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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클래식계의 영원한 스승, 피아니스트 정진우

난짬뽕 2021. 3. 25.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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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정진우 서울대 명예 교수님을 찾아뵙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포근한 미소와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시는 말씀들은 마치 어린 시절 할아버지 곁에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았습니다. 음악을 좋아했지만 의사가 되었고, 그러나 다시 피아노 앞으로 돌아온 그는 한국 피아노 역사의 주인공이십니다.

 

 

 

한국 클래식계의 영원한 스승

피아니스트 정진우

 

 

한국 피아노 역사의 중심에서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친 피아니스트 정진우 서울대 명예교수. 많은 연주가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아준 거장의 지나온 삶을 되새겨본다.

글 엄익순 

 

 

음악의 별들, 스승을 기리다

지난 8월 수원의 '경기도 문화의전당'에서 펼쳐진 <2013 피스 & 피아노 페스티벌>에서는 한국 클래식의 전설로 대변되는 피아니스트 정진우 서울대 명예교수의 삶을 재조명하는 특별한 무대가 마련되어 화제를 모았다.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그의 제자와 지인들이 함께 모여, 마치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를 보듯 생생한 감동이 전해지는 오마주 콘서트를 마련한 것이다.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진정한 교육자이기도 했던 정진우의 음악 인생과 삶, 그리고 그를 둘러싼 한국 피아노 역사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무대에 올려졌다. 네 명의 피아니스트가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한 베토벤 심포니 5번 1악장은 마치 정진우가 그동안 걸어온 음악적 발자취를 보여주는 듯했다. 또한 바리톤 오현명과 짝을 이뤄 한국 가곡을 발굴하여 개척한 뜻을 기려 바리톤 박흥우가 '청산에 살리라'를 불렀고 그가 국내 최초로 실내악 트리오를 결성했던 일을 기리기 위해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3중주 가단조,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1악장이 연주되었다. 

 

사진 이준용

 

"내가 운이 좋았던 것 같아. 좋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나 역시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노력했지만, 학생들이 열심히 따라줬고 스스로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다들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어."

 

30여 년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연주가들을 키워낸 교육자이기도 했던 정진우. 전국의 여느 음악대학을 가도 이 거장의 제자가 아닌 교수들이 없을 만큼 우수한 인재들을 길러냈다. 제1호 제자인 김석을 비롯하여 신수정, 이방숙, 박은희, 강충모, 김영호, 김용배, 백해선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는 팔순 중반의 나이에도 서울에서는 물론 지방에서 열리는 제자들의 연주회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아무리 바쁜 일정이 생겨도, 가장 우선순위는 제자들의 무대를 함께하는 것. 

 

"당연히 가야지. 그렇게 애써서 준비한 무대인데, 청중들이 함께해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래도 내가 가서 들어주면 더 좋지. 그래야 나중에 격려해줄 수 있고, 참고의 말도 전해줄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충고도 하고. 되도록 꼭 참석하려고 해. 제자들도 무대에 서면 내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바로 눈에 띈다네. 하하."

 

1988년 그의 제자들은 정진우 교수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피아노의 대향연'을 연출했었다. 18대의 그랜드 피아노를 무대에 올려, 피아노 한 대에 두 명씩 모두 36명의 제자들이 어우러져 연주하는 모습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의사가 아닌 음악인의 길을 걷다

다섯 살 무렵 집안에 있던 풍금을 만지며 건반악기와의 인연을 맺은 정진우는 일곱 살에 일본인 선생으로부터 정식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된다. 그 당시 피아노를 통하여 최고의 행복을 느꼈던 그는 '바이엘'이나 '체르니 30' 같은 책들을 두어 달 만에 끝낼 만큼,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평생 음악을 벗 삼고 싶었던 그의 소망과는 달리 아버지의 반대로 의대에 진학하게 된다. 의대에 다니면서도 그는 교회 반주를 도맡아 하며 피아노 연주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대학 2학년 때 서울합창단의 연주회 전날 갑작스럽게 반주를 맡게 되는 기회가 찾아온다. 그때 정진우는 단 몇 번의 연습만으로 순조롭게 음악회를 치르게 되어 화제를 모았고, 그 이후 계속 연주 무대에 서게 된다. 

 

사진 이준용

 

그는 언젠가는 음악가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당시 유명했던 이애내 선생을 사사했다. 의대를 마치고 내과의사였던 정진우가 피아니스트의 길로 가게 된 것은 6.25 전쟁 중의 일이다. 당시 강원도 최전선 전투지대에 군의관으로 파견된 그는 중공군에 밀려 가까스로 구출되어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양 발가락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육군병원에 있을 때, 이애내 선생님의 남편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안병소 선생님께서 찾아오셨지. 부상으로 인해 절망을 느끼던 나에게 그분은 '나는 다리 때문에 절망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음악 때문에는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왜냐하면 나에게는 음악으로 인한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도 비관할 필요가 없다. 너에게도 음악이 있지 않느냐'라며 용기를 주셨어. 그분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하셨거든. 그리고 다시 병원에 찾아오셨을 때에는 바흐와 베토벤, 리스트, 쇼팽 등의 곡이 적힌 독주회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오셨지."

