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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의 울림이 그려내는 새로운 미래,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난짬뽕 2021. 3. 1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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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과의 만남은 2013년 트리오 제이드와의 인터뷰 이후 일 년 만에 다시 이루어졌습니다. 8월의 선유도공원에서 사진 촬영이 이뤄졌는데요. 연주회가 끝나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돌아가지 않고 그녀와의 짧은 만남을 기대하며 로비에 모여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지윤이 연주하면, 그것은 곧 박지윤의 음악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의 바이올린 선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언제나 깊이 있는 울림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2018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악장으로 선임된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을 만나봅니다.

 

 

선율의 울림이 그려내는 새로운 미래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의 음악은 그녀와 닮아 있다. 섬세한 부드러움 속에서 힘이 넘치는 강렬함이 느껴지는가 하면, 애잔한 감성이 흐르는 가운데 햇살 같은 싱그러운 미소가 비치기도 한다. 무대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연주 안으로 끌어들이는 그 깊은 매력을 만나본다.

글 엄익순

 

 

음악이 건네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몇 년 전 프랑스 어느 시골에서의 연주회 때였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온 왕벌 한 마리가 연주에 집중하고 있는 박지윤의 얼굴과 손가락 주위를 윙윙 맴돌았다. 무대 가까이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청중들은 연주자가 혹시나 벌에 쏘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움이 가득했다. 가슴이 떨려오는 그 순간, 박지윤은 두 눈을 감고 오히려 음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 후 연주가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바이올린 선 사이에 끼어 있는 그 왕벌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런 예고 없이 마주치는 곤란한 상황은 이탈리아 공연에서도 생겼다. 연주 당일까지 공항에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 결국 공연 시작 5분 전에 가방을 받아 급하게 드레스로 갈아입고 무대로 달려 나갔다. 

 

사진 이준용

 

"제가 높은 곳에서 줄을 타보지는 않았지만, 무대에 올라가 바이올린에 나를 실어낸다는 것은 바로 그것과 많이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관객들이 바로 느낄 수 있거든요. 또한 적당한 긴장감은 좋은 연주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당황스러운 일이 생길 때에도 평소에 갖고 있는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고 매번 연주에 몰두한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말이에요. 그렇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모든 상황을 마주하여 최선의 노력을 바치고, 기도하고, 극복하는 것, 그 여정이 인생의 매력이자 본질이라고 받아들여요."

 

박지윤은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밝은 성격의 연주자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겁먹지 않는 용기가 내재되어 있다. 끊이지 않는 공연 일정으로 인해 지칠 때나, 혹은 잘 풀리지 않는 연습과정에 있어서도 그녀는 항상 자신을 향해 말을 건다. '잘할 수 있어. 정말로 지금 잘하고 있단다.'라는 속삭임.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어려움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두 배로 쌓이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무대에서의 박지윤의 모습은 늘 당당하며, 그 연주 또한 자신감이 넘친다. 

 

연주가로서의 즐거움을 지금에서야 느끼다

"음악은 연주자의 성격과 경험을 토대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여행을 하면서 기존과는 다른 분위기와 색다른 문화를 만나기도 하고, 책을 통해서 지금까지 잘 모르고 있었던 세계를 배울 수도 있게 되고요. 또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음악적인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봐요."

 

사진 이준용

 

네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이미 국내 유수의 콩쿠르를 휩쓸던 박지윤은 예원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0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그 이듬해에 프랑스의 젊은 연주자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음악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파리 고등국립음악원에 심사위원 만장일치 우등 입학에 이어 우등졸업을 하였고, 실내악 전문사과정 및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친 후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서 수학하였다. 익히 국내에서 1994년 한국일보 콩쿠르 대상과 1996년 조선일보 콩쿠르 1위를 차지한 그녀는 2004년 티보 바르가 국제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1위 및 청중상을 석권하였으며, 2005년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4위 입상 및 모차르트 특별상을, 그리고 2009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도 또다시 입상한다. 현재 서부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문 악단 프랑스 페이 드 라 루아르 국립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동하며 실내악 및 독주자로서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의 음악적 색채는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활동하기 전과 그 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교향악단에서의 연주는 제가 음악인으로서 좀 더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사실 그전까지 저는 학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많은 콩쿠르에서 상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죠. 늘 그러한 눈에 보이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2011년부터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면서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음악의 깊이와 재미를 알게 되었고, 음악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연주를 하는 것이 매번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특히 다양한 작품 세계를 접하다 보니 항상 공부도 많이 해야만 하고, 그 레퍼토리를 완벽하게 표현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죠.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 성숙해졌고, 시야가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음악학원에 갔던 그녀는 피아노 위에 놓인 조그마한 크기의 악기에 눈길이 갔다. 네 살 무렵, 그렇게 바이올린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박지윤은 2009년부터 'Foundation Banque Populaire'에서 연주활동 후원금 수혜자로 선정되었으며, 2010년부터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에서 1717년 산 피에트로 콰르네리, 만투아를 지원받아 연주하고 있다. 

