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시대와 함께 걸어가다, 작곡가 류재준

난짬뽕 2021. 3. 3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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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류재준은 평생 5명의 제자만을 둔 현대음악의 거장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인정한 후계자입니다. 스승은 그에게 늘 '사람을 보라'는 말씀을 했다고 합니다. 친일파 음악인 이름으로 상을 받기 싫다는 이유로 난파음악상 수상을 거부했고, 세월의 애잔한 흐름을 음악으로 그려내며 시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4년 유중아트센터에서 만났던 작곡가 류재준의 이야기입니다. 

 

 

 

음악의 본질,

시대와 함께 걸어가다

작곡가 류재준

 

 

진정한 예술가는 시대를 표상해야 한다고, 류재준은 말한다. 그것이 바로 작곡가의 권리인 동시에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고도 덧붙인다. 음악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글 엄익순

 

 

봄날의 즐거운 축제를 펼치다

'어느 화창한 봄날에'라는 이름으로, <2014 카잘스 페스티벌 인 코리아>가 3월 14일부터 23일까지 서울을 비롯하여 광주, 부산, 대전에서 개최된다. 평화와 화합, 자유를 슬로건으로 내건 62년 전통의 프랑스 카잘스 페스티벌이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Division Festival을 개최하기로 한 후 2011년 첫 공연을 시작으로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한다.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프랑스 프라드에서 유명 연주자들과 함께 스페인을 돕는 기금 마련 콘서트를 한 것이 발단이 되어 세계적인 실내악 음악축제로 자리한 카잘스 페스티벌. 이번 공연에는 미셸 레티엑(클라리넷)과 크리스티안 알텐부르거(바이올린)를 비롯하여 아브리 레비탄(비올라), 아르토 노라스(첼로), 랄프 고토니(피아노), 백주영(바이올린), 한문경(타악기), 김규연(피아노), 백나영(첼로), 이석준(호른), 성민제(더블베이스) 등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참여한다. 작곡가 류재준은 이번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기획에서부터 진행까지 모든 과정을 구성하고 지휘하게 되었다. 그가 이번 공연에서 지향하고자 하는 점은 무엇일까. 

 

사진 이준용

 

"우선 즐거운 축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더 나아가서 단순하게 음악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과의 문화적인 교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페스티벌에 해외의 대가들이 많이 오는데, 그분들은 자기들의 페스티벌을 갖고 계시고 또한 국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시는 분들이거든요. 그분들과 우리나라의 실력 있는 젊은 연주자들이 연계되어 활동하고, 더 나아가 해외 무대에 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같이 연주 한 번 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고,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또한 새로운 청중들을 모색하는 것도 한 가지 바람이고요. 그래서 광주와 부산, 대전 투어를 통해 지방으로 직접 찾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페스티벌에서 돋보이는 것은 바로 '어린이를 위한 콘서트'가 계획된 점이다. 

 

"사실 해외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 질적인 측면에서 매우 수준이 높아요. 훌륭한 대가들이 아이들과 협주를 하고, 무대 위에서 함께 놀아주기도 하죠. 또 유명한 배우들이 음악회 해설을 해주기도 하고요. 저는 그 누구보다도 아이들한테 가장 좋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에 당장 클래식에 지대한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10년 후 혹은 30년 후에 지난날을 추억했을 때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좋은 자양분을 얻을 수 있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거든요. 꼭 어른이 되어서 클래식 음악을 지독히 좋아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그래서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회는 그들을 위한 작은 선물 같은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시대를 표상하다

작곡가 류재준은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전문적인 음악 공부를 해보지 못했다고 한다. 공부를 잘해 법대에 진학하기를 바라는 부모님께 그는 음악의 길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말씀드린다. 그때가 입시를 1년 앞둔 고3 때였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가와 크라쿠프 음악원을 졸업했으며, 두 학교에서 한국과 폴란드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강석희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를 사사하였다. 그는 평생 5명의 제자만을 둔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인정한 후계자이다. 한국에서 현대음악 공부를 시작한 그는 펜데레츠키의 작품을 듣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폴란드로 건너가 스승의 집을 찾아간다.

