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가 아닌 콘서트마스터로 손미나를 만난 것은 2014년 5월 말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자신의 열정은 아마도 스페인에서 받은 기운인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90세 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오늘 또 사랑에 빠지고, 바다를 보며 새롭게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그곳 사람들의 기운을 받아서 그냥 삶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다시 스무 살의 해로 돌아간다면, 사랑을 좀 더 잘하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던 기억이 납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간과한 것도 있었고, 그때에 느꼈던 것이 지금 생각해 보니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오늘은 어떠하셨나요? 살아가면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겠지만, 그중의 으뜸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사랑하면서 감사해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행복인 것 같습니다.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요.
음악과 함께 여행을 떠나다
콘서트마스터 손미나
아나운서로 우리 곁에 있었던 손미나는 어느 순간 작가가 되어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들려주었고, 이제는 무대 위에서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게 되었다. 콘서트마스터로서 또 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손미나와의 만남을 함께한다.
글 엄익순 사진 스톰프뮤직
음악은 신실한 나의 벗
스페인 유학 시절, 어느 날 문득 손미나는 피아노가 무척이나 그리웠다. 당장 악기를 빌려주는 가게로 달려가 몇 달간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집안에 피아노를 들여놨다. 피아노 건반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쉼 없이 연주를 계속했다. 정신없이 한동안 시간을 보낸 후 의자에서 일어났을 때, 그녀는 자신이 5시간 동안이나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음을 알았다. 그날 오후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모두들 그녀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손미나의 얼굴에서는 여느 때보다도 더 많은 행복함이 묻어났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는 늘 그녀에게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피아노 선생님이셨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4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꾸준히 배웠고, 연주를 즐겼다. 라흐마니노프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전공자로서 도달할 수 있는 단계의 모든 음악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의 손은 사람들이 보면 놀랄 정도로 어린아이처럼 아담하고, 손가락 역시 매우 가늘다. 그러나 피아노를 연주할 때에는 한 옥타브를 지나 적어도 파 음까지는 아주 가볍게 손가락이 춤을 춘다.
"저에게 있어 음악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피아노는 어려서부터 편안한 친구 같았고, 지금도 여행할 때면 그 나라의 전통 악기를 구입하여 모으기도 해요. 만약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하모니카 하나만큼은 꼭 들고 갈 거예요. 요즘도 눈을 뜨면 바로 음악부터 틀어요. 그리고는 잠자리에 들 때까지 늘 함께 하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음악만큼 좋은 친구는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이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영혼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두 가지가 바로 극한에 도전하는 운동과 음악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삶을 살면서 넘어지는 순간들에도 항상 음악이 있었습니다. 어떤 한때를 꼬집어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로, 음악은 제 삶의 일부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그녀는 친구와의 얘기를 덧붙여 들려주었다. 록 음악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친구가 그녀에게 자신은 클래식 음악을 듣고는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는 말을 최근에 했었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으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그녀는 담담히 대답해주었다.
"사실 나도 클래식 음악을 듣고 매번 마음의 감동을 느끼지는 않아. 그런데 그냥 마음이 편안해. 마치 포근한 담요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거든. 글을 쓸 때에도 록 음악을 틀어놓고는 집중을 하지 못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영감을 받게 돼. 마치 잔잔한 위안이 전해지는 것 같거든."
선물과도 같은 감동
손미나는 늘 변화의 시점에 음악과 함께하고 있었다. 1997년 KBS 공채 아나운서로서 처음으로 맡은 프로그램 역시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것이었다. 1FM <명연주 명음반>은 그녀에게 큰 경험과 기쁨을 안겨줬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적 시야를 넓힌 것은 물론 아나운서로서 갖춰야 할 오디오 발성과 호흡 등도 더욱 좋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 여행 작가로 스페인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의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도 음악은 그녀 곁에 머물러 있었다.
