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영화

헨델 울게 하소서,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난짬뽕 2021. 11. 24.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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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 울게 하소서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파리넬리는 가끔씩, 때때로, 종종 다시 보게 되는 영화이다. 최근에는 지난 주말에 또 보게 되었다. 사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때에는 영화를 그냥 영상으로만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뒷 머리가 짜릿해지는 전율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 개봉 : 1995년
  • 감독 : 제라르 코르비오  
  • 제작 : 벨기에, 이탈리아, 프랑스 (1994년)
  • 주연 : 스테파노 디오니시(카를로 브로스키, 파리넬리 역)
  • 음악 : 크리스토프 루세
  • 수상 : 1995년 골든 글로브 최고의 외국어 영화상

 

 

나를 울게 하소서
비참한 운명이여
나는 자유를 한탄하네

나는 한탄하네
나는 자유를 한탄하네

나를 울게 하소서
비참한 운명이여
나는 자유를 한탄하네

이 비탄이 내 고통의 사슬을 끊게 해 주소서
나의 고통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주인공이 부르는 헨델의 울게 하소서가 흘러나오면서 오버랩되는 거세당한 어린 시절의 자신의 모습. 아마도 이 장면 때문에 카스트라토가 부르는 울게 하소서의 가사가 보는 이들의 마음에 더 와닿는 것은 아닐까 싶다. 

 

파리넬리의 본명은 카를로 브로스키로, 1705년에 태어나 1720년부터 음악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거세 가수라고 일컫는 카스트라토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성을 지녔다고 평가되고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한 음표를 1분 이상 쉬지 않고 노래할 수 있으며, 절대음으로 4옥타브 반, 그리고 한 호흡으로 250개의 음표를 노래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18세기 유럽 전역의 무대를 휩쓴 카를로 브로스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죽기 전에 자신의 재산을 하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 카를로 브로스키는 기록에 의하면 열두 살 때 거세당했다고 한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 이전의 남아를 거세시켜 맑은 고음으로 노래하게 한 여성 음역의 가수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출입조차 허락하지 않은 중세의 그 시절, 그래서 여성의 파트를 대신해야 할 대상을 남성이 맡게 하는 음악사의 아픈 역사가 카스트라토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잘 들려 형? 귀머거리는 아니잖아.

형 음악에는 기교만 잔뜩 들어갔어. 

온갖 꾸밈음과 장식음과~~~"

 

"네 목소리에 맞춘 거야."

 

"마음을 움직여야 해.

진정한 느낌을 살려 봐."

 

 

자아를 빼앗긴 반쪽짜리 삶에 대한 갈등과 더 나은 음악에 대한 열망으로 괴로워하던 파리넬리. 그는 헨델에게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는 자연을 거스른 속임수에 불과하다"라는 말까지 듣지만, 내심 그를 존경하게 된다. 그런 헨델에 대해 형 리카르토가 비웃자, 카를로는 형의 음악에 대해 비난하며 던진 말이다. 

 

사실 동생의 미성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아니면 자신의 음악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동생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형 리카르토는 헨델에게 동생을 빼앗길까 봐 불안해한다. 형과 동생의 비밀은 영화 속에서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파리넬리가 부르는 울게 하소서의 무대 장면이 백미라면, 그에 못지않은 감동은 광장에서 카스트라토를 비하하는 사람을 향해 트럼펫 소리와 함께 카를로의 화려한 목소리의 기교가 마치 서로 경연하는 듯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영화를 볼 시간이 없다면, 딱 이 두 장면만 감상해도 좋을 듯싶다.

 

파리넬리의 마음이 대변되는 듯한 가사의 울게 하소서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아리아 중 하나이다. 리날도는 이탈리아의 시인 타소의 장편 서사시 '해방된 예루살렘'을 1711년 헨델이 오페라로 작곡한 것이다. 

 

사실 영화에서 보여준 헨델과 파리넬리와의 관계는 픽션이라고 한다. 물론 헨델이 파리넬리를 '노래하는 기계'라고 말한 적은 있지만, 생전에 파리넬리가 헨델의 오페라를 부른 적은 없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 영화가 울게 하소서를 선택한 것은 최고였다. 카스트라토의 애잔한 삶을 토해내기에 이 노래만 한 다른 음악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또한 어쩌면 영화 파리넬리를 통해 헨델 역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 서로 윈윈의 관계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파리넬리가 부른 이 곡은 카스트라토의 음성을 재현하기 위해 컴퓨터로 소프라노 에바 말라스 고들레프스카와 카운터테너 데렉 리 래진의 음성을 합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운드트랙 역시 고악기로 연주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영화를 보면서 잔잔히 들려오는 고악기의 선율 역시 아름답다. 

 

실제로 파리넬리는 인기 절정의 순간에 무대에서 사라진다. 에스파냐 펠리페 5세가 우울증을 앓았는데, 파리넬리가 10년 동안 4곡의 노래를 반복하여 불러줬고 그 후 펠리페 5세는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파리넬리의 목소리가 어떠했는지는 녹음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서 가슴 아픈 길을 가게 된 많은 카스트라토의 절규가 음악으로 승화된 것은 분명할 것 같다. 영화 파리넬리는 헨델의 울게 하소서와 등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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