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저에게 단 몇 곳의 연주회에만 갈 수 있다면 어떤 음악가를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몇 명의 음악가 안에 단연코 피아니스트 박종화를 고집할 것입니다. 그는 피아노 앞에서 연주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영혼을 흔들 만큼의 속삭임으로 마음을 사로잡았을 뿐입니다. 2012년 10월 서울대 교정에서 만난 박종화 피아노 연주가입니다.
무언의 속삭임, 음악이 되어
영혼을 흔들다
피아니스트 박종화
'천둥같이 나타난 한국의 젊은 천재'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계무대를 누비던 젊은 거장, 피아니스트 박종화가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지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5세 때 일본 도쿄 음악대학 영재학교 수석 입학을 시작으로 미국과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 주목받아온 그는 고국의 음악계 후배들을 위해 꼭 해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가 뿌리고자 했던 작은 씨앗, 한국인 음악가로서 소망하는 작은 꿈이 있다.
글 엄익순
멘토가 되어 길을 닦다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아주 크게 아쉬웠던 점이 있었어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각국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나름 운 좋게 도움도 많이 받아 별다른 불편한 점은 없었어요. 그런데 주변의 유대인들이나 러시아 친구들, 중국 사람들을 보면서 한 가지 부러웠던 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해외에 나와 있는 음악인들끼리 서로 도움을 많이 주고받거든요. 예를 들면 비슷한 또래끼리 정보를 교환한다거나, 또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고 영향력이 있는 분들로부터 생생한 조언을 얻기도 하죠. 전자가 수평적인 활동이라고 본다면, 후자는 수직적인 도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한국인 같은 경우에는 수평적인 활동은 어느 정도 활성화된 반면에, 수직적인 도움은 거의 구축되어 있지 못한 것 같아요. 그것이 참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다섯 살이 되던 해, 일본 도쿄 음악대학 영재학교에서 시작된 그의 유학 생활은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과 스페인 마드리드의 소피아 왕립 음악원, 독일 뮌헨 음대의 초청을 받아 학업을 이어가게 된다. 12세 때 일본 마이니치 음악 콩쿠르 1위를 비롯하여 2003년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입상 및 부조니 상 수상, 2005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입상 및 최우수 연주자 상, 특히 비평가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전 세계 음악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1998년 텔아비브에서 개최된 루빈슈타인 콩쿠르 특별상과 스페인 산탄데르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는 특별상과 청중상을 동시에 받으며 탁월한 연주 실력을 인정받았다. 유럽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는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뮌헨 헤르쿨레스 홀, 마드리드 국립 콘서트 홀, 브뤼셀 팔레드보자르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장을 무대로 연주하였으며,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인 보스턴 심포니와 뉴햄프셔 심포니, 드레스덴 심포니,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 북네덜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며 연주 경력 또한 화려하게 꽃 피웠다. 그렇게 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박종화가 2007년 서른세 살의 나이로 한국에 돌아왔다.
"연주활동에 대한 제약이 있을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해외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들이 거리상 문제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요즘에는 한국에 베이스를 두고 국제적으로 연주활동을 하더라도 크게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못하는 시대가 온 듯싶어요. 저는 거의 30여 년 동안을 외국에서 지내왔는데,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베이스를 둔 아티스트로서 우리나라 청중들한테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해외 무대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그 길을 개척하여 음악계 후배들한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더 넓은 세계무대에서 꿈을 펼치고자 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저의 경험들이 수평적 · 수직적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음 세대의 음악인들이 해외에서 활동할 때에는 지금보다 더 잘 닦인 길로 갈 수 있도록 제 자신부터 그들의 따뜻한 멘토가 되려고요. 그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자 합니다."
음악교육, 교육자의 역할이 크다
기타를 치시면서 노래를 즐겨 부르셨던 아버지와 피아노 연주를 자주 들려주셨던 어머니 곁에서 자연스레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피아노를 장난감처럼 대하다가 3세 때 취미로 레슨을 받게 되었는데, 그때 이미 탁월한 음악적 재능이 발견되었다고.
