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더 큰 세상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발견과 도전, 뮤지컬 작곡가 이나오

난짬뽕 2020. 12. 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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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아주 오래전 일이네요. 이나오 뮤지컬 작곡가를 만난 것이. 인터뷰와 사진 촬영이 있던 2013년 7월 그날은 어느 해보다도 정말로 매우 더웠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이나오 작곡가를 다시 만난 것은 한 달 후인 8월 30일 용산구의 콘서트 자리에서였습니다. 열정적인 배우들이 이나오 작곡가의 작품들을 직접 선보이는 가운데, 그녀가 만든 음악 안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우리 가족들을 더 큰 떨림과 울림으로 꼼짝 못 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녀의 피아노 연주였습니다. 지금도 남편과 아들은 그날의 이나오 작곡가의 피아노 연주와 피아노 앞에 앉은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종종 얘기합니다. 저는 물론 무덤덤한 두 남자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이나오 작곡가의 음악은 강렬하고  뜨겁지만 오만하거나 위협적이지 않고, 치장하지 않았지만 자꾸 듣는 이의 마음을 뺏어갑니다. 뮤지컬 무대뿐만 아니라, 오롯이 연주회장에서 피아니스트로서의 이나오를 만나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더 큰 세상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발견과 도전

뮤지컬 작곡가 이나오

 

누군가의 인생에서 설렘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끌림으로 여전히 도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촉망받던 피아니스트에서 이제는 한국 뮤지컬 음악사에 새로운 역사를 그려가고 있는 이나오의 발자취 역시 그러하다. 그녀에게 있어 걸어보지 않은 길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언제나 끝없는 노력과 스스로를 향한 믿음으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뮤지컬 작곡가 이나오를 만나본다. 

글 엄익순

 

2013년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8월호 표지 주인공, 이나오 뮤지컬 작곡가

 

뮤지컬의 세계로 뛰어들다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의 작사, 작곡, <중독><포에틱>의 극작, 작사, 작곡, <앨리스>의 작곡에 이르기까지 이나오가 선보인 작품들은 하나같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모든 작품들은 참신한 소재와 구성으로 완성도의 깊이가 묻어났고, 그 표현 형식에 있어서도 기존에 만나볼 수 없었던 독특한 전개로 관객과 평단을 놀라게 했다.

경성시대 아웃사이더 같지 않을 것 같은 옥임과 용주의 내면 심리를 보여주고자 했던 <콩칠팔 새삼륙>은 3년 반이 넘도록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던 그녀의 첫 작품으로, 오랜 기간의 유학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뒤이어 발표한 <중독>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엮은 레뷔 형식 뮤지컬로, 극 중간에 최승자 시인의 시를 가지고 만든 송사이클 형식이 신선함을 안겨줬다. <포에틱> 역시 시인 최승자의 시를 음악으로 접목시키거나 이야기로 펼쳐놓는 새로운 감성을 건넸으며, <앨리스>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기대받았다.

 

그 결과 2010 창작팩토리 뮤지컬 대본공모 선정, 2011 CJ Creative Minds 뮤지컬 리딩공연 지원 선정, 2011 창작팩토리 뮤지컬 쇼케이스 부문 1등, 2012 한국 뮤지컬 대상 작곡상 노미네이트 등의 성과를 이끌어냈다. 

 

"뮤지컬의 매력은 좀더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스토리텔링'에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공부해오던 음악과 스토리텔링이 통합되는 장르 중에서 저는 뮤지컬이 가장 깊이가 있다고 여겨졌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그 가운데 나름대로 독학하면서 어렴풋이 접근하게 된 뮤지컬의 세계는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배울 것이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도전정신도 생기고, 하나씩 배워나갈 때마다 즐거움도 컸죠. 특히 뮤지컬은 협업을 하는 범위와 농도가 매우 짙어요. 여러 분야의 소신 있고 실력 있는 동료들과 함께 하나의 작품 안에서 의견을 나누고, 배려하고, 고민하며, 서로 논쟁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꿈꾸던 작품의 세계로 동화되는 희열을 느낍니다. 그것이 제가 뮤지컬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동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다섯 살에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에 빠져 초등학교 시절부터 큰 무대에 오르면서도 한 번도 긴장하지 않았던 이나오는 예원중학교 2학년 때 런던 왕립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난다. 한국일보 음악 콩쿠르 금상, 서울시향 오케스트라 협연 오디션 합격, Kensington and Chelsea Young Pianist' Competition 1등, Teresa Carreno Piano Competition 1등, Eastbourne Symphony Orchestra Competition 2등, Sevenoaks Young Musicians' Competition 3등, Gordon Turner Prize 등 화려한 수상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클래식 음악계의 촉망받던 피아니스트였다. 그런 그녀가 15년간의 유학생활을 뒤로한 채, 한국행을 선택했다. 단 한 가지 이유, 뮤지컬 때문이었다.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MF Interview 중에서

 

