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볼록 렌즈

관계의 홍수시대를 건너는 법, 편지의 미학

난짬뽕 2021. 9. 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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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홍수시대를 건너는 법

편지의 미학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때로는 각기 다른 시선으로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내일의 행복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면, 우리들의 소통도 잠시 휴식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잊고 있었던 한 통의 편지가 가슴으로 다가온다.

 

습관적인 소통에 제동을 걸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에서 요구되는 인재상은 창의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경험과 실패 회복을 통해 비판적 사고와 경쟁이 아닌 협업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이 근래에 들어 많이 언급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소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미래 핵심 역량으로 대두된 창의성과 비판적인 사고, 회복탄력성, 복합 문제 해결 능력 등의 모든 요소들이 '소통'이라는 든든한 기반 위에서 튼튼하게 뻗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점가를 강타하는 출판물들은 한결같이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고, 대다수의 인문학 강의에서도 소통을 잘하지 못하면 왠지 뒤처지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불안감을 껴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들이 말하는 소통은 주변을 둘러보지 않은 채 그냥 앞만 보며 달려가지는 않았는가.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는 헤아릴 여유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강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소통(疏通)의 사전적인 의미는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말한다. 한자를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욱 깊다. 트일 소(疏), 통할 통(通). 즉, 자신을 드러내어 상대방과의 벽을 없앰으로써 서로의 생각을 알아간다는 뜻을 품고 있는 것이다. 

 

소통은 곧 '공감'이다. 아무리 언변이 뛰어나도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한낱 권모술수에 불과하고, 탁월한 기획을 선보여도 현실에 맞지 않으면 허황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머리보다는 진심을 전하는 진짜 소통이 필요하다. 내가 중심이었던 태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상대방에게 집중할 때 사랑과 지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소통은 관계에 있어서의 승자를 가려내는 승부가 아니다. 이견이 있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나와는 다른 곳을 바라보아도 감동이 전해지기도 한다. 이제 우리들의 소통은 잠시 쉬어가도 좋다. 그동안의 습관적인 소통에 제동을 걸어본다. 관계가 깊어지는 소통에 있어서도 힘과 거리의 강약이 필요하다.

 

말없이 사람을 움직이다

소통은 '어떠한' 내용을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감정의 폭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인지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소통의 전달 방식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훔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편지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가장 깊숙한 속내를 1인칭 목소리로 털어놓는 편지에는 슬픔과 그리움, 눈물과 사랑이 잔잔하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T. S. 엘리엇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시인 반열에 오르며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받고 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자기 본성의 풍부한 수확'을 1만 통이 넘는 편지에 담았다고 스스로 고백한 바 있다. 릴케는 통신 기술이 발달해서 빠른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20세기에도 18~19세기에 만개했던 소통 수단인 편지로 수많은 사람들과 내면의 교류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삶과 예술, 고독, 사랑 등의 문제로 고뇌하던 젊은 청년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에게 보낸 10통의 편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역사·문화 인류학 교수였던 앨런 맥팔레인의 수많은 저서 중 유독 눈길을 끄는 책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전공분야인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책이 아니다. <릴리에게, 할아버지가>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삶의 과정에서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질문에 대해 할아버지이자 교수로서 해줄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담은 편지가 차곡차곡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손녀와 산책을 하고 정원을 가꾸는 것이 취미인 저자는 어느 날 문득 아직 어린 손녀가 자라면서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을 때 '만약 그 질문에 답해줄 자신이 곁에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편지를 들여다보면 나와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따듯하게 담겨 있다. 

 

다산 정약용의 저서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이다. 대학교재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이 책은 다산의 편지글 모음집으로 유명하다. 18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와 가훈으로 내려준 편지, 둘째 형님에게 보낸 편지, 제자들에게 교훈 삼아 내려준 편지 등이 실려 있다. 특히 고향의 아내 홍 씨가 시집올 때 입었던 다홍치마를 유배지의 남편에게 보내자, 다산은 아내가 보내준 헌 치마폭에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교훈을 글로 써 두 아들에게 전하기도 하여 유배지의 편지로서는 색다른 감흥을 준다. 

 

마음을 사로잡는 인생의 레시피

문학사학자인 신정일 선생이 쓴 <눈물편지>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고 소개된 원이 엄마의 편지가 소개된다. 1998년 경북 안동시 정상동 기슭에서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무덤 한 기를 이장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죽은 사람의 가슴에 덮여 있던 한지에 한글로 쓴 편지 10여 통이 덧붙여 있었다고 한다. 그 편지에는 4백 년을 두고도 변하지 않은 애절한 사랑이 간직되어 있었는데, 그 내용으로 보아 남편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기 전까지 짧은 시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이 편지의 주인공은 명종 11년 1556년에 태어나 1586년에 죽은 이응태의 아내였다고 한다. 

 

결혼한 지 23년이 된 남편이 '흰 머리카락들마저 대견하고 사랑스러웠고'라는 달콤한 말로 원고지를  빼곡히 채운 것은 소설가 조정래가 부인 김초혜에게 쓴 편지였다. '마치 걸음마를 배우듯이 가장 미소한 것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는 법을 배웠습니다'는 소설가 박완서가 <민들레의 영토> 출간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이해인 수녀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글귀로, 생전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 위로가 되었던 두 사람의 우정을 엿볼 수 있다. 시인 김광균이 시집온 지 20여 년이 된 며느리 민성기에게 쓴 편지는 대여섯 줄의 짧은 글이지만, '풍토가 험한 김 씨 집에 와서 20년 동안 수고가 많았다'라는 첫마디부터 며느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편지는 오래전부터 소통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직접적으로 사랑한다거나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편지의 매력이다. 팬데믹 시대를 치열하게 버티어 온 한 해가 어느덧 가을 너머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힘들었던 일상 속에서 꿋꿋하게 용기를 내었던 우리 모두에게 '잘했다'라는 고마움의 편지를 건네는 것은 어떨까. 편지만큼 관계를 결속시켜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관계의 홍수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제는 마음의 소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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