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5호선
지난 1995년 11월 15일 왕십리에서 상일동 구간을 시작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서울 지하철 5호선은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는 방사형 형태의 노선입니다.
지친 삶의 피곤함이 밀려오는 1호선, 상아탑이 즐비해 있는 2호선, 한때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3호선과 달리 지하철 5호선은 지극히 문화적 색채가 짙습니다.
우리나라 방송의 발원지인 여의도와 신문사들이 밀집해 있는 서대문과 광화문, 탑골공원이 위치한 종로 3가와 올림픽공원까지 5호선의 풍경은 조급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의식 없이 나태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적당히 여유로운 맛이 느껴집니다.
하저터널을 지나는 묘미
5호선은 강서, 강동 지역에서 도심까지를 40분 이내로 잇습니다. 강서와 양천구 지역과 강동, 송파구 지역은 주거 밀집 지역인 반면 노선의 중간 지점인 여의도와 종로구 등은 직장인들이 많이 출근하는 업무 지구입니다. 5호선은 강동구에서 각각 상일동과 마천 방향의 두 갈래로 분기하는 형태로, 노선도를 보면 'ㄷ'자 형태입니다.
특히 한강을 통과하는 신길에서 여의도, 여의나루에서 마포, 광나루에서 천호 등의 세 구간이 모두 교량이 아닌 하저터널로 건설되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아마도 그 구간들은 지상으로 건물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어 철교를 놓을 만한 공간이 부족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여의나루역은 해발고도 -27.55m로 우리나라에서 낮은 곳에 위치한 역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연극 <지하철 5호선>의 씁쓸함
언제였던가요. 달리는 지하철 5호선에서 젊은 남녀가 눈물로 올린 결혼식이 연극영화과 대학생들이 계획적으로 공연한 연극이었다고 밝혀졌던 것이요. 거의 모든 언론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소개했던 그 따스한 장면들이 모두 각본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몹시 씁쓸했을 것입니다.
하필이면 그들은 자신들의 연극 무대로 왜 지하철 5호선을 선택한 것일까요? 서울 지하철 1호선의 풍경은 전동차가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의 고달픈 하루 일과도 함께 고개를 떨어뜨립니다. 1호선 사람들의 삶이 바로 한 편의 소설이고 드라마입니다.
2호선은 어떠할까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2호선에 올라타면 생동감 넘치는 젊은 열기에 흡수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젊음은 활기차고 도전적이며 능동적이지만, 때로는 남의 행동에 크게 동요되지도 감명받지도 않을 정도로 이성적입니다. 그래서 무게가 느껴져도 그저 단순한 쇼로 치부해 버릴 가능성이 스며 있습니다.
그에 반해 5호선은 사색적입니다. 충분히 기다릴 줄 알고, 만끽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가짜 결혼식의 주체들이 이러한 5호선의 깊은 배려를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5호선을 선택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들이 5호선이 아닌 다른 노선의 지하철을 선택했더라면, 아마도 그 연극은 제대로 막도 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추억을 만날 수 있는 명소들
고미술 수집가들이나 애호가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답십리 고미술 거리. 이곳은 점잖은 박물관이 아닌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거리입니다. 답십리역에서 2번 출구로 나가 뒤돌아 오른쪽에 난 골목을 조금 들어가면 시간이 멈춰 버린 옛 시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 토기부터 조선 백자까지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서예 작품이나 그림, 가구 등 특색에 맞게 상점들이 나뉘어 있습니다.
문구완구 특화거리라고도 알려져 있는 천호역은 쉽게 말해 문구완구 도매시장입니다. 천호역에서 1번 출구로 나오면 오른쪽 첫 번째 골목에 위치해 있습니다. 문구와 완구 가게가 모여 있는데, 일반 소매점보다 20~30%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신학기가 시작될 무렵이면 거리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체육용품이나 화방용품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서울에서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곳이 바로 마장 축산물 시장입니다. 마장역 2번 출구로 나가면 주유소 골목 안에 축산물 시장 남문이 나옵니다. 보다 신선한 육류를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일반 정육점에서 구하기 힘든 돼지, 소의 부속품을 찾는 사람들이 자주 찾습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시장 입구에서 풍기는 비릿한 피비린내로 속이 불편해질 수도 있습니다. 시장 끝은 북문인데, 이곳에는 먹자골목이 있습니다. 족발집을 비롯하여 곱창, 대창, 간, 천엽, 토시살 등 이름도 낯선 온갖 고기들을 맛볼 수 있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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