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나침반/그 곳

서울 안에 섬이 있다, 인사동

난짬뽕 2021. 10. 2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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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안에 섬이 있다

인사동

 

 

일상의 조급함에 쫓겨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그곳에 들어서면 생각의 박자가 한 발자국 느려진다. 오히려 걸음의 속도를 높여 빠르게 지나치는 것이 이곳에서는 왠지 어색하다. 

 

동쪽으로는 낙원동과 북쪽으로는 관훈동, 남쪽으로는 종로 2가와 적선동, 그리고 서쪽으로는 공평동과 접해 있는 인사동.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좁은 골목 사이사이 대신 안국동 로터리에서 종로 2가 탑골공원 방향으로 뻗어 있는 400여 미터의 길만을 인사동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숨 가쁜 세월의 흔적들을 매몰차게 걷어내지 않은 채, 전통과 문화가 입혀져 시간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 그래서 인사동은 사람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보이지 않는 문화의 섬이 아닐까. 

 

사진 Hyun

 

파리의 샹젤리제와 북경의 류리창, 뉴욕의 소호와 모스크바의 아르바트는 모두 낡고 오래된 것들의 가치가 살아 있는 곳이다. 서울의 인사동 역시 이들과 같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의 거리이지만, 기와지붕이 있고 마당이 자리 잡은 공간이 숨어 있기 때문인지 다른 나라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우연히 높은 건물 창가에서 인사동을 내려다보게 되는 기회를 맞게 된다면, 그때 느끼는 기분은 정말로 뜻밖의 선물을 얻은 듯한 황홀함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고층의, 초현대식 건물 사이에 움푹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옥의 기와지붕은 그 모습 자체로 하나의 미술작품을 연상시킨다. 

 

세월의 흐름을 막지 못해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곳곳에 들어선 각양각색의 현대적 건물이 인사동의 분위기와는 무척이나 이질적인 시선으로 들어오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인사동 자체가 나름대로 지켜온 옛 모습이 더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일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현대적 감각과 세계적 흐름에 발맞추어 국제적 관광도시로 우뚝 서야 한다는 명목으로 몇 년 사이 급격히 새로운 건축물들을 세워 놓아서인지, 오랜만에 인사동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단골가게가 사라져 버린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고 누드 엘리베이터 등의 오브제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러한 새로운 변화들이 아직까지는 인사동에 활기를 더해주는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다. 다만 주객이 전도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의 이곳은 이미 인사동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 일반적인 지역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때에는 그 상황에 맞는 또 다른 수식어로 인사동을 치장하겠지만, 서울에서 인사동 단 한 곳만이라도 현실의 강을 사이에 두고 조금은 느리게 시간이 머무르는 섬으로 바라보고 싶다. 

 

사진 Hyun

 

인사동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는 바로 <경인미술관>이다. 굳이 미술전시실을 찾지 않더라도, 시골집 앞마당 같은 정원에 자리한 전통찻집의 차향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시인 천상병 시인의 묵은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귀천>은 문학계 인사들이 찾는 인사동 명소 중의 하나였는데, 시인의 아내인 목순옥 여사가 직접 만들어 주는 모과차와 유자차 맛이 깊었다. 한편 인사동의 오래된 터줏대감을 만날 수 있는 <통문관>이라는 아주 오래된 서점도 있으며, 많은 화랑들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예전 인사동의 독특한 분위기를 주도하던 골동품이나 고서점, 표구점과 필방 등의 전통문화 상점들이 조금씩 힘을 잃어가는 가운데, 20~30대 젊은 세대들이 이곳의 주류가 되면서부터 인사동은 문화계층의 마니아 공간에서 대중적인 문화거리로 성격이 변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그들의 구미에 맞게 외국 외식업체들까지 몰려들게 되었다. 스타벅스 이후 미국 3대 커피전문점이 줄줄이 들어섰고 이탈리아와 인도, 멕시코풍의 이국적 카페와 와인전문점도 눈에 띈다. 또한 마당이 있는 전통 한옥구조의 음식점에서는 퓨전메뉴를 선보이며 퓨전카페로 자신들을 알리고 있다. 

 

미각을 자극하는 먹을거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오는 곳이기 때문에 충분히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문제는 퓨전 레스토랑과 다국적 기업의 체인점이 인사동의 좁은 골목까지 빠르게 점령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전통문화 가게에서조차 국적 불명의 물건들이 마구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세계 어느 나라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 우리나라 곳곳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물건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대변하는 목소리라면 굳이 인사동을 떠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통문화의 거리'라든가, '한국 문화의 1번지'라는 콤플렉스에 지배되면 그 또한 너무 경직되겠지만, 그것을 껴안고 가야 한다면 그러한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도 인사동이 고민해야 할 과제인 듯싶다. 

 

사진 Hyun

 

이율곡 선생의 우거(고향이나 출생지가 아닌 곳에서 임시로 사는 것) 터가 있고, 흥선대원군의 정치 산실인 운현궁과 개화기의 상징인 우정총국, 3.1 운동 학생대표들의 모임지였던 승동교회와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 터, 그리고 아직도 만세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탑골공원 등의 역사의 현장이 인사동의 한 줄기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인사동에 끌리는 가장 큰 매력은 끊어질 듯하면서도 신기하게 이어져 소통하는 좁은 골목길이다. 마치 미로에 들어선 듯, 매우 복잡하며 나중에 다시 그 골목길을 들어섰을 때에는 전에 찾았던 곳을 한 번에 제대로 찾지 못할 때도 적지 않다. 특히 이 골목을 따라 작은 식당들이 오밀조밀 몰려 있는데, 보통 몇십 년을 훌쩍 넘겨 버린 한정식집을 비롯한 맛집이 즐비하다. 20여 개의 갈래길로 나뉜 이곳의 골목길을 하루 종일 거닐어 보는 것도 색다른 여유로움일 것이다. 

 

또한 인사동을 가장 인사동답게 만들고 있는 작은 가게들을 돌아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들이다. 옛날 도자기와 고미술품을 전문으로 전시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못난이 인형이나 종이 딱지 등 60~70년대 물건들을 파는 추억의 가게도 있고, 우리의 전통 종이만을 파는 한지 백화점과 고운 천연색으로 곱게 물든 한복점, 또 올브라이트 미국 전 국무장관이 방문하여 화제를 모은 곳으로 모시 매듭 가방과 누비 명함집, 합죽선 등의 정성스러운 전통 상품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약 60여 개의 화랑이 밀집된 한국 미술의 중심지였던 이곳의 화랑가가 1990년대 중반부터 평창동과 사간동, 강남의 청담동 일대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현실이다. 세계 미술의 중심지였던 뉴욕 소호 거리의 갤러리들이 엄청난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다른 곳으로 이주해 간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각종 업소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게 되자 공간은 더욱 비좁아지는 반면 임대료는 계속 치솟아 결국 많은 화랑들이 인사동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발과 보존의 딜레마에서 고민하며, 수평적 시각에서 수직적 이동으로 새롭게 공간 분할이 이루어지는 변화의 바람이 강하게 몰아치는 인사동에서 우리는 모두 주인이 될 수도 있고, 또 아주 낯선 이방인이 될지도 모른다. 섬에 초대되었을 때, 그리고 다시 육지로 돌아왔을 때의 낯선 익숙함과 공허함. 인사동이 섬인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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