"예체능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빼어난 실력을 갖춘 연주자들을 살펴보면, 여러 악기를 접하다가 십 대 중반에 피아노를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도 있고 그보다 더 늦게 피아노를 시작했는데도 후에 아주 훌륭한 음악가가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20세기에 콩쿠르가 많아지는 바람에 테크니컬 한 완벽함이 중요시된 것이 사실이죠. 피아노 연주에 있어 테크닉은 아무 저항 없이 자신 안에서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말하는데, 조기교육의 위험성은 음악적 배경이나 문화, 교양에 대한 이해 없이 오직 테크닉만 습득시키는 데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콩쿠르에서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아주 인상적이죠. 날렵하게 돌아가는 손가락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탄성을 지르게 돼요. 그런데 그렇게 완벽하게 연주했던 피아티스트들 중에서 10년, 20년 후를 지켜봤을 때 누가 과연 대가로 남는지 살펴보면 이름도 없이 사라진 연주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조기교육을 통해 영재를 발굴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 오직 콩쿠르에만 집중되다 보면, 아무리 재능이 잠재되어 있는 영재들이라 할지라도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피아노와 음악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깊게 파고들면서 자신이 음악을 통해서 무엇을 원하고 갈증을 느끼는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고민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자의 역할과 책임이 가장 크죠. 특히 음악에 집중해야 된다고 다른 학문에 대한 책도 읽지 않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설사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되었을지라도 음악을 통해서 사회와 융합되고자 하는 도구는 하나도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악과 더불어 다른 분야에 대한 탐색과 사회,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학습이 꼭 필요합니다. "
현재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인 박종화는 한국의 학생들이 조금 더 창의적인 사고를 통해 개개인이 자신들 나름대로의 견해를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옳다, 그르다' 혹은 'Yes, No'라는 대답 대신에, '이렇기 때문에 그것은 옳지 않다고 믿습니다' 혹은 '책에서는 그렇게 설명되어 있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라며 자신의 생각을 설명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더 깊이 공부하고, 자신의 결정이 미흡했을 경우에는 가감 없이 자신에게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깨우는 것이 학생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강조한다.
음악 새싹들을 위한 나침반
한창 무엇이든 도전해보고 싶은 시기인 20대에 박종화 역시 오랫동안 자신의 길이라 여겼던 음악에 대해 '내가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쉼 없이 피아노와 함께했던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며,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한 것인가', '사회를 위해 나의 음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 힘이 된 것은 오로지 자신의 연주를 아껴주고 격려해주던 청중들이었다.
"무대를 통해 제가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음악의 기쁨이나 영감 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박종화의 콘서트에 가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브랜드 네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올가을, 박종화는 자신의 연주를 아껴주는 팬들에게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국내 첫 앨범인 <HEROES>를 선보인다. 무소르그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통해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삶에 대한 힘을 얻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어마어마한 상상력이 들어 있고, 전설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곡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앨범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앨범 발매 기념으로 전국 투어 리사이틀도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대전, 광주, 대구에서 펼친다. <Un-plugged / 다시, 날다>라는 리사이틀 제목이 인상적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6살 때부터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사고방식이나 철학 등을 서양 학문으로 교육받았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니 한국인인데 외국인 같은 갈등이 느껴지는 거예요. 언어는 물론 생활습관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서울에 온 지 5년 동안 저는 우리 문화를 통해 개인적으로 뿌리를 찾는 과정을 겪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는 제 자신을 찾는 과정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은 것 같아 기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다시 100% 음악에 집중해야겠다는 각오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어요. 돌이켜보면, 2007년에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한 것이 참으로 옳은 결정이었다고 봐요. 만약 지금까지 계속 외국에 있었으면, 저는 뿌리를 찾지 못한 채 기거나 걷는 경험이 없이 붕붕 떠 있는 속이 텅 빈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거든요."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음악가나 피아니스트에 대해서 경쟁심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무대 위에 올라가 연주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호된 연습과정을 거치는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다른 연주자들에 대해서 평가를 하거나 비교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종화는 오늘도 피아노 앞에서 하루의 시작을 그린다. 피아노와 함께하는 시간이 그에게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명상과도 같다고 한다. 음악과 피아노를 통해 자신의 삶과 인생을 노래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박종화. 그의 무언의 속삭임이 음악으로 승화되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풍요롭게 해 주고, 더 나아가 자신의 소망대로 내일을 이끌어갈 우리나라의 음악 새싹들이 험난한 항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나침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Vol. 63 NOVEMBER 2012 Music Friends
내 마음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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