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독주 악기로의 더블베이스의 도전,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난짬뽕 2021. 1. 4. 11:23
728x90
반응형

'영재', '어린 거장', '황태자', '베이스계의 콜럼버스' 등 어린 시절의 성민제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을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는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가 오직 바라는 것은 좋은 연주자로서 색깔 있는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을 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던 성민제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2014년 2월 인터뷰가 진행된 코엑스에서 그는 무거운 더블베이스를 안고 사진촬영을 했던 옥상 주차장까지 오가곤 했습니다. 당당히 더블베이스를 독주악기로 변신시킨 성민제가 더블베이시스트로서 그려놓을 다양한 연주 세계가 자꾸 궁금해집니다.

 

 

독주 악기로의 더블베이스의 도전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무게 13㎏, 길이 185㎝의 더블베이스는 늘 오케스트라 맨 뒷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더블베이스는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조연이 아닌 주인공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 곁에 성민제가 있었다.

글 엄익순

 

 

이제야 음악을 즐기게 되었다

성민제가 더블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아직 어렸기 때문에 키가 작아서 쌓아놓은 백과사전 위에 올라서서 연습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더블베이시스트였고, 어머니 또한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그의 집에서는 음악이 마치 생활의 한 단면처럼 여겨졌다. 워낙 집안에 여러 가지 악기가 많았기 때문에, 더블베이스와의 만남은 하나의 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생각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2006년, 16세라는 어린 나이로 세계적 권위의 요한 마티아스 슈페르거 더블베이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클래식 음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쿠세비츠키 더블베이스 국제 콩쿠르에서도 우승을 차지했고, 2011년 제46회 독일 마르크노이키르헨 국제 콩쿠르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2위에 입상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사진 이준용

 

그러나 그 당시까지만 해도 성민제는 자신 스스로가 음악을 즐기고 있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국내에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영재콘서트를 통해 음악영재로 발굴되고, 해외파견 음협 콩쿠르 베이스 부문 최연소 우승을 비롯하여 국내 유수의 콩쿠르를 석권한 그는 외국 무대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콩쿠르 입상에 대한 욕심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부담감마저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주위의 권유로 떠밀려 나갔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더 관심을 보였다. 

 

"콩쿠르가 끝나고 나니,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매우 허탈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저는 평소에 연주회를 통해 저만의 음악 색깔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국제무대에서 상을 받고 난 후에 그러한 저의 바람을 현실적으로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죠. 기존에 저를 억누르던 음악적 부담감은 오히려 많이 없어지면서요. 바로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는 것이 재미있어지고, 제가 음악을 즐기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요."

 

더블베이스, 독주악기로의 도전

더블베이스는 오케스트라의 조연으로만 인식되어 왔었다. 특히 악기 자체가 갖고 있는 저음의 한계와 부족한 레퍼토리 등으로 음악적인 다양한 시도 자체가 어색했고, 연주자들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성민제 역시 더블베이시스트로서 자신의 악기와 관련해서 굳어진 고정관념들을 깨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곧 그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2009년 세계 최고의 클래식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DG) 레이블로 발매한 데뷔 앨범 <Flight of the Double B>에 이어 2013년 선보인 2집 앨범 <Unlimited>를 보면, 성민제가 자신의 악기를 어떻게 주연의 자리로 올려놓았는지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더블베이스의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어 독주 악기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이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듯하다. 고전과 근현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시대의 음악들이 한데 어우러진 흥미로운 구성은 그 도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기존 바이올린과 첼로 곡들로 유명한 곡들을 모아 더블베이스의 곡으로 재탄생시켰으며, 우리에게 친숙한 바흐와 쇼팽은 물론 라흐마니노프와 피아졸라의 곡들까지 새롭게 해석한 점이 유독 돋보인다. 그중에서도 2집 음반의 타이틀곡인 라흐마니노프의 'Vocalise'는 더블베이스 한대로 마치 심포니를 연주하고 있는 인상을 주며,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성민제만의 색깔로 표현해 내었다. 또한 피아졸라의 'Oblivion'과 'Libertango', 가브리엘 포레의 'Pavane' 등 베이스 곡으로 새롭게 편곡된 작품들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눈에 띄는 곡은 다름 아닌 데이비드 포퍼의 'Dance of the Elves'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더블베이스 독주로는 세계 최초로 성민제에 의해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사진 이준용

