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러운 유혹
은근한 속임수,
화장술
주름을 방지하고 안색을 밝게 해주는 마법의 노화방지 제품들, 속눈썹의 명암을 길게 늘여서 눈동자를 맑게 보이게 하는 마스카라, 립스틱, 각종 모발 제품들은 없거나 없어진 것을 있는 듯 믿게끔 현혹하는 것이기에 본질적으로 속임수일 수밖에 없다. 가장 기본적인 유혹의 도구이자 사람의 신체 중에서 가장 큰 유혹의 힘을 발휘하는 얼굴. 시간과 나라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그 유혹의 힘을 배가시키기 위해 지금도 얼굴 위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외모의 치장을 극도로 비난했던 플라톤은 화장을 '자기 것이 아닌 아름다움을 끌어오기 위한 속임수'라고 말하면서, '화장에 의한 세련미는 얄팍한 연출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반면 보들레르는 '숭배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치장해야 한다. 화장 분을 사용하는 것은 자연이 심하게 새겨놓은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인간을 위대한 신적 존재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라며 화장을 찬미했다고 한다.
화장에 대한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논란이 끝이지 않는 가운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여전히 화장에 의한 치장과 은폐를 통해 가치를 부여하거나 혹은 무엇인가를 속이기도 한다. 그 노련한 속임수는 곧 어떠한 연출보다도 가장 강한 유혹의 힘을 발휘한다. 상대방의 시각을 사로잡는 눈동자, 목소리를 통한 청각적 유혹이 스며드는 붉은 입술, 가장 매력적인 유혹은 28.5도의 각도로 뻗어 내려야 한다는 코에 대한 이야기 등 얼굴과 관련된 유혹의 줄기는 끝이 없다.
가장 강력한 유혹의 도구, 얼굴
얼굴을 가꾼다는 것은 경쟁을 의미한다. 남들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의도가 바탕이 돼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젊음을 유지하고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는 노력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바로 화장품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화장품 산업은 끝없이 발전되어 왔다.
이집트인들은 바다를 항해할 때 안전을 기하는 의미로 배에다 눈 모양을 그려놓았고, 자신들의 눈은 화장 먹으로 아이라인을 그리고 짙푸른 공작석으로 눈두덩과 눈 밑을 칠했는데, 두 라인이 눈 끝에서 만나 바깥쪽으로 길게 빠져나오도록 그려, 마치 날개를 펼친 것 같은 인상적인 눈매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교도, 미신, 마법의 영역에서 눈은 강력한 힘의 상징이자 동시에 경계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로마인들 역시 까다롭고 호사스러운 미용 관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깨끗한 피부를 위해 리비아 보리, 콩가루, 달걀로 만든 머드 백을 얼굴에 사용했고, 오늘날과 비슷하게 밀가루와 우유로 만든 나이트 크림을 발랐으며, 머리를 감을 때에는 곰의 지방과 사슴의 골수, 박새, 후추에 쥐의 머리와 배설물의 혼합물을 사용하였다.
여성들뿐만 아니라, 청년들 역시 얼굴에 석회나 백연으로 하얗게 하거나 또는 황토나 와인 찌꺼기로 입술을 붉게 물들이고 숯으로 눈썹을 그렸다. 심지어 얼굴에 난 솜털 또한 제거 대상이었으며, 건포도와 복숭아, 암염소의 쓸개즙, 박쥐 피, 독사의 가루로 만든 제모제를 얼굴에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외모를 단장하는 것이 곧 유혹
북유럽에 화장품과 향수가 처음 전래된 것은 십자군 전쟁 무렵이었다. 참전한 병사들이 동방의 값비싼 향 연고들을 가져와 아내에게 선물한 것이 그 시초였다. 중세 유럽의 귀족 여성들은 석고상처럼 새하얀 얼굴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밀가루를 이용해 얼굴을 하얗게 만드는 것이 화장의 전부라고 여겼다.
이들은 나무를 태운 재와 식물성 염료를 사용해 눈썹은 물론 관자놀이 부위의 머리카락까지 모두 뽑아냈다. 얼음처럼 창백한 안색과 완벽한 타원형의 얼굴을 만들기 위한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그런 모습을 내면의 깊은 신앙심이 겉으로 투영된 순수한 얼굴이라고 여겼는데, 이렇게 외모를 단장하는 것이 곧 유혹이라 단정 지었다.
25세의 나이로 군주 자리에 군림한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현명함과 아름다움, 매력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25세라는 나이 또한 강력한 유혹의 요소로 작용했는데, 여왕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나이가 들자, 이마를 푸르스름하게 칠해서 어린 소녀처럼 투명한 피부를 표현하려 했고, 이마의 주름을 없애기 위해 뜨거운 우유에 술과 설탕, 향료를 넣은 음료와 굳은 우유를 사용했고, 계란 흰자와 계란 껍데기 가루, 봉사(봉산 나트륨의 흰 결정, 특수 유리나 도기 유약의 원료 및 방부제 따위에 쓰임), 흰 양귀비 꽃씨로 로션을 만들어 썼다.
심지어 프랑스에서 영원한 아름다움을 만들어준다는 약의 제조법을 들여와 사용했는데, 그 제조법은 새끼 까마귀를 둥지에서 잡아다가 40일간 단단한 달걀을 먹이로 준 다음 죽여서 은매화, 활석, 아몬드 오일과 함께 증류하여 만드는 것이었다. 그 시대 여인들은 유독성 백연을 사용해 얼굴에 분칠을 하고, 황토를 써서 볼에 붉은빛을 냈으며, 가루를 낸 설화 석고에 색소를 넣고 햇빛 아래 건조해서 입술 그리는 연필을 만들었다.
17, 18세기의 영국 여성들은 빰과 턱, 이마에 애교점을 찍곤 했다. 주로 벨벳, 가죽, 또는 종이를 잘라 만들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화장을 하는 것은 간음을 범하는 것과 같다며 죄를 묻겠다는 법안을 상정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향한 도전을 막지는 못했다.
19세기 말엽에는 선 굵은 외모의 연예계 스타들이 인기를 모았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유명한 미녀 배우였던 사라 베른하르트가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붉게 물들이겠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하고는, 곧 입술 영구 화장을 시도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1900년대 초반에는 러시아의 디아글레프 발레단이 영국 공연을 시작하면서 아이섀도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과 청나라로부터 유입된 신식 메이크업 테크닉과 화장법이 1940년대에 이르러 얼굴을 희게 하고 눈썹은 반달 모양에, 붉은 입술의 현대식 화장법으로 바뀌었다. 점차 마스카라와 아이라인을 강조하는 등 눈 화장에 포인트를 주었고, 1960년대에는 하얗게 강조했던 얼굴을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으로 바꾸고, 인조 속눈썹이 인기를 모았다.
자외선 차단을 중시 여기고, 가을에는 눈 화장을, 봄에는 입술 화장에 중점을 두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이며, 1980년대의 화장은 동양인의 피부에 잘 조화되는 코랄 색상이 유행하고, 매혹적인 분위기의 색조화장이 주류를 이뤘다. 현대의 화장은 매스미디어와 화장품의 발달로 과거와 달리 화장술의 격차가 따로 없이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예로부터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혹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화장술. 지금도 그 비밀스러운 탐험은 조심스럽게, 때로는 과감하게 우리들을 유혹하고 있다.
인연을 만들어가는 기술 NQ,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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