 

나만의 음악을 조금씩 꺼내다

박지윤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오케스트라와도 자주 협연 무대를 갖는다. 2014년에는 여덟 번의 차이콥스키 콘체르토 협연이 진행된다고 한다. 

 

사진 이준용

 

"요즈음 저의 가장 큰 음악적 고민은 전달력과 설득력이 높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어떤 연주를 듣다 보면 제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분야의 음악과는 정반대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자꾸 끌리는 연주가 있거든요. 저는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생활하다 보니, 한동안 프랑스 음악에 푹 빠져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무대에서 소개해 드리고 싶은 프랑스 음악들이 아주 많은데요. 그러나 연주자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아 프랑스 음악에 대한 연주는 당분간 미뤄두는 것이 어떨까 싶어요. 나중에 프랑스 음악으로 관객분들을 만나게 된다면, 한국에서 잘 연주되지는 않지만 한 번만 들어도 무척이나 좋아하실 곡들로 선보이고 싶습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연주자는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인 크리스티앙 페라스인데요. 그는 안타깝게 한창 활동할 시기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의 모든 연주가 훌륭하지만, 특히 시벨리우스 콘체르토 2악장은 심금을 울리는 그만의 비브라토와 바이올린 선율이 음악을 듣는 사람을 한순간에 빠져들게 한답니다. 저는 제가 연주해야 되는 작품이 들어있는 음반은 잘 듣지 않아요. 그 이유는 다른 연주자의 영향을 받지 않고, 철저하게 저만의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서죠. 그러나 페라스의 음반은 예외예요. 제가 좋아하고, 배우고 싶고, 앞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적 색채를 그의 연주를 통해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수영을 즐기지만 바다보다는 산을 더 좋아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요리를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산책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박지윤. 그녀는 세계가 인정한 바이올린 솔리스트로서, 그리고 왕성한 활동을 선보이는 프랑스 페이 드 라 루아르 국립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서,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실내악단으로 음악계의 찬사를 이끌어내고 있는 트리오 제이드의 멤버로서 앞으로도 그 균형을 유지하며 음악생활을 이어가고자 한다. 

 

항상 음악적 호기심이 많고, 음악 외적으로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언제나 음악 안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오케스트라에 입단하여 모든 것이 낯설었던 시기에 박지윤은 오히려 단원들에게 솔직하게 더 다가갔다. 방대한 레퍼토리를 소화해내기 위해 악기별 악보인 파트보뿐만 아니라 전체 악보인 총보까지 외우며 완벽한 준비를 하자, 모두들 그녀의 음악적 열정에 감탄했다. 또한 오케스트라 연주 시 부족한 부분이 느껴지면 언제든지 동료들에게 다가가 솔직하게 조언을 청하면서 오히려 단원들과 스스럼없이 속내까지 털어놓게 되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박지윤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꼈던 고난의 시기가 있었다. 연습은커녕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도 힘들 만큼 심했다고 한다. 잠시도 바이올린과 떨어지지 않았던 그녀는 악기를 놓고 여행을 떠난다. 어쩌면 다시는 연주를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지만, 치료를 받는 몇 달간 그녀는 오히려 그 순간들이 쉼 없이 달려왔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반추한다. 그러한 음악적 자양분이 쌓여 박지윤의 바이올린 선율은 더욱 감미롭게 다듬어졌다. 

 

박지윤은 2014년 7월 유럽의 레이블 DUX에서 유럽 전역을 무대로 유럽 데뷔 음반인 <바이올린 소나타>를 발매했다. 앨범에 소개된 곡은 레날도 안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C장조'를 비롯하여, 가브리엘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A장조, 작품 13', 그리고 한국 작곡가 이신우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시편 소나타' 등이 담겨 있다.

 

객석에서 바라보는 무대 위의 박지윤은 전혀 긴장된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지금에서야 음악의 재미가 느껴진다는 그녀의 말. 박지윤은 아마도 음악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선율의 울림이 그려낼 새로운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 박지윤의 바이올린 선율을 타고 만개한 음악의 향연에 초대한다. 

Vol. 85 SEPTEMBER 2014 Music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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