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정 PD의 인터뷰는 2017년 8월 18일 마포구에 자리한 요리인류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K-water 사보 <물 자연 그리고 사람> 2017년 9월호에 실린 내용 중, 물과 관련된 전문적인 이야기들은 조금 제외하고 일부 내용만을 소개합니다. 요리인류 스튜디오에서 유독 제 맘을 사로잡은 것은 벽면을 가득 채운 큰 화덕이었는데요. 지금 그 사진을 갖고 있지 않아,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화덕 사진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음식문화에 담긴 인생의 레시피
이욱정 PD
2년여에 걸쳐 10개국을 누비며 제작한 음식 다큐멘터리 <누들로드(2009년)>로 미국의 '피버디 어워드'를 비롯하여 아시아 태평양 방송연맹(ABU), 한국방송대상 등을 수상한 이욱정 프로듀서. 그가 기획하고 연출한 다큐멘터리의 접시 위에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우리들의 삶이 정갈하게 담겨 있다. 음식과 요리를 통해 인류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게 하는 그의 방송 철학을 함께한다.
글 엄익순
음식은 삶과 역사, 문화의 집합체
"음식은 인류의 여러 문화 중에서 한 가지 분야에 속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고 체험하는 문화가 바로 음식이기 때문이죠. 아무리 유명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 다녀오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잖아요. 그러나 음식은 보통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하거나, 직장인들 같은 경우에는 최소한 하루에 한 번 식당에 들르기도 하죠. 그런 면에서 음식에 관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에 드는 저의 생각은 아주 일상적인 음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좀더 큰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 자체가 우리들의 배를 채워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지나간 역사의 숨은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철학이나 문화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이욱정 프로듀서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프로그램을 연출할 때 항상 한 컷 한 컷 정성을 들여 제대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아무리 비싼 요리라 할지라도 어떤 그릇에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어느 공간에 앉아서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음식의 맛이 달라지듯이 방송도 마찬가지로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로듀서로서 퀴즈쇼와 각종 게임, 오락프로그램 등을 연출하던 그는 입사 5년 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담당하며 <추적 60분>, <한국 사회를 말한다> 등의 시사 방송과 <8.15의 기억> 등과 같은 특집물을 제작해왔다. 2008년에 방송된, 3천 년을 살아남은 기묘한 음식인 국수의 길을 따라간 <누들로드>는 그의 방송인생의 잊지 못할 터닝 포인트. 세련된 감성과 참신한 시각으로 면의 식문화를 풀어내며 많은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을 통해, 푸드(food)와 다큐멘터리(documentary)를 합친 푸드멘터리의 대표 프로듀서로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의 다큐멘터리는 문명 탐색의 나침반
<누들로드>를 시작으로 <요리인류(2014년)>, <요리인류 키친(2015년)>, <요리인류-도시의 맛(2017년)>에 이르기까지 푸드멘터리 PD로서 전 세계 35개국을 방문한 이욱정 PD의 열정은 지금 '음식문화'와 '요리'에 집중되어 있다. 국수로 시작된 그의 인류 문명 탐색의 나침반은 빵과 향신료, 고기 등의 코드로 이어지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서양을 넘나들며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그의 프로그램 안에 머물게 한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할 때부터 이미 자신만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고, 특히 다른 생활권의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신이 탐색하고자 하는 낯선 호기심을 향해 어떻게 접근해 나가야 할지 늘 고민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든지, 그 사람들의 풍습을 현지인의 입장이 되어 체험해 보는 과정들을 거치며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듀서로서의 시야를 넓혔다.
입사 7년차가 되었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방송학을 공부했고, <누들로드>가 호평을 받아 그의 이름이 생소해지지 않을 즈음 휴직을 하고 영국 런던의 '르 꼬르동 블루' 요리학교에 입학한다. 그에게는 이제 '요리하는 PD'라는 수식어도 덧붙여졌다. 실제로 <요리인류 키친>이라는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직접 재료를 다듬어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자주 만들어 주시던 녹두전과 고로케가 그립다는 이욱정 PD는 수많은 음식들 중에서 특히 물냉면을 즐긴다. 음식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프로듀서인 그는 현재 자신의 모습이 지금 막 오븐에 들어가기 직전의 반죽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오븐에서 꺼냈을 때의 또 다른 모습. 그의 방송은 아직도 우리들에게 보여줄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그가 차려놓은 다큐멘터리의 접시 위에서 우리들의 삶과 사랑,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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