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구 없는 비상구
20여 년도 훨씬 넘은 어느 해에 재미있는 글 하나를 쓰게 되었습니다. 어느 매체에서 진행한 'From dusk till dawn'이라는, 새벽 2시에 관한 특집 주제였습니다. 새벽 2시에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촬영 현장을 습격했고, 불면의 한강에서 깨어있는 새벽을 스케치했으며, 긴장감이 감도는 응급실 상황을 담았고, 황홀한 꿈을 꾸며 아침 해를 기다리는 신림동 고시촌과 청량리 거리의 여인들의 새벽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 저에게 들어온 외고는 PC 통신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직접 대화실에도 들어가 봤던 그때의 기억들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는, 이 글을 읽으시면서 공감대가 느껴지시는 분들은 아마도 저와 동시대를 생활하셨던 분들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의 새벽 2시는 어떤 모습인가요? 만약 그 시각에 잠들지 못하고 계신다면, 지금 무슨 생각에 잠겨 있으신가요?
무엇인가에 이미 중독된 사람은 남모를 설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지독한 기다림으로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고, 어느 한순간에는 생각지도 못한 행동으로 자신을 분열시키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파생되는 그 잔재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컴퓨터를 매개체로 이루어지는 또 다른 세계로의 작은 여행. 토요일 새벽 2시, 미처 해독제를 구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아직 잠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곳으로 진입을 허가하는 패스카드는 바로 선택입니다. 굳이 동화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더라도 합류는 해야 합니다. 서로의 취향이 비슷하여, 혹은 이유 없는 끌림으로 같은 방 안에서 호흡을 함께 나눌 수는 있지만 결코 참여에 대한 강요는 동반되지 않습니다. 설령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라 할지라도 묵비권을 고집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말도 던지지 않은 채, 건네 오는 타인의 목소리도 무시하며 조용히 그들의 언행을 지켜만 본다 할지라도 그다지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의 만남은 직접적인 교통을 우선으로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사실 그대로 벌거벗어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얼마만큼의 나이를 짊어지고 있는지, 무슨 일로 생활을 꾸려가는지, 더욱이 자신의 성이 남성인지 여성인지조차까지도 진실만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집요한 성격의, 아니 유달리 나에게 관심을 토로하고 있는 자의 정성으로 혹은 그와 비슷한 류의 꼬임에 빠져 순순히 정체성에 대한 고백을 하게 될 때도 없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이곳 대화실의 문턱을 넘어오곤 하는 것인가 봅니다. 그 익명성에 대한 자유로움이 한동안 얽매였던 일상에서의 숨 막힘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주고 있기 때문에,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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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라는 조금의 여유로움이 사치스러운 편안함으로 다가오는 토요일. 자정을 넘어 2시가 되어가는 지금의 이곳은 세상 밖 풍경과는 너무나 다른 이미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자들의 만찬. 일주일 중에서 가장 분주한 발걸음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그 접속 인원 또한 평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요일이라는 든든한 너그러움이 토요일을 받쳐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설령 늦잠을 자고 만다 할지라도 별다른 부담감은 느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것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특히 새벽 2시라는 시각은, 오랜만에 늦게까지 빠져든 TV 프로그램이 방송을 끝마치는 시간대와 엇비슷하게 교차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TV의 정규방송을 애국가가 흐르는 마지막 자막까지 지켜보면서 왠지 잠을 청하기에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사람들과 출근 때문에 밤늦은 시간대의 대화실 방문을 꾹 참아 왔던 직장인들, 늦은 자율학습까지 끝마치고는 잠이 모자라 다른 여가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평소 이곳을 언제나 같은 시간대에 동일한 제목으로 일관되게 지켜오던 일부 터줏대감들에 이르기까지, 토요일이 지나가는 새벽으로의 진입로는 그들에 의해 교통이 마비되어 있습니다.
