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볼록 렌즈

채식, 옳고 그름이 아닌 선택의 자유

난짬뽕 2021. 5. 3. 12:33
728x90
반응형

 

 

채식,

옳고 그름이 아닌 선택의 자유

 

 

우리들의 마음에는 그 사람만의 보물상자가 들어있다. 과거에 대한 추억들이 시간을 되돌리고픈 향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픈 그리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문득 인생의 앨범을 펼치듯 열어본 기억의 방에서 만난 '채식 이야기'. 그것이 때로는 단순한 먹을거리, 그 이상일 때도 있다. 

글 엄익순

 

 

엄마의 도시락

아주 오래전 봄날, 대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교생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같은 과 친구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학교 주변의 중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아무래도 교생 실습 준비를 효율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동기들끼리 함께 실습을 나가는 게 좋지만, 나는 홀로 떨어져 부모님이 계신 시골 중학교로 내려오게 되었다. 

 

중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떠나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하숙과 자취로 이어지다 보니, 부모님은 교생실습 기간만이라도 집에서 밥을 먹고 다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계셨다.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상은 다른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바꿀 만한 최상의 협상조건이 되기에 충분했다. 엄마의 음식 솜씨는 언제나 정갈했다. 한 번이라도 우리 집에서 밥을 먹어본 사람들은 늘 그 맛에 빠져들었다. 화려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재료 본연의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게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결국 교생실습 기간이었던 한 달 내내 나는 집밥을 먹게 되었다. 

 

 

모교인 중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가는 첫날, 대문을 나서는 나를 멈추게 한 것은 엄마가 건네주신 도시락이었다. 분홍색 보자기에 숨어 있지만, 뚜껑과 길게 솟아오른 손잡이를 제외하더라도 20㎝가 넘어 보이는 3단 찬합 바구니. 지금 생각해도 그것을 들고 어떻게 학교에 갔는지 나 자신이 의문스럽기만 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쑥스러운 표정으로 찬합 뚜껑을 열자, 여기저기에서 선생님들이 도시락 구경을 한다면서 주변으로 모이셨다. 정월대보름도 아닌데 서리태와 울타리콩, 팥, 수수, 차조, 불린 대추와 땅콩까지 넣은 오곡밥과 고사리, 취나물, 다래순, 뽕잎, 엄나무 잎, 무청시래기, 가지나물을 가지런히 담아낸 나의 도시락에 선생님들은 감탄을 멈추지 않으셨다. 그 날 이후 한 달 간의 교생실습 기간 내내 엄마의 나물반찬 행진은 끝없이 이어졌다. 

 

직접 도토리묵을  쑤었고, 깻잎찜에 머위, 두릅, 건곤드레, 도라지, 더덕, 버섯 등은 물론 다시마, 파래, 김 등의 해조류로 만든 튀각과 부각으로 봄날 입맛을 잃은 선생님들의 미각을 되살리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많은 선생님들이 내 책상에 도시락을 펼치셨고, 엄마의 반찬을 맛보면서 행복해하셨다. 고기반찬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3단 찬합. 엄마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셨지만, 채식을 고집하셨다. 

 

 

채식이

정답이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당신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으로 채식을 선택하셨다. 텃밭에 여러 종류의 채소를 직접 키우는 노동을 재미로 여기셨다. 밥상을 차릴 때마다 갓 따온 오이며, 풋고추, 상추, 피망 등을 아무 조리 없이 생으로 상에 올리는 것은 빠지지 않는 일이었다.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생선이나 어패류는 종종 상에 올랐지만, 육류만큼은 많이 거부하시는 편이었다. 고기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철분이나 칼슘, 아연 등의 미네랄이 부족하여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려도 소용없었다. 그것은 한때 육식이 비만의 원인이자 각종 성인병의 주범이라고 말하던 매스컴의 영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꿋꿋하게 채식 위주의 식단을 고집해 오셨던 엄마가 고기와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예순을 넘어서였다. "할머니, 이제부터 하루에 매끼마다 고기 석 점씩만 드세요." 의대에 갓 입학한 조카 녀석의 이 한 마디에, 엄마는 바로 채식 위주의 식단에 고기를 합류시켰다. 의사 선생님도 아닌, 신입 의대생의 말을 듣고 말이다. 하루아침에 평생의 식습관도 바꿀 만큼, 아들딸보다는 손자의 영향력이 컸다. 

 

지난해 여름, 이상하게도 엄마는 고기를 즐겨 드셨다. 고기를 삶아 수육으로 자주 드셨지만, 웬일인지 식당에서 숯불에 구운 갈비를 드시고 싶어 했다. 일주일 가까이 매일 아빠와 함께 외식을 나가 드신 구운 고기를 무척이나 맛있어하셨다. 그리고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하늘로 떠나셨다. 한평생 채식 식단을 최고라고 여기셨지만, 정작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에 가장 맛있게 드셨던 것은 고기였다. 

 

 

자연스러울 때

아름답다

전쟁의 기원은 육식에 있다고 여긴 소크라테스는 생명체를 물건으로 전락시키는 육식 습관은 행복은 물론 올바른 사회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채식의 물리적인 효과만으로 인류 문명에 유익한 영향을 줄 것이라 했으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중에는 건강이나 종교적인 이유에서 그러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육류를 섭취하는 것이 곧 환경파괴의 요인이 되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가축의 배설물과 소화 과정에서 나오는 가스가 대기 환경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고기 소비를 반으로 줄이는 것이 자동차 사용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보다 지구온난화를 막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캠페인이 제안되기도 했다. 

 

우리의 식생활은 오래전부터 그 사람이 살고 있는 환경과 문화, 풍토, 역사, 사상, 기호 등을 통해서 나름대로의 색깔을 갖추게 되었다. 채식에만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듯이, 육식주의자들에게 다른 식단을 강요할 권리도 없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을 고려한 선택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의학의 시조인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라고 했다. 매일 먹는 음식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오늘날까지 한의학의 교본이 되고 있는 <동의보감>은 먹거리를 통해 체질을 바꿔, 보다 근본적인 치료를 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집대성된 책이다. 자신의 몸을 파괴하지 않고 먹는 순간이 행복하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Vol. 474 MARCH 2018 MG 새마을금고

 

 

 

♠  그때 내 마음을 위로해준 글들  ♣

 

공감이 필요한 인생의 마음 처방전, 조언

공감이 필요한 인생의 마음 처방전 조언 누군가의 진심 어린 사랑과 관심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험난한 세상에서 한줄기 등불이 된다.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인생의 질문들에 대해서 답을 구할

breezehu.tistory.com

 

 

인생의 파도를 넘을 때, 추억의 마법이 당신을 지켜준다

몇 년 전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후,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문득 창밖에 스치는 햇살에도 눈물이 핑 돌았고, 외근을 나가서는 연세가 지긋하신 거래처 사장님을 뵙고는 저도 모르게 정말로

breezehu.tistory.com

 

 

커피, 달콤하고도 씁쓸한 감정이 보내는 신호들

커피, 달콤하고도 씁쓸한 감정이 보내는 신호들 커피 한 잔을 마주한 채 앉아 있는 우리들의 삶은 현재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매혹적인 맛과 향미가 부드러운 입맞춤처럼 달콤한 인연을 떠올리

breezehu.tistory.com

 

 

사랑과 희망의 언어, 나눔

사랑과 희망의 언어 나눔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사랑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그 누군가에게는 상상만으로 접어야 했던 꿈들이 새록새록 채색되어 간다. 세상에 스며든 나눔은 삶에 지

breezehu.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