 

퇴원하자마자 정진우는 부산의 이화여대 강당에서 첫 독주회를 열었다. 1952년 11월 15일, 강당에 들어온 사람보다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강당의 모든 문을 열어둔 채 연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난 2012년은 정진우 명예교수의 독주회 데뷔 60주년이기도 했다. 그의 연습실에는 세 대의 그랜드 피아노가 오래된 벗처럼 자리해 있었다. 피아노 위에는 삼삼오오 각기 다른 인형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 손녀들이 어렸을 때 갖고 놀았던 인형들인데, 이제는 그의 연주를 감상하는 청중들이 되었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마지막으로 발표회나 한 번 할 수 있으면 좋고. 그렇지만 독주회를 준비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매일 5시간 이상씩 1년쯤 연습해야 연주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열심히 작품을 외웠는데도 금세 까먹게 되고. 그래도 한 번 하게 된다면 좋고."

 

피아노 앞에 앉은 그가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연주했다. 눈을 지긋하게 감은 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연주하는 그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했다. 그에게 있어 쇼팽은 여전히 친구 같은 다정함이 느껴지고, 베토벤에게는 항상 고개가 숙여지는 존경심이 생기고, 모차르트는 왠지 모를 정감이 간다고 한다. 

 

"루빈슈타인이 그랬지.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자신이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평론가들이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관객이 안다고. 늘 그 자리에 머물지 말고, 조금이라도 발전하는 생활을 하도록 노력했으면 해.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나아져야 되고, 또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지고. 매일 한 걸음씩 더 전진해야 되는 것이 연주가의 길이라고 치면, 참으로 음악은 까다로운 공부지. 연습을 게을리하면 손이 이상해지고, 그걸 회복하려면 또 며칠이 걸리고. 연주라는 것은 1회 승부이기 때문에 나쁜 인상을 주면 그것을 회복하는 데에 많이 힘들어. 작년에 저 사람 연주를 들었더니 별로더라, 하지만 피아니스트가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 해에 훌륭하게 연주를 했어도, 그 연주회에 작년에 왔던 사람들이 온다는 보장이 없잖아. 다시 들어줘야 평가가 바뀌는데. 그래서 실수하면 안 되고, 매일매일 연습해야 되는 거야."

 

제자에 대한 이해, 레슨의 첫걸음

젊은 시절, 수많은 피아노 작품들을 국내 초연하고 독주뿐만 아니라 협연과 앙상블, 반주 등 여러 방면에서 연주에 집중했던 정진우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한국의 클래식 음악을 이끌어갈 나무들을 키워보자'는 현제명의 간곡한 부름에, 망설임 없이 귀국길에 오른다. 

 

책으로도 정진우 명예교수의 음악인생을 만나볼 수 있다

 

"나라를 위해 뭘 하더라도 이바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 우리나라 음악교육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감사한 것이지."

 

귀국 후 서울대 음대 기악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1993년 2월 정년 퇴임을 하기까지 후학 지도에 심혈을 기울인다. 정진우 명예교수는 언제나 인간적인 따스함과 음악의 근본적인 모습이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늘 환한 웃음과 따뜻한 언행으로 제자들을 감싸주기도 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가장 먼저 지녀야 할 것은 바로 자신의 학생을 이해하는 거야. 그 학생의 성격이 어떠한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해. 그것이 테크닉적인 완벽함을 가르치는 것보다 먼저야. 진정한 음악은 바로 감동의 표현이거든. 특히 우리나라 학생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재주를 타고났다는 거야. 반면에 꾸준함이 조금 약하지. 독일이나 일본의 연주가들에 비해서. 재주가 있으니까, 무조건 테크닉만을 강조하여 연습을 시키면 얼마 가지 못해 싫증을 낼 수밖에 없어.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이 연주할 곡에 대해 직접 느끼게 하는 것이 좋아. 스스로 음악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깨닫도록 하는 것이지. 그러면 자신 스스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깨닫게 돼. 그러다 보면 공부가 재미있어지고,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연습해야겠다는 욕구가 생기게 되고.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을 이해한다는 거야."

 

국내외의 유수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한국 음악계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 공헌한 정진우는 한국쇼팽협회와 한국베토벤협회를 창립하여 우리나라 음악가들의 국제적인 교류의 폭을 넓히는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연주가로서, 그리고 교육가로서 한평생을 음악과 함께 걸어온 정진우 교수. 그가 제자들에게 쏟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이어받아, 이제는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어갈 인재들을 위해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음악과 음악인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피아니스트 정진우의 삶. 그는 한국 피아노계의 영원한 스승으로 언제까지나 빛날 것이다. 

Vol. 73 SEPTEMBER 2013 Music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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