특히 2011년 발표한 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는 음악이 건네준 선물이다. 프랑스에서 이 소설을 쓸 때 그녀는 윤디 리가 연주하는 쇼팽의 'Scherzo No.2 b-moll Op.31'을 듣고 한순간에 반해 매일같이 이 음악을 틀어놓고 영감을 얻었으며, 결국 무사히 레이스를 마쳐 첫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소설 안의 사랑 이야기들이 쇼팽과 윤디 리 덕분에 탄생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2012년 당시 서른 살을 맞은 윤디 리가 우리나라에서 콘서트를 열었을 때, 고마운 마음에 그를 직접 찾아가 자신의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가 중의 한 사람으로는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떠올리게 된다.
"<19 그리고 80>(해롤드 앤 모드, 원작 콜린 히긴스)은 제가 본 연극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감동적인 작품이었어요. 이미 네 번 이상을 보았는데도, 앞으로도 무대에 올려질 때마다 어디든 꼭 찾아가서 볼 예정입니다. 삶의 희망이라고는 없는 열아홉 살 청년이 여든 살이 되어서도 꿈을 꾸는 할머니 모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죠. 해롤드가 모드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엉터리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모드가 그에 감동하여 '세상의 모든 연주는 아름답다'는 명문을 남기는 장면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 곡이 연주되거든요.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연극의 감동이 살아나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입니다. 여러분들도 다시 한번 감상해 보시면 좋을 듯싶어요."
<스페인, 너는 자유다>, <태양의 여행자>,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등의 책을 선보이며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던 손미나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꼬박 5년 만이다. 여행 및 문화와 관련된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일을 해보고 싶어 '손미나앤컴퍼니'라는 회사를 만들었고,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KBS 1 Radio에서 <손미나의 여행노트> DJ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바쁘게 지낼수록 무엇인가 내가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 찾아서, 일상에서 피곤해질 때 거기에 매달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기댈 수 있는 그 한 가지는 아마도 음악이 아닌가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콘서트마스터의 이름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 정말로 행복합니다.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굉장히 영광이죠. 제 이름으로 공연이 무대에 올려진다는 것은, 사실 시대가 많이 변화해서 가능한 일이라고 봐요. 기존의 어떤 틀에 박힌 콘서트가 아니라, 객석에 있는 분들과 좀 더 가까워지고, 더욱이 여행이라는 테마와 접목해서 진행된다는 것은 이제 관객들의 색다른 욕구를 반영하고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의 의미가 아닐까요.
저는 그런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틀을 깬다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어떤 계층이 향유할 수 있었던 예술이나 철학 같은 것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게 된 시기가 왔다고 봐요. 사실 현대사회가 예전에는 서민적으로 즐기던 것들을 마치 특수한 사람들만 즐겨야 한다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게 있어요. 예를 들어 클래식 음악도 그 당시 다른 대중음악이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음악이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현대인들 사이에서도 모두가 즐기지 못하고 나누어져 있던 것들을 이제는 하나로 모으는 때가 오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콘서트마스터, 동반되는 설렘과 책임감
"매번 저는 좀 더 파격적인 무대를 꿈꿔요. 책임감만 잃지 않고 간다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다 똑같은 차림새, 똑같은 스타일, 똑같은 행복과 성공의 기준에서 이제는 우리도 차츰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클래식 음악에 있어서도 그러한 부분들을 조금씩 깰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해요. 라틴음악이 콘서트 무대에 올라가고, 춤도 같이 추고, 앞으로는 관객들이 직접 참여하여 같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구상해 보려고요. 그렇게 독특한 구성으로 여러 나라들을 무대에 올려, 이러한 과정들이 하나의 장르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보는 것이 제가 이루고자 하는 꿈입니다.
일상에 지쳐 둔감해진 이들에게 화제가 될 만한, 특별한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아주 재미있게요. 저는 클래식 음악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도 오랫동안 배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콘서트마스터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여행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많은 분들에게 그 나라의 생생한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전해드릴 기회가 되어 설렘과 동시에 책임감을 같이 느끼게 됩니다."
손미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나라들을 테마로 하여 클래식 무대에 선다는 것이 정말로 큰 즐거움이다. 한편으로는 음악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름으로 콘서트가 열리는 것에 대하여 큰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진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상상 그 이상의 색다름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콘서트마스터로서의 손미나의 즐거운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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