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읽을 시간
- 지은이: 정일근
- 1판 1쇄 발행: 2025년 12월 24일
- 펴낸곳: (주) 난다

돌아오기 위해서
묶여보지 않은 사람
떠나는 꿈 꾸지 못하지
떠나지 못하는 사람
다시 돌아오겠다, 고
뜨겁게 약속하지 못하지
그래 떠나겠어, 라는 결심은
두 발 묶여 사는 사람만의 꿈
저기 사궁두미 어부는 내일 다시
뒤돌아보지 않고
더 큰 바다로 떠나기 위해
오늘 흔들리는 배
밧줄로 단단히 묶어놓는 거지
사람이며 사람의 인생이며
알고 보면 그런 거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묶여서 살지
인연에 꼭꼭 사랑에 꽉꽉
자기 자신 친친 묶고 사는 거지
살다가 시간이 되면
미련 없이 훨훨 떠나기 위해
혹은 나 떠난 뒤에 울어줄 당신에게로
다시 표표히 돌아오기 위해.


인생, 손바닥에 올려놓고
인생, 손바닥에 올려놓고 꽉
잡아 짜내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생에서 번들거리던 허언이며
허욕의 욕망 다 짜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시여
나는 너 한 편 남길 바랐지만
아니다, 눈물이 강물로 흘러나오고
마지막까지 피눈물, 피고름 받아 짜도
소금 그것도 거친 막소금이 전부다
내 인생 그것이 전부다
부푼 꿈은 어디로 가고
뜨거운 사랑은 또 어디로 갔는지
어느 누구 인생에 맛 내는 간도 못 맞춰줄
쓸모없는 소금 몇 알뿐인지
한 손으로 혹은 두 손으로
힘주어 다 짜봐도 남는 것은 소금뿐이다
회한의 눈물이 인생 짠맛을 가르치던
소금뿐이다.

정일근
벚꽃의 도시 경남 진해에서 출생해 대학 재학중인 1984년, 무크 <실천문학>(통권5호)으로 등단했다.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경주 남산>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소금 성자> <혀꽃의 사랑법> 등과 시조집 <만트라, 만트라>, 시선집 <꽃 지는 바다, 꽃 피는 고래> <꽃장> 등이 있다. 소월, 영랑, 지훈, 이육사, 김달진 시인의 이름으로 주는 문학상을 수상했다. 경향신문, 문화일보 기자를 지냈으며 울산대 강사, 경남대 교수를 거쳐 현재 경남대 석좌교수로 시 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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