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면 바로 그 모습처럼
성악가 박인수
두세 번 걷어 올린 어두운 카키색의 긴소매 남방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갖게 한 테너 박인수 교수를 만난 것은 아주 오래전 그의 논현동 자택에서였습니다.
<뉴욕타임스>로부터 '목소리가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기에 탁월한 테너'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 그의 집은 꼭 필요한 몇 점의 가구만이 눈에 띄었을 뿐, 화려한 장식품 같은 것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으뜸 제자 사랑
그곳에서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바로 거실 한구석에 놓인 커다란 식탁과 그 옆에 놓인 수많은 의자들. 의자가 하도 많아 그의 집은 몇 대에 걸쳐 사는 대가족인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의자들은 제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박인수 교수와 부인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날이면, 딴 사람 다 제쳐두고 제자들부터 먼저 부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과 부인 단 두 사람의 단출한 식구뿐임에도 불구하고, 식탁만큼은 거대했습니다.
또한 제자들이 찾아오는 날이면 그의 옷들은 모두 제자들의 몫이 되곤 한다고 했습니다. 넥타이와 셔츠는 물론 양복에 이르기까지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이내 선생님으로부터 물려받는다고 그의 제자들이 전했습니다.
그 당시 인터뷰를 하고 있을 즈음, 지방에 있는 어느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사연인 즉 어느 불우한 학생이 있는데, 친구 몇몇이 도와주기로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박인수 교수는 조금도 서슴지 않고 몇 백만 원의 거액을 바로 송금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계좌번호를 물어보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의식한 행동이 전혀 아닌 그의 진심이었던 것이 느껴졌습니다.
박인수 교수는 정지용의 시를 노래로 만든 <향수>를 대중가수와 함께 부른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 일로 인해 국립오페라단으로부터 단원 자격을 박탈당하면서도 그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단지 '마음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그 날의 인터뷰에서, 박인수 교수는 제자들을 향한 사랑은 물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풍성한 그러한 진정한 신사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글 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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