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목련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경희대 교정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임효선은 꾸밈이 없는 연주가였습니다. 치장을 하지 않은 진솔함 속에서 그녀만의 음악이 오롯이 느껴졌고, 그것은 진정성 있는 선택과 집중이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고, 큰 고비를 만났을 때에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현재에 충실했습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효선의 깊은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악을 통한 충실한 선택과 집중
피아니스트
임효선
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피아니스트 임효선이 2011년 국내에 터를 잡았다. 연주가로서의 행보뿐만 아니라, 후배들을 위해 대학에서 티칭을 하게 된 것이다. 언제나 음악 안에서 도전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피아니스트 임효선을 이 화사한 봄날의 캠퍼스에서 만났다.
글 엄익순
음악인으로서
나답게 생활하는 것에 대한 고민
어렸을 적 임효선이 품은 오직 하나의 큰 포부는 바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고,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 드디어 국제적인 콩쿠르에서 상을 받고, 해외 무대에서 실력 있는 연주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들어서면 다른 걱정은 없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인생은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시기나 나이에 따라서 새로운 목표를 만나게 되고, 마음속으로만 상상하던 그림을 현실에 옮기기 위해 방향을 조절해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피아니스트 임효선이 11년간 머물렀던 외국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이다.
"좋은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더불어 훌륭한 음악가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연주가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것 같아요. 솔로와 트리오 활동으로도 주목받고, 스페인 리세우 콘서바토리에서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기도 했죠. 그렇게 분주한 일상을 보내다가, 문득 음악인으로서의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된 거예요.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개척해 나아가야 할 부분들에 대해 고민해 보니 한국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 정말로 저답게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고 하여 임효선의 해외 활동 영역이 줄어든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2011년 9월에 입국한 이후에도 해마다 외국에서의 연주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한 해에 4~5개월은 해외에 머물러야 했다. 임효선은 경희대 음대 교수로서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또 하나의 행복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연주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해외 연주활동은 되도록 방학기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그 대신 요즘에는 국내 팬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크고 작은 연주회가 계획되어 있고, 특히 9월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곡가인 베토벤과 슈만의 작품으로 독주회를 펼칠 예정이다.
"해외와 국내에서의 연주활동, 또한 피아니스트와 교수로서의 활동 등 저와 관련된 모든 일들은 한결같이 음악이라는 영역 안에서 음악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러한 갖가지 항목들을 어떻게 연결하고 균형 있게 발전시켜 나갈지는 저의 몫이겠죠. 음악가로서의 임효선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음악적인 소통을 이어가는
메신저로서의 역할
"제가 연주를 할 때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염두에 두는 것은, 바로 '음악적인 소통'입니다. 연주가의 언어는 다름 아닌 음악작품이겠지요. 내가 이 곡을 통해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로 설득력 있게 전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인가를 전달해야 한다는 의미에 치우쳐서 너무 과장되게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고, 그렇다고 하여 지나치게 소심해져도 좋은 모습은 아니겠지요. 어떤 곡은 작곡가의 색깔이 더 진하게 묻어나는 작품일 수도 있고, 또 어느 정도 연주가의 해석이 다양화될 수 있는 작품도 있을 거예요. 중요한 것은 제가 작품과 청중 사이에서 음악을 어떤 색깔로 변형시켜 전해주는 역할을 할지 늘 고민에 빠집니다."
2007년 세계 3대 음악 콩쿠르의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에서 5위로 입상하며 세계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임효선. 그러나 이미 2003년 비오티 국제 콩쿠르에서 2, 3위 없는 1위와 특별상은 물론 청중상까지 동시에 수상하며 음악계의 관심을 받았다. 2005년에도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베토벤 비엔나 국제 콩쿠르에서의 입상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Op. 111로 후기 소나타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그 밖에도 로스앤젤레스의 KIMF 국제 콩쿠르를 비롯하여 오벌린 국제 콩쿠르와 주니어 쇼팽 콩쿠르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힐튼 헤드 콩쿠르에서는 특별상을 수상, TCU-클라이번 인스티튜트에서 열린 콘체르토 콩쿠르에서도 협연자로 발탁된 바 있다.
"도전을 할 때마다 항상 매번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에요. 다만 사람들은 상을 탄 것에 대해서만 더 많이 기억하기 때문에, 아마도 제가 콩쿠르에서 입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실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콩쿠르에 참가하여 세 번에 두 번 정도는 떨어진 것 같아요. 사실 특별상도 몇 번 받았는데, 그때마다 기분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에요. 1, 2, 3등 안에 들지는 못하지만 그냥 특별하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이 복잡할 때도 있었죠."