 

 

류재준이 쓴 악보를 훑어보던 스승이 그에게 건넨 첫마디는 "너처럼 곡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이탈리아에만 오백 명이 넘는다!"였다. 그리고는 대위법(서양음악의 기본적인 원리로, 독립성이 강한 복수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기법)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류재준의 설명을 들은 스승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 배우는 것이 낫겠다."라는 말을 했고, 그날 집으로 돌아온 류재준은 1년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한 후 다시 스승을 찾아갔으나 또다시 대위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너는 음악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후 공부에 몰두하던 류재준은 1년 후에 스승의 집을 다시 찾고 똑같은 질문을 받지만, 음악가고 뭐든 간에 인간으로서 문제가 있다는 혹독한 말만 듣게 된다. 집에 돌아와서도 눈물만 흘리던 류재준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스승의 집에 전화를 건다. 그때 시각이 새벽 4시. 펜데레츠키는 전화를 받자마자 다시 대위법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류재준의 대답은 단 한마디. "대위법은 대화"라고 말을 하자, 스승은 곧바로 여권을 가지고 공항으로 6시 30분까지 오라는 말을 했다. 그날부터 펜데레츠키는 모든 비행기 요금과 호텔비까지 지원해주며 음악여행에 류재준과 함께 전 세계를 동행했다. 

 

스승은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음악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 음악은 지식이나 논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진정으로 음악을 하고 싶다면, 마음과 가슴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작곡은 절대로 가르쳐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다. 다만 내가 너를 데리고 다니면서 나의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내가 하는 일을 그대로 보여주겠다. 너는 나를 배우면 안 된다.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고, 2년 후 류재준에게 이제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위해 당당히 걸어가라고 조언한다. 펜데레츠키는 류재준에게 작곡법에 대해 가르쳐주기보다는 영감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스스로 작곡하도록 이끌어 주었던 것이다. 

 

현재 류재준은 2019년까지 완성해야 할 작품들이 밀려 있다. 하루 24시간을 꼬박 채워도 시간이 부족할 만큼 작업해야 할 곡들이 많다. 한 해 동안 그의 작품이 연주되는 음악회만 100번이 넘을 만큼,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가 되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그것을 음악으로 구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예술가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의 부조리를 알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야 하며, 더 나아가 그들의 음악을 통해 행복해지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래서인지 류재준의 음악은 언제나 한 가지씩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2011년에 발표된 '첼로 소나타'는 전쟁이 휩쓸고 간 마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아름답고도 애잔한 이야기들을 그려내고 있고, 2014년 9월 무대에 올려지는 'Magnificat'는 '용산의 희생자를 위한 애가'라는 부재가 붙은 작품이기도 하다. 

 

 

다음 세대에게 음악의 문을 열어주고 싶다

류재준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연주된 곡은 아마도 오페라 '장미의 이름'일 것이다. 웅장하면서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대중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또한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성을 들인 '진혼교향곡'을 비롯하여 마림바와 현악사중주를 위한 5중주, 첼로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등 그의 작품들은 모두 즐겁게,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이다. 현대음악이라고 해서 난해한 기교로 치장한 음악이 아니다. 

 

사진 이준용

 

"음악이라는 것이 단어로써 뜻을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제가 바라는 것은 저의 음악을 듣고 좋은 의미든, 혹은 그렇지 않든 간에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작곡가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이 그에게 조언을 듣기 위해 찾아왔었다고 한다. 그들은 좋은 곡을 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심지어는 작곡에 관한 공식(?)을 알려달라고 말했단다. 류재준은 그들에게 먼저 많은 작곡가의 음악을 듣고, 악보도 많이 보라는 말을 전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잘 살기 위해서 음악을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굳이 음악가가 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으니까요. 어떤 이유를 충족하기 위해서 음악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결정입니다."

 

훌륭한 음악가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보다는 성실함이 우선이라고 한다. 단호한 결의와 참을성, 그리고 용기. 만약 이 세 가지가 없다면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할지라도, 지금이라도 과감히 그만두라고 충고한다. 

 

"요즘에는 어린 연주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너무 안타까운 것이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죽을힘을 다해 연습해서 유명한 대학을 나왔고, 세계적인 콩쿠르에 입상해서 교수까지 됐는데도 한결같이 지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말하더라고요. 왜 그럴까요? 사실, 음악 하는 사람은 광대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현재 그는 폴란드 고주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 작곡가로도 활동 중이며, 특히 2009년부터 앙상블 오푸스를 결성하여 이끌고 있는데, 오푸스는 완벽하지 않으면 무대에 오르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3년 제46대 난파음악상 수상을 거부했던 류재준. 그것은 친일파 음악인 이름으로 상을 받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로 인해 우리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작곡가는 작품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고, 음악가는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류재준은 몸소 보여주었다. 세월을 넘어 오래 간직되는 음악은 그 시대를 담고 있었다. 작곡가 류재준이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Vol. 79 MARCH 2014 Music Friends

 

 

 

카잘스 페스티벌이 한국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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