요란스럽게 비가 내린 다음날이라 그런지, 하늘색이 곱게 느껴졌다. 차 안에서 남편과 함께,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들은 좋은 기억과 그렇지 못한 기억들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그래서 결국 개개인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잔상들은 무엇일까?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내 이 괴로움을 알리, 홀로 고독한 나는 세상의 기쁨을 모르네..

엘렌 바스 중요한 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

중요한 것은엘렌 바스 삶을 사랑하는 것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을 때에도소중히 쥐고 있던 모든 것이불탄 종이처럼 손에서 바스러지고그 타고 남은 재로 목이 멜지라도 삶을 사랑하는 것슬픔이 당신과 함께 앉아서그 열대의 더위로 숨 막히게 하고공기를 물처럼 무겁게 해폐보다도 아가미로 숨 쉬는 것이더 나을 때에도 삶을 사랑하는 것슬픔이 마치 당신 몸의 일부인 양당신을 무겁게 할 때에도,아니, 그 이상으로 슬픔의 비대한 몸집이당신을 내리누를 때내 한 몸으로 이것을 어떻게 견뎌 내지,하고 생각하면서도 당신은 두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듯삶을 부여잡고매력적인 미소도, 매혹적인 눈빛도 없는그저 평범한 그 얼굴에게 말한다.그래, 너를 받아들일 거야.너를 다시 사랑할 거야.  주말에 시골에 다녀왔다. 시골로 내려가는 길, 하늘에..

아빠는 항상 오늘이 제일 행복하다는 말씀을 하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남편이 시골에 내려가자고 했다. 나는 사실 얼마 전에 다녀왔고, 또 다음 주에 60여 명이 모이는 시댁모임이 수덕사 근처에서 있어, 그때 겸사겸사 아빠를 뵙고 올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에 남편이 일이 많아 늦은 밤에 퇴근하고, 월요일에 출장이 잡혀 있어 이번주는 집에서 푹 쉬게 할 마음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아빠께 전화를 드리니, 아마도 이번주에는 오빠들이 모두 바빠서 내려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렇다면 빨리 내려가야지, 하는 생각에 밑반찬을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차는 그리 많이 막히지 않았다. 아빠댁의 현관문에 들어서니, 엉~~~ 작은오빠 얼굴이 보였다. "바쁜데 어떻게 내려왔어?" 하는 내 말에,..

마거릿 생스터, 하지 않은 죄

하지 않은 죄 당신이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일이 문제다. 해 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잊어버린 부드러운 말 쓰지 않은 편지 보내지 않은 꽃 밤에 당신을 따라다니는 환영들이 그것이다. 당신이 치워 줄 수도 있었던 형제의 길에 놓인 돌 너무 바빠서 해 주지 못한 힘을 북돋아 주는 몇 마디 조언 당신 자신의 문제를 걱정하느라 시간이 없었거나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사랑이 담긴 손길 마음을 어루만지는 다정한 말투. 인생은 너무 짧고 슬픔은 모두 너무 크다. 너무 늦게까지 미루는 우리의 느린 연민을 눈감아 주기에는. 당신이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일이 문제다. 해 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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