몇 번의 시도로는 전화연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무뚝뚝한 신호음만이 회답을 대신할 뿐입니다. 각기 다른 제목으로 방이 만들어진 곳에 이미 자리를 잡은, 그리고 아직 마땅히 들어가고 싶은 곳을 찾지 못해 대기실에서 두리번거리는 탐색자들까지 포함하여 이미 수용인원을 초과한 탓에 새로운 방문자의 자리는 그리 쉽게 비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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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6개월 여만에 다시 대화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아이디까지 해지해 버렸던 저는 다시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제일 먼저 예전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몇몇 아이디를 서둘러 눌러보았습니다. 해지자, 유보자~~~ 그러나 현재 사용 중입니다, 라는 반가운 소식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광활한 벌판 위에 저 혼자만이 놓여 있는 것만 같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친근감이 느껴지는 방제를 찾아 또 다른 사람들을 사귄다는 것에 이제는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가 개인상을 설명하고, 상대방과의 의견과 조금은 어울리는 점이 아주 없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를 동원해 보는 것 역시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은 그 탐색에 대해 흥미롭게 인내할 수 있는 나이를 조금은 비켜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토요일이 지나가는 새벽을 기다립니다. 그 시간에 만나는 사람들은 굳이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평일에 쏟아지는 많은 인파들처럼 서로에 대해 무엇인가를 밝혀내려는 집요함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동안 휩쓸렸던 부딪힘 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하는 자신의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상에 대해 그리 연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만나는 대화실의 동료는 평일의 그 사람들보다 왠지 조금은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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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방제가 어떠한 것인지 아직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섣불리 어느 방의 번호를 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은 전체 검색을 해 봅니다. 혹시라도 생각이 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의 아이디까지 꼼꼼히 챙겨봅니다. 눈에 익은 몇몇의 이름이 시선을 멈추게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친근하게 인사를 건넬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 역시 단지 같은 시간대에 우연히 이곳을 찾았던, 그래서 이름 몇 자만이 낯익을 뿐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대화실 안에서의 머뭇거림은 서로 간에 꽤나 안면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실상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서로 간에 그러한 친밀함을 논하기에는 왠지 쑥스러워지기까지 하는데도 말입니다. 참으로 쉽게 느껴지면서도 너무나 다가서기 어렵고, 어느 순간에는 별다른 접촉도 없이 한없이 그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은 대화와 웃음을 나누었어도 일단 이곳을 떠나고 나면 그것으로 마지막이 되는 그러한 만남도 있습니다.
너무나도 다양한 형태의 세상사가 펼쳐지는 이곳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세상입니다. 결국 몇 번의 return 키만으로 주위를 배회하다 그곳을 빠져나오고 말았습니다. 마땅히 불러주는 곳도, 반갑게 찾아갈 만한 곳도 끝내 찾지 못한 채 말입니다. 벌써 시간은 아침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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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이곳을 찾게 되었을 때, 이미 저는 중독이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접속을 하여 또 다른 낯익음을 생성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그 증상이 심화되어 정해진 일정한 시각이 아닌 틈이 나는 대로 이곳을 두리번거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변신을 꿈꾸며 이곳 대화실이라는 비상구를 향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이 공간 안에서 만큼은 자신의 형상을 마음대로 오려 붙이기도 찢어버리기도 하는 가면이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은 자신이 아닌 스스로가 꿈꾸는 또 하나의 자아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이곳은 펼쳐진 세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왠지 조금은 우울해집니다. 너무나 자유로히 날개를 휘저을 수 있다고 느껴지는 이곳에서 우리는 어쩌면 자신을 더욱더 옭아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얼굴 위에 허상을 붙이면 붙일수록 더욱더 부풀어만 가는 초라함. 그래서 이곳 대화실은 우리들의 자유가 꿈꾸어지는 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래서 조금의 답답함이 느껴지는 그러한 비상구처럼 말입니다.
▶ 새벽 2시에 만나도 좋은 음악가들
침묵할 수 있는 자유인,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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