끌림의 형상과 마주하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 그녀는 피아니스트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재미있고, 무대에 오르면 마음이 편안했다. 그런데 중학교에 진학하자, 슬럼프가 찾아왔다. 음악 안에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연습을 하면서도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에는 자신이 피아노를 연주하면서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음악을 해석하고 있는지 감정적인 충족을 원했지만 그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은 자신이 음악을 하는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만난 스승 이리나 자릿스카야는 이나오와의 첫 만남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너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니, 아니면 뮤지션이 되고 싶니? 만약 뮤지션이 되고자 한다면 좀 더 폭을 넓혀야겠구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갑자기 제 앞에 펼쳐진 세상이 넓어진 기분이 들었죠. 그때부터 뮤지션십에 대한 집중적인 가르침을 받았어요.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일 음악적인 소양을 키우는 수업을 받게 됐죠. 지휘와 즉흥변주곡을 만들거나 화음의 전개, 톤에 대해서도, 그리고 피아노로 얼마나 다양한 색깔의 연주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조언해 주셨죠.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보이지 않으셨을까요? 저의 마음이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 같아 그 답답함을 풀어주면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16세 때, 부전공으로 작곡을 공부하면서도 그녀는 실내악보다는 보컬곡에 관심이 더 많았다. 추상적인 소통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확실한 결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 아니었다. 다만 어떤 끌림이 늘 있었고, 나름대로 쓰고 싶었던 스토리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동안 상상으로만 풀어놓았던 헝클어진 실마리를 풀어 나갈 시점이 온 듯했다.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존재하던 끌림의 형상이 조금씩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작곡을 부전공하면서 노랫말이 있는 곡들을 쓰다 보니, 글에 대한 애정이 생겼어요. 그래서 스토리텔링에 관한 관심도 커졌고요. 연주할 때에도 물론 스토리텔링에 대해서 상상하는 편이었죠. 그것이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피아노에 대한 아쉬움이랄까요? 그래서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석사까지 공부했던 것이고, 학위를 받고 나서는 이 정도면 자양분을 충분히 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서야 이제는 두 분야에 발을 걸쳐도 되겠다는 결심이 든 거예요."

 

이나오는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피아노 학사 및 석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NYU, Tisch School of the Arts 뮤지컬 작곡 석사와 BMI Lehman Engel Musical Theatre Workshop 뮤지컬 작곡 과정을 수료하게 된다.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MF Interview 중에서

 

한국적인 뮤지컬을 꿈꾸다

이나오가 뉴욕대에 갔을 때 처음 들은 말은 "돈과 명예가 목적이라면 지금이라도 나가라. 만약 허망된 꿈이 있어서 뮤지컬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라는 교수님의 충고였다. 그녀는 그 말씀 한마디로 인해 '완전히 내 짝을 만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행복함을 느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같이 만들어진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그 작품을 배우들이 구현해 주면, 그것을 관객들이 함께 호응해 주는 뮤지컬은 한 번의 공연이 이루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장르이기 때문에 항상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조바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저는 뮤지컬 작곡가를 '드라마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를 파악하고 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음악이 나오기 때문이죠. 드라마와 인물을 구체화하여, 추상적인 음악에 스케치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반전, 상황에 맞게 어떤 색깔의 음악으로 옷을 입히느냐 하는 것이 바로 저의 몫이죠. 작품 한 편을 보더라도 그것을 전부 분석하고 이해하여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 클래식이 끝없이 공부해도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것처럼, 뮤지컬도 하면 할수록, 가꿔질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작곡가들이 본인의 색깔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작품마다 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보니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방대한 지식과 실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해요. 저 역시 작품에 따라 클래식 이외에도 록이나 팝, 힙합, 판소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음악적인 구도를 시도해 보곤 합니다."

 

작곡가가 어떤 장면을 보고 떠오르는 음악이 딱 들어맞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을 경우 그녀는 작업한 곡을 과감하게 버린다고 한다. 그 곡에 애착이 있어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욕심은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위험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MF Interview 중에서

 

"오랜 시간 외국에 있었지만 항상 나의 뿌리, 한국적인 것들에 대한 향수가 컸어요. 그래서 2009년에 귀국하게 된 것이죠. 저는 한국적인 뮤지컬을 작업하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한국적이라는 것은 어쩌면 단순해요. 처음부터 우리나라 언어로 만들어지는 뮤지컬. 우리말 안에서 음악과 가사가 유기적으로 흐르는 것이 중요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한국 창작자들이 쓰는 모든 작품이 바로 한국적인 뮤지컬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8월 말 이나오는 SK 행복나눔재단 '프로젝트박스 시야'의 초청으로 <The Composers>라는 콘서트를 갖는다. 뮤지컬 작곡가를 조명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이번 무대에서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선보였던 넘버들을 배우들과 함께 들려주며, 자신 또한 연주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긴 호흡을 조절하면서 마음껏 자신의 색깔을 창조해나가는 뮤지컬 작곡가 이나오의 열정이 오늘도 무대 위에서 뜨겁게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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