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가득한
약속이 있던 자리
그때에는 그것만이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기억은 흐려지고
눈물로 맺었던 마음의 서약조차
희미하게 멀어져 갑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약속을 할 때 새끼손가락을 거는데, 이러한 행위는 다양한 관점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동양에서는 인체의 축소판으로 손을 말하는데 그중 약지는 심장, 새끼손가락은 기(氣)와 관계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개의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것은 두 사람의 정신이 엮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중세 유럽의 당시 무당들은 새끼손가락 끝으로 영혼과 접촉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막으면 신을 만나는 경험이나 예언적 환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고 믿었습니다. 동양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것을 서로의 영혼의 엮임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서양에는 이것뿐만 아니라 다른 기원도 전해져 내려오는데, 유럽 중세시대에 십자군 원정을 나갔을 때를 기원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십자군 원정의 기사들은 가족들에게 살아서 돌아와 전리품을 가져오겠다는 약속의 징표로 긴 체인을 엮어 주었고, 그 체인 모양을 흉내 낸 것이 새끼손가락 걸기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오래전부터 스코틀랜드에서는 새끼손가락끼리 접촉하면 마음이 통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신중한 거래를 할 때는 새끼손가락을 걸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손가락 중에서 심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것이 새끼손가락이기 때문에 약속을 할 때 새끼손가락을 거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왜냐하면 심장은 마음이라고도 여겨지기 때문에 새끼손가락을 건다는 것은 마음과 마음을 걸어 순수한 서로의 약속을 지키자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고대 로마시대부터 있었던 악수 역시 약속이나 계약을 굳건히 한다는 서약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세기까지만 해도 악수하는 데 신중을 기하여 함부로 손을 내밀거나 쥐지 않았다고 합니다. 로마시대에는 명예를 걸고 서약할 때 악수를 했고, 셰익스피어의 극작에 나오는 악수에는 목숨을 아끼지 않은 의무가 뒤따르기도 했습니다.
유럽에서 악수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후인데, 그때는 귀족과 농민 사이에 새로 형성된 중간 상인계급에서 빈번한 계약이 이루어졌고, 그 신용을 다지는 신체언어로써의 악수는 문서 이상의 법적 효과를 지녔다고 여겼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악수는 두 사람의 우정과 충성, 상업상의 신뢰성 등을 서로 서약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었습니다.
모든 형태의 약속 속에서 가장 설레는 것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 채 기다림의 시간을 넘어 마주했던, 몇몇 영화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던 그 공간들을 잠깐 떠올려봅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중세회화 복원사로 일하고 있는 준세이. 그는 '피렌체의 두오모 대성당은 연인들의 성지'라며 서른 번째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서 함께 하자던 아오이와의 약속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갑니다. 그리고 10년 후,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두오모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바로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입니다. <러브 어페어>에서는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 마이크와 테리는 3개월 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해 두 사람의 약속은 어긋나고 맙니다.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이들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되지만요.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와 견우가 헤어지면서 나무 아래에 타임캡슐을 묻고, 2년 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장소가 바로 강원도 함백의 백운농장입니다. 그곳은 그들이 각자 다른 시기에 다시 찾아와 편지를 개봉해 읽은 장소로, 영화 속에서 중요한 장면을 만든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접속>에서는 홈쇼핑 가이드 수현이 PC통신을 통해 알게 된 라디오 PD 동현이 갑자기 호주로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서울 종로 3가의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만나자며 자동응답기에 메시지를 남깁니다.
생각해보면 더 많은 만남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고, 때로는 약속을 하고서도 그것을 지키지 못할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약속이 있던 자리는 늘 설렘이 동반되는 동시에 아픈 상처와 그리움이 앙금처럼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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