임효선이 피아노와 만난 것은 4세 무렵.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전주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선생님으로 알려진 고모를 통해, 그녀의 음악적 재능이 싹을 틔울 수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첫 번째 독주회 무대에 섰고, 고향인 전주에서 최고로 피아노를 잘 연주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서울예고에 입학했을 때에는 음악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 사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일반 중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평소에 친구들과 음악과 관련된 대화는 잘 나누지 못했는데, 예고에 진학하니 온통 음악만으로 둘러싸여 생활하게 되니 모든 일상이 즐거웠다.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로 유학을 왔지만, 그녀의 생활에 음악이 있어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임효선은 서울예고 재학 당시 최연소 나이로 동아콩쿠르에 입상하는 기록을 세웠고, 정기연주회 협연자로 발탁되어 서울예고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가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미국에서 열린 오벌린 주니어 콩쿠르에 나가 1등을 하기도 했다.
"그때 미국에서의 경험은 저에게 신세계처럼 느껴졌어요. 콩쿠르에 참가했던 여러 나라의 연주자들을 보면서, 저도 뭔가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된 거예요.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던 때입니다."
결국 임효선은 서울대 수시 수석입학 후 도미하여 세계 최고의 명문인 커티스 음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커티스의 총장인 게리 그라프만의 수제자로 그 능력을 인정받아 2003년에 커티스 음대의 피아노 부문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으로 발탁되어 페스토라치 프라이즈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는다.
현재를 발판으로 삼아
도약을 꿈꾸다
"커티스에서의 생활은 마치 스펀지처럼 흡수하기에만 바빴던 것 같아요. 워낙 실력이 좋은 학생들이 주변에 늘 있어 영향을 많이 받았죠. 특히 그라프만 선생님은 세 명의 제자를 두셨는데 제 바로 위 선배가 랑랑이었고, 후배가 유자왕이었어요. 유명한 사람 사이에 끼여 있다 보니 많은 것을 배우게 되더라고요. 미국에 있을 때에는 실내악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아직은 솔로에 집중하여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솔로로서 인정을 받아야 나중에 실내악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 이후 유럽에서 공부할 때에는 콩쿠르를 통해서 제 실력을 한 번 확인하고 싶었어요."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는 그녀에게 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리허설 때의 연주가 맘에 들지 않았던 임효선은 본선 전날까지도 연습에 몰입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저녁부터 시작된 연습.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본선 무대가 열리는 날 아침이었다. 밤을 꼬박 지새웠어도 긴장이 된 탓인지 전혀 피곤함도 느끼지 못하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5위로 입상했다. 임효선은 지금까지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연습을 하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자기 관리에 충실했으며, 늘 1~2년을 앞서 생각하며 자신이 해야 할 목표를 뚜렷하게 설정하고 그에 따른 세부사항들을 실천해 나갔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축복이겠죠. 운이 좋아 잘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고요. 생각해 보면, 저는 제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로서 교육자의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고, 국내 팬들에게 좋은 음악을 선사하는 동시에 해외 무대에서의 활동도 계속 이어갈 수 있어 정말로 행복합니다."
봄이 무르익는 5월에는 그녀가 활동하고 있는 '루드비히 트리오'를 국내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 스페인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고,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루드비히 트리오는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자인 Abel Tomas와 Amau Tomas가 형제이다. 그들은 카잘스 콰르텟으로 12년 넘게 활동하던 중 임효선의 연주에 매료되어 그녀에게 트리오 구성을 제안했다고 한다. 5년 전에 결성되어 해외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루드비히 트리오를 임효선은 국내 팬들에게 소개하고 싶었고, 이들 형제는 흔쾌히 한국에서의 연주를 반가워했다.
"무엇인가 큰 고비가 있을 때마다 오히려 좌절하기보다는 계속 노력해 보니 길이 열리더라고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에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현재에 충실했던 것 같아요. 그러한 자양분이 조금씩 쌓여 더욱 깊이 있는 연주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임효선은 항상 음악 안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며 도전하고 있다. 연주가로서의 음악적 선택과 집중, 그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에게 임효선이라는 피아니스트가 주목받고 있는 충실한 이유가 될 것이다.
Vol. 80 April 2014 Music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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