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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아름다움/책

작은 순간들의 음미, 소설가 최은영 작가의 첫 에세이 <백지 앞에서>

by 난짬뽕 2026.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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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앞에서
  • 지은이: 최은영
  • 초판 발행: 2026년 4월 30일
  • 펴낸곳: (주)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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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순간들을 음미하며 힘껏 나아가기를

솔직했다. 이렇게나 솔직할 수 있다는 것에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당황스럽기도 했다. 자신의 내면과 발자취에 대해 가릴 것 없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한번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지 앞에서>는 소설가 최은영 작가의 첫 에세이다. 

나는 그동안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 <내게 무해한 사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쇼코의 미소> 등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 에세이를 읽고 나니 작품 속 인물들이 작가의 모습과 많이 교차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소설이라는 장르는 개연성 있는 허구라는 형식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와 인물들은 결국에는 작가 그 자신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지 앞에서>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최은영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이 한 명 한 명 눈앞에 서 있었다.

왠지 앞으로는 소설 뒤에 최은영 작가가 완전하게 숨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서 만난 문장들은 너무나 솔직해서 나를 한참이나 더욱 놀라게 했다. "못 생겼다는 느낌" "당신이 더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기분" "혼자 사는 연습" 등등, 가까운 누군가에게도 선뜻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예전부터 최은영 작가는 수치심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말해왔었다고 한다. 이 에세이의 내용들이 그러한 수치심과 얽힌 사연들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드러내기 쉽지 않은 내밀한 이야기들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작가는 말한다. "소설가로 일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일을 소설로 쓰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야기에 관해서라면 나는 내가 경험한 일을 가공하지 않은 채 쓰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에 관해서라면 다르다. 내 소설 안에서 인물이 느끼는 감정은 언젠가 내가 경험한 것, 잘 아는 것이다."라고. 

최은영 작가가 지니고 있었던 상처와 진실들, 그리고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참사와 아픔에 대한 내용들도 함께 읽으면서 <백지 앞에서>의 모든 이야기들을 토닥토닥 쓰다듬어 본다. 

 

최은영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장편소설 <밝은 밤>, 짧은 소설 <애쓰지 않아도>가 있다.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제5회, 제8회, 제1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생각이 멈추는 문장들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범람하는 세상이지만, 자신에 대한 태도는 많은 경우 자신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닮기 마련이다.  p 190

나는 상처받은 사람만이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은 신기한 존재여서 같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 오히려 타인의 상처에 무감하고 더 잔인해질 수도 있는 법이니까.  p 198

사랑은 상처를 상처로만 남게 하지 않고, 인간을 상처 속에 매몰되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무감한 사람으로 변화하게 하지 않는다.  p 199

어떤 사람들은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고. 지난 일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현재에 집중해야지.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야지.' 하지만 과거와 무관한 현재와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 성찰을 거치지 않는 한 역사는 같은 패턴을 변주하며 반복될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기억은 정체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자기 정체성은 삶의 많은 선택에서 힘을 발휘한다. 집단적 정체성 또한 마찬가지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면 나쁜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p 218

우리는 더 대화해야 한다. 우리의 과거에 대해서. 우리가 겪어온 시간에 대해서 말하고 들을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과거를 바로 세울 때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무책임한 비관주의로 기우는 것을 경계하면서.  p 225

공감하지 못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잔인해질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이 자신만큼 상처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타인도 자신만큼의 존엄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p 265

 

<백지 앞에서>, 책 속의 문장들

대학을 다닐 때보다도 삶에 불만족하고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 마음속 욕구를 따라 살지 못하는 것, 거기에서 초래된 여러 문제를 그저 성실히 생활해 나가는 것으로 회피하고만 있었다.  p 31

소설쓰기는 숙련되지 않는 작업이고 백지 앞에서 나는 언제나 초심자가 된다.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면 예전에 어떻게 소설을 썼는지 의아해지곤 한다. 나는 그저 나의 무력함을 이해하고 인내한다. 내가 인물과 그 인물의 세계를 만들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간다. p 47-48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로, 미래에 대한 기대나 불안으로 나는 나의 현재를 무가치하게 대했다. 내 진짜 삶은 언젠가 도래할 것이며, 내가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는 건 어떤 특정한 이유 때문이라고 나를 속이고 길들였다. 하지만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건 오로지 현재뿐이다. 그렇기에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에 지레 겁먹으면서 현재를 포기할 수는 없다. 내 진짜 삶은 언젠가 어떤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불완전해 보이는 여기에 있다.  p 96-97

돌아보면 나는 타인과의 경계를 잘 설정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욕구보다 타인의 욕구에 더 예민했기에 내 감정을 무시하고 타인의 감정을 우선시했다.  p 121

지금까지의 삶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건, 무슨 이유로든 숨겨놓은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어떤 감정이든 바라보고 인정해야 했다. 그래야 마음이 덜 병들 수 있었다.  p 128

외로움은 타인의 존재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근본적인 외로움은 절대 사라지지 않으며 삶이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러니 그것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p 15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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