 

"첼로로 연주되는 이 곡을 언젠가 유튜브를 통해 듣게 되었는데, 문득 제 악기로 화려하게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렬한 속주가 인상적이었는데, 충분히 더블베이스로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국 성민제는 음의 완벽한 통제를 위해 다른 현악기만큼 빠른 활 놀림을 구사하며, 화려한 기교로 이 곡을 연주해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더블베이스에 기존 베이스의 음역대보다 5도가량 높은 음역대를 낼 수 있도록 하이솔로튠으로 현을 교체하여 베이스의 낮은 음역과 첼로의 멜로디컬 한 선율을 함께 표현해내며 마치 두 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듯한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것도 가히 인상적이다. 

 

사실 더블베이스로 다른 악기의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블베이스를 위한 오리지널 악보가 없기 때문에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편곡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들이 복잡하고 기다림을 요구하지만, 그래도 성민제는 즐겁기만 하다. 무엇인가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더블베이스 독주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들을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쓰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음악 그 자체예요. 다른 악기와 견주어도 음악적으로 손색이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죠. 무대에 올랐을 때, 많은 분들께서 좋은 마음으로 들어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음악이 음악 안에서 괜찮다고 느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색깔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

어려서부터 성민제에게 붙는 수식어는 참 많았다. '영재'부터 '어린 거장', '황태자', '베이스계의 콜럼버스' 등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젊은 연주가를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모든 수식어가 감사하지만, 자신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직 자신이 바라는 것은, 좋은 연주자로서 색깔 있는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을 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블베이스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있어 조금이나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충실히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연주무대를 보여드리도록 자리를 마련해야겠지요. 음악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더블베이스가 대중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제 더블베이스 앙상블 '바시오나 아모로사'와 함께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을 통해 공식적인 미국 무대 데뷔를 성공리에 마침과 동시에 베를린 필하모닉 체임버 홀에서 솔로 무대로 독일에 데뷔했던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는 지난 2011년부터는 한층 더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그는 세계의 베이스 별들이 모여 1996년에 창단된 국제 더블베이스 앙상블 '바시오나 아모로사'에서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더블베이스는 아주 매력적인 악기입니다. 서서 연주를 하고, 악기 자체가 크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많은 힘을 필요로 하죠. 연주자의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매우 섬세하고도 과학적인 악기예요. 이렇게 무제한의 가능성을 지닌 더블베이스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성민제의 목표는 더블베이스의 대중화이다. 국제 콩쿠르에서 연이어 수상하고, 해외무대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그는 솔리스트로서의 꿈도 함께 키울 수 있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독주 악기로서의 더블베이스. 그러나 성민제는 편곡과 작곡을 통해 다양한 레퍼토리를 구축해 나갔고, 다른 현악기 연주자들보다도 빠른 손놀림을 구사하기 위해 맨손의 테크닉을 능수능란하게 펼칠 수 있도록 끝없이 연습하여 자신감을 얻었다. 

 

2013년에 배우 김남길이 제작자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던, 젊은 클래식 음악가들의 노력과 딜레마를 담아냈던 다큐멘터리 영화 <앙상블>에 참여하게 된 것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악기와 그 세계를 친숙하게 선보이고자 했던 이유에서였다. 지금까지 성민제는 독주악기로서의 더블베이스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면, 앞으로는 보다 깊이 있는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대중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그는 음악적으로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연주자이다. 아무도 선뜻 도전하지 못한,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옮겨놓는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독주 악기로 우뚝 선 더블베이스가 풀어놓는 다양한 연주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매우 궁금하다. 그것이 성민제를 주목하게 하는 또 하나의 설레는 이유가 될 것 같다. 

Vol. 79 MARCH 2014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영혼으로 교감된 완전한 위대함

영혼으로 교감된 완전한 위대함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Pablo Casals(1876. 12. 29~1973. 10. 23) 첼로의 성서라 일컬어지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바르셀로나 악보점에서 13세의 카잘스에 의해

breezehu.tistory.com

 

우아한 영국의 장미, 재클린 뒤 프레

나의 사랑, 나의 음악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 Jacqueline de Pre 동일한 한 명의 음악가가 던져준 세 번의 서로 다른 느낌. 그녀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자신의 연주에 취한 듯 너무나 정열적이면서

breezehu.tistory.com

 

728x90
반응형